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6 12:37]
 ▲ 조덕영 박사 (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위대한 파스퇴르 연구소
에이즈(AIDS)는 21세기 현대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이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던 80년대 중반, 에이즈를 옮기는 바이러스를 발견하여 최초로 세상에 알린 곳이 있다. 바로 프랑스의 파스퇴르 연구소였다. 최초의 에이즈 바이러스 발견 공로에 대한 시비가 일부 있었으나 이제는 누구도 그 공로가 파스퇴르 연구소의 몫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파스퇴르가 나이 66세 되던 해인 1888년에 설립된 이 연구소는 개의 무서운 전염병인 광견병의 예방법을 발견한 파스퇴르의 업적을 기념하여 시작되어, 현재는 18개의 연구소가 프랑스뿐 아니라 각 나라에 설립되어 있다. 근대 의학의 창시자였던 파스퇴르의 명성은 이렇게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우유를 처음 젖소에서 짜내는 일을 착유(窄乳)라 한다. 방금 짜낸 우유에는 미생물이 거의 없지만, 우유는 영양이 풍부한 음식물이어서 곧 많은 세균이 달라붙어 번식하게 된다. 우리 눈물방울만한 우유 안에만 해도 500만 마리가 넘는 세균이 존재한다. 또 이 미생물들은 생육에 유리한 조건만 주어지면 금 새 엄청난 숫자로 불어나 버린다.
여기에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미생물도 있고 해로운 미생물도 있다. 그래서 우유 가공 공장에서는 살균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데, 살균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낮은 온도에서 하는 살균법을 '저온 살균법'이라 하는데, 이것은 파스퇴르 살균법이라고도 하며 바로 파스퇴르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살균법이 발전한 오늘날에도 파스퇴르 살균 우유는 값이 비싼 편이다.
필자가 대학원에서 연구한 논문 중에는 우유 살균에 있어 에너지 소비에 관한 부분이 있었는데 동일 조건에서 저온 살균을 많이 하는 유가공 업체에서 에너지 소비가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도 우유 제품 값 상승의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이렇게 파스퇴르 우유는 양질의 고급우유다.
파스퇴르의 어린 시절
경건한 믿음의 사람이면서 인류의 질병 예방과 치료에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공헌을 남긴 미생물학자였던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는 프랑스 동쪽에 있는 작은 도시 쥐라(Jura)주 돌르(Dole)에서 태어났다. 나폴레옹 군대의 직업 군인으로 오랫동안 일하다 퇴역하여 가죽 공장에서 일하던 그의 아버지는 애국심이 강하고 의지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군인인 남편을 잘 따르던 그의 어머니는, 제대로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인내심이 강하고 신앙인으로서 자녀들을 주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파스퇴르는 남들보다 탁월한 면을 보인 적은 없었다. 그저 평범하기만 하였고, 단지 그림 그리기에 남다른 재주를 보였을 뿐이었다. "루이는 앞으로 훌륭한 화가가 될지도 모르겠어."
주위의 어른들은 파스퇴르의 그림 솜씨에 감탄하곤 했다. 지금도 프랑스 파리의 파스퇴르 연구소에는 그가 그린 그림들이 여러 편 걸려 있는데, 특히 그의 어머니를 그린 매우 섬세한 초상화는 그가 얼마나 어머니를 사랑했는지를 잘 전해 주고 있다. 중학교 시절, 파스퇴르는 잠시 병을 앓아 학업을 중단한 적이 있었다.
"하나님, 우리 루이는 침착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이입니다. 속히 건강을 회복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아이로 자라나게 해주세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덕분에 곧 건강을 되찾은 파스퇴르는 파리의 유명한 고등 사범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이곳에서 그는 당시 "불소"(弗素, F)라는 원소를 발견하여 유명해진 화학자 안토니 바라드 교수의 조수가 된다. 이때 그는 수학과 화학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하여 젊은 나이에 이학박사가 되었으며, 시골 중학교를 거쳐 1849년 스트라스부르그 대학 화학교수가 된다.
그곳에서 또한 파스퇴르는 아내 마리 로랑을 만나게 되는데 끈질긴 구혼 끝에 대학 총장의 딸인 그녀와 결혼하는 행운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의 아내는 파스퇴르의 연구를 힘닿는 데까지 돕고 조수의 역할도 감당한 훌륭한 내조자였다. 그뿐 아니라 그녀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었다. "루이, 오늘은 다른 날도 아니고 바로 자네의 결혼식 날일세." 결혼식 날 주례 성직자가 예식을 알리는 데도 파스퇴르는 실험실에 틀어박혀 진행 중인 실험을 유유히 마치고는 친구 샤피가 재촉을 하자 그제 서야 느긋하게 식장에 나타날 만큼, 이미 괴짜 과학자로서의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 이때는 그가 스물일곱 살 되던 해 5월이었다.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다
생활이 안정되면서 파스퇴르의 연구는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파스퇴르는 1854년 리우에 새로 세워진 이과대학의 교수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리우 지방에는 포도주 제조 공장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그는 연구에 커다란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파스퇴르 교수님, 포도주가 자꾸 신맛이 나곤 하는데 무슨 해결 방법이 없을까요?"
포도주 제조업자는 파스퇴르에게 연구를 부탁하였다. "포도주가 시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유가 시게 되는 것도 포도주와 같은 이유일까? 혹시 현미경으로 보이는 이 작은 미생물들 때문은 아닐까?" 파스퇴르의 이러한 착상은 그 당시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생명은 우연히 발생하지 않는다(생물속생설)
지금은 효모(酵母)라고 불리는 미생물이 작용해서 포도주와 맥주와 같은 발효주들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17세기까지만 해도 미생물은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벨기에의 헬몬트(1577-1644)라는 과학자는 쥐처럼 큰 동물도 우연히 생겨날 수 있다고 주장하던 시절이었다.
"젖은 셔츠와 밀알을 항아리 속에다 넣어두었더니 셔츠에서 생기는 습기 때문에 밀에서 쥐가 생겨났다. 작은 생물들도 조건만 된다면 자연적으로 우연히 생겨날 수 있다."
밀을 먹으려고 항아리 속으로 쥐가 들어가서 발생한 우스꽝스러운 일이었지만, 당시에는 모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생각 중 하나였다. 그러나 17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 이론은 허황된 것이라는 증거가 하나 둘 나타났다.
그 이후, 파스퇴르는 이와 같은 자연발생설을 결정적으로 뒤엎어버리게 되었다. 파스퇴르는 미생물이 맥주나 포도주를 상하게 하고, 동물이나 사람에게 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밝혀냈다. 뿐만 아니라 맥주나 포도주가 되게 하는 미생물과 포도주를 시게 만드는 미생물이 서로 다르다는 것도 증명하였다.
포도주가 시게 되는 것은 젖산이라는 물질 때문인데, 이것은 탄수화물이라는 영양소에 젖산균이 작용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술의 신맛이나 부패된 빵의 신맛도 모두 젖산 때문이고, 김치의 신맛이나 요구르트의 신맛 등도 모두 젖산 때문이다. 파스퇴르는 이들 신맛을 일으키는 미생물의 번식을 막으면 부패 현상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포도주를 끓여서 미생물의 번식을 막고, 다른 포도주는 그대로 저장한 다음 여러 달이 지난 후 맛을 비교해 보았다. 그랬더니 끊여서 저장한 포도주는 신맛이 훨씬 덜하였다. 신맛을 일으키는 미생물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바로 저온 살균법인 파스퇴르 살균법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17세기말 이탈리아 의사요 철학자였던 레디(Francesco Redi, 1626-1697)의 실험을 통해 부정되는듯하던 생물의 자연발생설이 어찌 된 일인지 18세기가 되면서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생물의 자연발생설을 옹호했으며, 심지어 영국의 성직자였던 존 니덤(1713-1781)은 노골적으로 미생물이 자연적으로 발생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1745년에 발표된 니덤의 논문은 많은 소동을 일으켰다.
"염소 고기를 삶은 즙을 플라스크에 넣고 공기 중에 있는 미생물들이 못 들어가게 마개를 닫았다. 그리고 가열한 후 며칠을 두었더니 플라스크 안에 온통 미생물이 번식하였다. 생명은 분명히 자연 발생한다."
여기에는 종교 지도자들도 합세하였다. 그 이후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은 채 100년이 지나고 말았다. 미생물을 연구하던 파스퇴르는 이 일에 큰 의문이 생겼다.
'성경에 보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6일 동안에 모든 세계와 생물들을 창조하시고 7일째는 쉬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도 생명이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면 성경의 말씀과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종교 지도자들까지도 자연발생설을 믿는 것일까?'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는 이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자연 발생설은 성경의 내용과는 맞지 않아. 이것을 밝히는 작업이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의 유명한 실험은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그는 목이 긴 유리그릇을 만들어서는 S자 형으로 목을 구부렸다. 그리고 이것은 백조의 목처럼 생겼다고 해서 백조목 플라스크라고 하였다. 여기에 고기즙을 넣고 가열한 후 그릇의 마개를 닫지 않고 공기 중에 방치하였다. 목을 구부려 놓았기 때문에 미생물들이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 생각은 들어맞았다. 공기 중에 떠돌아다니던 미생물들은 구부러진 목에 걸려서 유리 그릇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으며, 그릇 안의 즙에는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에는 솜에다 공기를 불어넣어서 관찰해 보았는데, 솜에 미생물들이 번식한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이것을 즙에 넣어 보았더니 마찬가지로 금방 부패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솜을 가열한 다음 넣어 보았다. 즙은 다시 상하지 않았다. 이 유명한 실험은 이렇게 끝이 났다.
이 실험으로 생물의 자연발생설은 완전히 부정되었으며, 생물은 생물로부터만 발생한다는 생물 발생설이 정식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1864년 파스퇴르는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의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자연발생설은 이 단순한 실험으로 치명상을 입었으며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도 소개되고 있는 유명한 실험이다. 지금은 어느 누구도 미생물이 자연적으로 발생한다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미생물들도 덩치 큰 동물들 못지않게 복잡한 구조를 가진 생물들임이 밝혀지고 있다. 사람의 몸 안에 존재하는 대장균은, 길게 늘어놓을 경우 1밀리미터가 되는 유전 정보를 몸 안에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 대장균의 길이는 그보다 1천분의 1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작은 미생물이다. 이들 1밀리미터 길이의 유전 정보의 명령을 따라서 대장균은 자그마치 2,800종류나 되는 단백질을 수초 만에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눈에도 보이지 않는 이 작은 미생물은 어떻게 그렇게 정교한 단백질을 만들 수 있을까? 정말로 오랜 시간에 걸쳐 우연히 진화하여 그렇게 된 것일까? 오늘날 과학이 발달하였다고 하나, 이 작은 미생물이 만드는 단백질 하나도 생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하찮은 대장균이 만들어내는 단백질 한 개쯤은 가장 진화된 생명체라는 인간이 쉽게 만들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왜 대장균이 만드는 단백질 하나도 만들 수 없는 것일까? 우리 사람의 몸 안에는 자그마치 5만 종류가 넘는 다양한 단백질들이 있는데 이것은 또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100조 개에 달하는 인간의 각 세포는 매초마다 2천 개의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모든 세포는 잠시도 졸지도 않고 쉬지도 않으며 어떤 뚜렷한 목적성을 가지고 일하고 있음에도 너무도 조용히 일하고 있기에 우리 사람들은 전혀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이 모든 생체 컴퓨터를 설계하고 가능하게 하신 분은 누구일까?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편 136편 5절).
파스퇴르는 이 말씀과 그 사실을 잘 아는 과학자였다. 다만 부정되는듯하던 생명의 자연 발생설이 20세기에 들어와서, 그래도 생물은 우연히 자연 발생되었다고 생각한 소련의 유물론 생화학자 오파린의 화학 진화설에 의해 다시 고개를 든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 1:28).
사람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할 때 생명이 어디로부터 왔는가 생각해낼 수 있는 이론이 우연주의 진화론뿐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렇게 생명은 생명으로부터만 가능하다는 유명한 생물 속생설을 증명한 파스퇴르이지만, 그의 업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마마 또는 두창이라고도 부르는 천연두는 천연두바이러스에 의해 일어나는 무서운 전염병이다. 수년전 세계의 의학자들은 이 병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질병이라고 선언하였다. 이것은 에드워드 제너(1749-1823, 그는 목사의 아들이었다)라는 영국의 한 크리스천 의사가 발견한 예방접종에 의해 우리 몸에 이 질병을 이길 수 있는 면역이라는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예방주사를 맞으면 가벼운 병에 먼저 걸리게 되어 우리 몸에 그 병에 대한 저항력이 생겨나게 된다. 그런데 천연두뿐 아니라 다른 전염병에도 이와 같은 예방접종을 하면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낸 사람이 바로 파스퇴르다. 먼저 가벼운 병을 일으켜 면역을 얻게 하려면 특별한 배양균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을 백신이라고 부른다. 백신이나 예방접종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파스퇴르였다. 예방주사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우리 인류는 여러 가지 전염병으로 커다란 고통을 당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파스퇴르의 이와 같은 명성은 쉽게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가 가축들 사이에 유행하던 무서운 탄저병에 대한 백신을 개발하였을 때 그 당시 많은 의사들과 수의사들은 그가 만든 백신을 믿지 않았다.
"의사도 아닌 파스퇴르가 조금 유명해졌다고 마치 예방주사로 모든 전염병을 물리칠 수 있는 것처럼 고집하다니 믿을 수가 없어."
주로 면양과 소 말 등의 초식 동물들에게 많이 발생한 탄저병은 다리가 몹시 약해져서 무리를 따라다니지 못하게 되고 비틀거리다가 갑자기 죽어버리는 병이었다. "탄저병은 이 병에 걸려 죽은 동물에게서 살던 세균이, 벌레 등을 통하여 주위의 풀들을 오염시켜서 이 풀을 먹은 다른 동물들이 전염되는 것입니다. 내가 개발한 백신을 맞으면 탄저병을 막을 수 있습니다."
"파스퇴르의 주장은 엉터리야. 이번에야말로 우리들이 파스퇴르의 코를 납작하게 만듭시다."
파스퇴르의 업적을 시기하던 많은 과학자들은 그가 개발했다는 백신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기회야말로 파스퇴르의 명성에 큰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당시 의학 협회에서는 그가 무엇을 발표하면 의사들은 아무도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줄 개랭이라는 의사는 그와 주먹다툼 일보직전까지 가고 결투를 신청할 정도로 의사들은 그의 연구 성과들을 불신하였다.
오늘날까지도 그의 업적에 대해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일부 있다. 그런 오해를 품은 사람들 대부분은 그의 성격과 인격을 들먹거리곤 한다. 그러나 오히려 이는 그가 한 분야의 개척자로서 얼마나 많은 오해와 불신을 이겨내고 위대한 과학적 성취를 했는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공개적인 예방접종 실험의 성공
1881년 5월 5일, 파스퇴르는 연구와 실험뿐 아니라 오해와 시기 그리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삼중고의 상황 하에서 마침내 과학사에 있어 유명한 공개실험을 시작하였다. 실험 장소는 프랑스 물랑의 근처 마을인 푸이르포르란 곳의 어느 수의사 목장이었는데, 그도 파스퇴르의 입장에 반대하던 사람이었다.
프랑스 신문들은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으며, 영국 런던에 있는 《더 타임스》지에서는 특파원을 보낼 정도였다. 의사와 수의사 그리고 농학자들과 여러 과학자들이 이 흥미 있는 실험을 보기 위하여 모여들었다. 그들은 파스퇴르의 실험이 실패하고 말 것이라고 공공연히 떠들어댔다. 참으로 이 실험은 파스퇴르 개인의 자존심과 명예가 걸린 실험이었다.
"하나님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도 경제적 어려움이 없이 건강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를 돌보십니다. 예방접종이야말로 바로 그런 것입니다."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마 25:40).
그는 이미 실험실에서 확인하였던 이 실험이 반드시 성공해서 많은 사람들의 오해를 풀고, 큰 경제적 부담이 없이 사람과 동물들에게 이 방법이 널리 보급되기를 기대하였다. 실험에 사용된 면양은 모두 60마리였다. 이중에서 10마리는 그대로 두고, 나머지 50마리의 면양을 각각 25마리씩 나누어 두 무리로 분류하였다. 파스퇴르와 그의 조수들은 25마리를 다른 무리와 구별하기 위해 한쪽 귀에 구멍을 뚫고 이들 면양에게만 탄저병 백신을 주사하였다. 그런 다음 50마리의 면양을 함께 목장에 풀어주었다.
2주일 후에 보니 접종을 받은 면양들은 가벼운 병을 앓았지만 모두 회복되어 있었다. 5월 17일, 파스퇴르와 조수들은 백신을 한 번 더 접종하였다. 그리고는 면양들이 또 한 번 가벼운 병에 걸린 다음 회복되는 그달 말까지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2주일 후인 5월 31일, 파스퇴르 일행은 다시 목장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50마리의 면양들 모두에게 탄저병을 일으키는 맹독의 배양균을 오른쪽 넓적다리에 주사하였다.
"이제 6월 2일이 되면 아무런 접종을 받지 않았던 면양들은 모두 죽을 것이지만, 먼저 예방접종을 받았던 면양들은 한 마리도 죽지 않을 것입니다."
파스퇴르는 모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장담하였다. 이것은 자신의 명예를 건 엄청난 도박이었을까? 아니면 충분히 예측 가능한 그의 확신이었을까? 드디어 역사적인 6월 2일이 되어 많은 구경꾼들이 목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물랑 농업회의 회장인 프랑스 농림성의 고관도 있었다. 그밖에도 의사와 수의사 그리고 유럽 여러 나라의 신문사 기자들이 지켜보았다. 그들이 목격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한마디로 그날의 결과는 파스퇴르가 예언한 바로 그대로였다. 목장에는 22마리의 면양들이 나란히 죽어 있었으며, 그 옆에는 2마리의 면양들이 괴로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도 한 시간이 채 가기 전에 숨을 거두었고, 나머지 한 마리도 결국 그날을 못 넘기고 죽고 말았다. 그러나 접종을 받은 면양들은 모두 살아서 유유히 풀을 뜯고 있었다. 실험은 이렇게 끝났다. 이 실험의 결과에 대해 당시 영국 《더 타임스》지의 특파원은 이렇게 기사를 썼다.
"이제 농업계는 전염병에 대하여 의심할 여지없이 예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예방법은 비싸지도 않으며 어렵지도 않다. 단 한사람이 하루 1000마리의 면양을 접종 시킬 수 있다."
그 후 2년 동안 약 10만 마리의 동물들이 접종을 받게 되었다. 이 중 탄저병으로 죽은 동물은 단지 650마리에 불과 하였는데, 이것은 접종이 있기 이전에 10만 마리당 약 9000마리가 이 병으로 죽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였다. 이 실험을 통하여 예방접종의 효험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사람과 동물을 전염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백신의 개발이 점점 더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여러 업적은 차치하고, 오직 이 한 가지 사실 만으로도 파스퇴르는 분명 인류에게 크게 기여한 위대한 과학자였다. 그러나 파스퇴르에 대하여 우리들이 지나쳐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사실이 또 한 가지 남아 있다. 그것은 바로 그의 겸손한 믿음이다.
곤충학자 파브르와의 인연
파스퇴르는 한때 『곤충기』를 써서 유명한 파브르와 사귐을 가진 적이 있다. 당시 프랑스 남부 지방에서는 누에에서 실을 얻는 양잠업이 성행하였는데, 그 누에에 병이 크게 번져 양잠업자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었다. 누에의 몸에 반점이 생기는 이 병을 연구하던 파스퇴르가 당시 유명한 곤충학자였던 파브르를 찾아간 것이었다. 파스퇴르는 파브르보다 꼭 한살이 위였다. "파브르 선생, 누에에 생기는 이 반점은 원인이 무엇일까요? 곤충에 대해 누구보다 애정이 많으신 파브르 선생께 조언을 구합니다."
"질병의 치료에 관해 파스퇴르 박사만큼 유명하신 분이 누가 또 있습니까? 큰 도움을 못 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처럼 우리 두 사람이 작디작은 미생물과 곤충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사랑하고 관심을 갖게 돠었다는 것이 참으로 우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즈음 교회에서 과학 강좌를 열고 있지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창조 세계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듣고는 큰 은혜를 받곤 한답니다."
파스퇴르는 비록 파브르에게서 누에의 질병치료에 대한 큰 도움을 얻지는 못했지만, 같은 신앙인으로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프랑스가 낳은 두 유명한 생물학자가 동시대인으로서 모두 생명의 우연발생을 부정하고 진화론을 반대한 그리스도인이었다는 것은 우리들의 흥미를 끈다.
"자연 발생이 일어난다는 것은 생식 인자가 나온다는 것이요 생명이 우연히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생명부여자로서의 창조주 하나님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는 것이다. 물질이 하나님을 대신하게 되며 하나님은 단지 우주 운동의 부여자로서만 가끔 기억될 것이다."
이렇게 파스퇴르는 우연주의 진화론을 부정하였다. 파스퇴르는 결국 6년 만에 혼자의 힘으로 누에의 질병을 일으키는 두 가지 형태의 박테리아를 찾아내고 치료하는 방법도 알아내어 프랑스의 양잠업을 되살렸다.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끈기를 이어받은 파스퇴르는 정말로 집념의 과학자였다.
"의지, 일하는 것 그리고 기다림은 사전에서 제일 중요한 단어이다. 이 세 단어야말로 내게 성공의 금자탑을 줄 세 개의 초석이다."
10대 초반 그가 썼다는 이 말은 그가 지닌 끈기가 어떠하였는가를 상징적으로 우리들에게 알려준다.
1881년 탄저병 실험이 있은 후 어느 유명한 신문은 그를 가리켜 "프랑스 과학의 영광"이라고까지 칭송한 적이 있다. 이만큼 그의 업적은 프랑스를 뛰어넘어 모든 인류에게 커다란 은인이었다. 이런 그가 매우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것은 우리를 더욱 감동시킨다.
"나는 내가 무었을 알면 알수록, 내 믿음이 겨우 시골 농부의 그것과 다를 게 없다고 느끼곤 합니다." 파스퇴르는 이렇게 나이가 들면서 믿음이 점점 깊어갔다고 알려지고 있다. "아마 황태자께서 도착하신 것 같군요. 제가 좀 더 일찍 입장했어야 했는데------ 참으로 죄송합니다." 런던서 개최된 국제 의학 회의에 프랑스 대표로 참가하여 회의장인 세인트 제임스 홀에 그가 들어섰을 때,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를 듣고 그가 멋쩍어하며 했다는 이 유명한 이야기도 그의 성격의 일단을 보여주는 일화다.
파스퇴르의 노년
1888년 파스퇴르는 개의 질병인 광견병의 예방과 치료법을 개발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에서 마련해준 '파스퇴르 연구소'의 초대 소장이 되었다. 연구소 낙성식에서 파스퇴르는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습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후 디프테리아의 연구에 마지막 온 힘을 쏟던 그는, 지병인 중풍(뇌출혈)이 악화 되어 1895년 9월 28일, 73세의 나이로 하늘나라로 갔다. 파스퇴르가 숨을 거둘 때 그는 한손으로는 아내의 손을 잡고 다른 손에는 십자가를 쥐고 있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건강과 병 없는 사회를 위하여, 집념과 끈기로 온몸을 바친 이 경건한 믿음의 과학자 파스퇴르를 사용하신 것이다. 파스퇴르가 세상을 떠나자, 프랑스 정부는 국가의 이름으로 장례를 치러 국가와 인류에게 공헌한 그의 업적을 기렸다. 국민들 모두가 그를 칭송한 것은 물론이었다. 그리고 이제 파스퇴르가 프랑스 최고의 위인들이 묻힌 파테온 묘지에 묻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그만 문제가 생겼다. 파스퇴르의 일평생 훌륭한 내조자였던 그의 부인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묻힌 팡테온 묘지에는 남편 파스퇴르의 시신을 절대로 보낼 수 없다고 고집스럽게 버틴 것이다. 결국 그의 시신은 파스퇴르 연구소 지하에 묻히게 되었다.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었을까?
그의 묘지 천장에는 4명의 천사가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과학이라고 새겨진 명패를 각각 하나씩 들고 오늘날도 그의 믿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한 사람의 고집스런(?) 믿음이 하나님을 믿은 한 과학자의 생애를 생생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알리게 된 것이다. 얼마나 멋진 고집(?)인가! 이런 일화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세상 사람들이 오히려 안타깝기만 하다. 아무튼 파스퇴르가 근대 의학 연구의 진정한 창시자라는데 대해 오늘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더불어 그는 병리학과 면역학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출처]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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