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육자료/교회장로

[스크랩] 「기도」에 관하여

「기도」에 관하여



기독교에 있어서의 기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쉬지말고 기도하라'(살전 5:17)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이 종교심을 표현하는 것이기는 할지라도 그것 자체로서 덕목이 될 수는 없습니다. 즉 무조건 기도를 오래하는 것이나 기도를 많이 하는 것 자체가 결코 기독교의 덕목은 아닌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기도에 대해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기도는 가증하다'(28:9)고 밝히고 있으며, 예수님께서는 산상보훈 가운데서 '기도할 때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重言附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6:7). 그리고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에 대한 기도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임을 명백히 가르치고 있습니다(31-32). 그런 것은 굳이 구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는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의 올바른 기도 보다 오랫동안 많이 기도하는 것이 미덕인 양 가르치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 기도의 내용들이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라면 곧 생존의 문제입니다. 주님께서 그 생존의 문제에 대해서 조차 간구하지 말라고 하셨다면 더 배불리 먹고, 더 많이 마시고, 더 잘 입기 위해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간구할 내용이 전혀 아닙니다. 나아가 사업이 잘되도록, 자식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도록, 물질의 축복을 받도록, 오래 살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은 더더욱 우리의 간구의 내용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성경의 위에 기술된 가르침들을 외면한 채,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말을 인용해 가면서 자의적인 길고 오랜 기도의 타당성을 주장할런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 구체적인 뜻에 따른 검증없이 그냥 많이, 오래 하는 기도는 아무런 값어치 있는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에서 기도에 대해 가르치는 부분들을 그 말씀하시는 분의 뜻을 따라 더욱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의적 잘못된 기도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 기도에 대해 잘 이해하기 위해 한 예를 들어 봅시다.

<어느 아버지가 자기 자식에게 모든 재산을 상속했습니다. 문서에 도장까지 찍었습니다. 모든 아버지의 재산이 이제 자식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 날마다 찾아와, '아버지! 아버지의 재산을 저에게 주십시오' '아버지의 재산을 저에게 주셔야만 됩니다' 라고 해댄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만일 그런 간구를 아침 저녁으로, 나아가 밤을 세워 외쳐 부르짖어 댄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그것은 결코 아버지를 신뢰하는 믿음에서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그것은 완전한 불신행위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러한 태도는 불신을 나타내는 것으로 오리려 아버지를 욕되게 하는 것이며 화나게 하는 행위일 따름입니다.

 

또한 함께 살고 있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우리와 함께 삽시다' '우리 집에 오십시오' 라고 부르짖는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요? 함께 생활하고 있는 자기 아버지에게 그러한 요구를 밤낮없이 끊임없이 해댄다면 그것은 아버지를 무시하는 처사일 따름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기도는 이런 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만일 그런 식으로 기도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기도일 따름입니다. 그런 기도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써 그의 상속자이며, 그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어 그를 '아바, 아버지'(8:15)라 부를 수 있는 자녀가 되었다면 더 이상 하나님께 달라고 조르며 간구할게 없습니다. 나아가, 이미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신다면, 또다시 '우리와 함께 있어 달라'든지 '오늘 밤에 성령이 우리와 함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하라'는 표현은 부적절한 것입니다. 

만일 그런 식으로 오래동안 되풀이 해서 기도한다면 완전한 불신행위를 계속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우리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6:9-1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기도를 가르치시고 오늘 우리의 기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이것을 가끔 암송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닙니다. 도리어 이 기도의 범주에 우리를 묶어두어 이 기도와 더불어 기도하며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번씩 이 기도문을 단체, 혹은 개인적으로 암송하는 것 그 자체로서 그렇게 기도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가르치신 기도가 우리의 기도이기를 추구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선하게 살도록, 더 이상 이 세상을 탐하지 않도록 기도할 수 있을 따름일 것입니다.


'기도회'에서 다른 사람이나 어떤 일을 두고 중보기도를 할 때도 우리는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그의 계시된 말씀을 구체적으로 '들음'이 더 중요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바램」에 따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나 일을 두고 기도할 때, 그 사람이나 일이 잘되도록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중보기도 하는 대상인 그 사람이나 일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지 않도록, 그리고 우리의 욕심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이 우리의 기도의 목적이 되며 그분에게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인간인 나/우리가 생각하고 바라는 것들이 의로운 것들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해입니다. 우리 인간은 부패한 존재이며 종교적인 방편을 통해 자신의 욕심을 끊임없이 채워 나가려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한 우리가 스스로 바라는 대로 되기를 원해 기도한다면 그것은 원천적으로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올바른 기도내용은, '우리 인간의 생각은 늘 악하며 하나님의 뜻은 항상 거룩하니, 우리의 생각과 바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는 내용이어야 합니다.

 

이광호 목사

출처 : 예수 코리아
글쓴이 : 예수코리아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