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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직업교육

왈츠의 유래

소통 3기 김성윤 2020. 1. 12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왈츠와 요한 스트라우스...
https://youtu.be/33APZdifxMw

왈츠는 4분의 3박자로 진행을 하는 유럽의 경쾌한 춤곡을 말한다.

왈츠는 18세기에 오스트리아 및 바이에른 지방에서 유래한 민속 춤곡으로
한때 서로 끌어 안고 추는 춤의 모습으로, 외설적이라 하여 금지된 적도 있었지만,
왈츠로 몸살을 앓았던 시절의 유럽에서는 시골 농부조차 시집 못 간 딸이 있을땐
주저없이 무도회를 열었다고 한다.
서로 긴 이야기가 없어도 손과 손을 맞잡고 춤을 추다가보면 마음을 쉽게 느낄 수 있는 이유 때문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무도회를 즐겼다.

몸으로 그 느낌을 바로 알 수 있는 왈츠를 예술적으로 완성하고, 널리 알린 음악가는 많지만
그 중에서 쇼팽과 요한 스트라우스 부자를 왈츠랑 특히 긴밀한 음악가로 봐도 무난할 것 같다.
* 요한 스트라우스

미뉴에트가 그랬었던 것처럼, 왈츠 역시도 춤곡으로 뿐만 아니라,
기악곡으로도 따로 작곡되어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쇼팽의 피아노 소품, '강아지 왈츠'는 마치 장난 치는 강아지의 빠른 움직임을 묘사한 듯 경쾌 발랄하다.

라벨이 작곡한 '라 발스'는 매우 장엄하면서 풍자적인 느낌을 준다.
시벨리우스의 '슬픈 왈츠'는 깊이 모를 슬픔으로 흐느끼는 듯한 왈츠이다.

https://youtu.be/P5uouwWAH-g
https://youtu.be/yL9Wj8lOYfk
https://youtu.be/QNpMrMU8fvE

이처럼 왈츠는 아주 다양한 느낌과 감흥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쇼팽은 피아노 독주용 왈츠를 많이 작곡해 왈츠를 듣는 춤곡으로 만들었다고 한다면,
요한 스트라우스 부자는, 비엔나의 왈츠를 우아하고 세련된, 예술적 수준으로 재탄생 시킨 음악가로서
빈의 왈츠가 두 부자 덕에 더 번성되었다.

요한 스트라우스 1세는, '왈츠의 아버지'로,
요한 스트라우스 2세는, '왈츠의 제왕'으로 불리운다.
* 요한 스트라우스 부자

오스트리아가 왈츠로 유명하게 된 까닭은,
음악이 정치와 연관된 숨은 이야기도 있다.
이 이야기는 그 당시에 외무장관이었던 메테르니히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

그가 국민의 관심을 정치에서 돌리기 위해 의도적 수단으로,
왈츠 열기를 고조시키고 장려했다는 이야기이다.
문화, 예술, 체육, 등은 국민들의 화합과 정신 건강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고로?...

그러기에 왈츠는 전쟁으로 얼어 붙어 있던 빈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주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는
좋은 명분을 갖추고.... 정치적인 문화 행위까지(.....말 줄임표?)
그 당시, 유럽은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으로 자유 사상이 널리 유행했고,
오스트리아는 반면, 예전처럼 왕이 통치하는 왕정 시대를 유지하려고 힘쓰던 시절이었다.
이때 메테르니히가 펼친 왈츠 장려 정책은 시민계급의 성장을 막을려는 의도도 있고.

또 나폴레옹 이후 유럽의 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빈에 모여든 각국의 외교관들에게도 왈츠에 빠져들게 함으로써,
자신이 의도한 대로 회의를 이끌어갈 수 있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 수도 있었고...

암튼,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오스트리아는 왈츠가 유명한 나라가 되고,
오스트리아를 왈츠의 나라로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럼 '왈츠의 제왕' 요한 스트라우스 2세는 춤을 잘 추었을까?
"그는 뻣뻣한 나무 막대기였다!"고 한다.

왈츠로 경쟁을 하던 부자지간..
그 아들에게 채찍을 들고서라도, 음악가의 길을 막고자 했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바람나서 집을 나가니
어머니의 지원하에 아들은 편하게 음악 공부를 해서 아버지보다도 더 훌륭한 음악가가 되었다.

그들의 가장 유명한 왈츠곡...한 곡씩 추려.. 간략 소개 올리겠다

아버지 요한 스트라우스1세가 작곡한 곡중 최고의 인기 곡이 '라데츠키 행진곡'이라고 한다면
(라데츠키는 오스트리아 영토였던 이탈리아 북부 지역의 독립 운동을 진압한 장군이다.
1848년 3월, 부패한 메테르니히 전제 정권을 타도하기 위하여 시민 혁명이 일어나자,
그 당시에 정부의 편에 섰던 요한 스트라우스는 정부군의 사기를 고취시키기 위해서
라데스키장군 이름을 붙여, 이 곡을 작곡했다.
때문에 그는 반혁명적 작곡가로 낙인 찍혀, 한때 빈을 떠나서 런던에 살아야 했던 일도 있었다.)

오늘날에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패기차고 씩씩한 기상을 드러내는 행진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지만,
이탈리아 사람에겐 달갑지 않는 곡이라.. 이탈리아에서 눈치없이 굴면 안되는 곡이 아마 이 곡일 듯^^
https://youtu.be/pYYTdtRrg8M


왈츠의 왕인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가장 유명한 곡은?
이분 역시 곡이 많겠지만...
그래도 역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아닐까 싶다.

오스트리아는 1866년, 프로이센과 전쟁을 하게 되었다.
당시 군력과 장비가 열악했던 오스트리아 군대가 불과 7주 만에 패전하면서,
경제는 바닥이었고 국민들은 심적으로 피폐해지고 자긍심도 곤두박칠 친 어두운 분위기였다.

문화 역시 왈츠를 추던 무도회에서, 비용이 적게 드는 음악회로 유행이 바뀌게 되었다.
이때 빈 남성합창협회의 지휘자였던 요한 헤르베크는 쾌활하면서도 애국적인 곡들을 공연해서 오스트리아 국민들을 끌어안고자 했다.

이런 생각으로,
당시 음악궁정무도회 음악 감독이었던 요한 스트라우스에게 카니발 음악회의 합창곡을 의뢰했다.

그는 도나우 강을 걷다가 오스트리아 젖줄 도나우강을 노래한 '카를베크' 시에 영감을 얻어서
곡을 작곡했고
빈 남성 합창단원인 요제프 바일가 그의 곡에다 가사를 붙여서 남성합창이 들어간 왈츠 곡이 된다.
그러나 초연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었다.
이후 파리만국박람회 개관기념 연주회에서
합창을 뺀 순수 오케스트라 버젼으로 편곡 해서 큰 호평을 받게되었고,
이때부터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 유명해졌다.

매년 1월1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신년 음악회가 요한 스트라우스 곡들을 위주로
구성되어 오전에 열린다.

상임 지휘자가 없는 빈필의 특성상
해마다 어느 명 지휘자가 세계 최대 수준을 이끌고 연주를 들려줄가를 두고서
음악애호가들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연주회가 끝나고 앵콜곡으로 위의 두 곡이 연주되는 것이 신년 음악회 오랜 전통이다.
참고로 도나우강은 푸른색이 아니라 한다
알프스의 녹은 물이 이룬 빛깔이라 하니까 탁하다 보면 된다.

그러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의 표현으로
전쟁의 상처를 입었던 사람들의 가슴 속에 밝은 희망을 심어 주었던 곡이었기에
오스트리아에서는 비공식적으로 이 작품을 국가로 여길 정도다.

왈츠가 사랑받은 이유 중 하나
- 악보에 담을 수 없는 그 짜릿함
- 음악이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
- 손에 닿지 않는 달콤한 설레임
맞나?
? ?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은
설명과 함께 하는 영상으로
준비해 보았다...^^

https://youtu.be/0sNlBWl2DF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