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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수 선교사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
예수님은
다락방 강화(요13-17절)에서
포도나무 비유(요15장)를 말했습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요15:1-2절)
왜 이 비유를 말씀했을까?
예수님이 곧 십자가에 죽음으로 자신들을 떠날 것을 제자들이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절망한 제자들에게 진리를 밝힘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일으켜 주길 바랬습니다.
물론 그 당시 이 계시는 제자들에게 가려졌습니다.
그러나 나중을 위해서라도 예수님은 진리를 전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를 열기 위한 서막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제자들은 슬퍼하기보다 기뻐하여 기대감을 가져야 했습니다.
스승의 부활과 성령 강림으로
구약 시대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이스라엘과 하나님 나라가 출현할 것입니다.
제자들은
새로운 시대에 속한 일꾼들이 될 것입니다.
이를 알리기 위해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를 계시했습니다.
새로운 이스라엘을 세우는 방법은
둘입니다.
제함과 깨끗케 함입니다.
제함은 옛 이스라엘을 제거시키는 것입니다.
이들이 계속 존재한다면 아들의 복음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깨끗케 함은 제자들을 새로운 시대의 일군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700-800년 전 이사야가 이미 예언했습니다.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사6:11-13절)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로
곧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될 것을 내다보고
포도나무 비유를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새로운 이스라엘에 속한 가지들이 될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베푼 목적은 무엇인가요?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15:8절)
속함(칭의)은 열매(성화)를 목표합니다.
곧 예수님은 열매가 무엇를 가리키는지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15:9-10절)
계명을 지킴으로 제자들은 열매를 맺을 수 있고
이로써 예수님의 제자임을 증명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랑이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구약에서도 이스라엘은 포도나무로 비유되었습니다(사5장).
그럼 구약의 이스라엘이 멸망 당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삼림 중 여러 나무 가운데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
불에 던질 화목이 될 뿐이라
불이 그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도 태웠으면
제조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겔15:2-4절)
이스라엘은 시내산 율법을 준수치 않음으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언약의 파기를 뜻합니다.
언약의 파기는 곧 이스라엘의 파멸을 초래시켰습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것은
이리도 중요합니다.
구약 시대 스라엘을 상징하는 포도나무의 특징은
둘입니다.
하나. 포도나무는 열매 이외 다른 존재 목적이 없다(요15:8절).
여기 열매는 신앙에 근거를 둔 윤리적 선행입니다.
즉 성화를 이루지 못하는 신자는 불쏘시개로 태워질 뿐입니다.
둘. 포도나무는 척박한 땅에서 자라야만 단 열매를 맺는다.
여기 러시아 흑해 지역은 포도나무들이 많습니다.
양질의 포도나무들이 심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경사진 돌밭에서 자랍니다.
비가 와도 물이 쉽게 빠집니다.
물을 품지 못하는 곳에 심어집니다.
기름진 밭이나 물 많은 밭에선 단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윤리적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동일한 운명을 맞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단 열매를 맺도록 돕기위해
고의적으로 때때로 고난과 역경을 성도들에게 보냅니다.
그런데 왜 기독교, 교회 그리고 목회자가
세상의 번영과 형통을 추구하며
성공한 자, 출세한 자와 유명한 자가 되려 하는지요?
그렇게 하면 서서히 타락하지요.
번영신학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우리의 스승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왜 마구간에서 출생했고
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또는 목수로 살았으며
무엇 때문에 표적을 행한 후에도 자신을 감추었는지?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기 위해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을 스스로 감추었습니다.
우린 예수님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그 만큼 우린 사복음서를 너무나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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