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경 기자 국민일보 2018.09.04. 04:02
대구·경북·강원권 최다… 서울 지역 264명에 그쳐
고3 수험생 감축 추세 감당하기엔 턱도 없어
지방대 시련 시작일 뿐 자구 노력 없으면 도태
대학 기본역량 진단 결과가 3일 최종 확정됐다. 교육부가 지난달 23일 내놓은 가결과에 여러 대학이 이의신청을 접수했으나 교육부는 단 한 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역량 진단이란 명칭으로 포장했지만 본질은 구조조정이다. 전국 대학을 자율개선, 역량강화, 재정지원제한 등급으로 구분하고 역량강화와 재정지원제한 등급에서 입학정원을 감축한다. ‘대학 살생부’란 별칭이 붙은 이유다. 진단 결과 정원 감축은 지방대에 집중된다. 하지만 지방대가 겪을 시련은 시작일 뿐이다.
대학생, 어디서 얼마나 줄어들까
전국 4년제 일반대학에서 줄어드는 입학정원은 6888명으로 추산된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이 ‘교육부 2018 대학 기본역량 진단 결과’를 토대로 계산해본 결과다. 교육부가 만든 구조조정 공식은 이렇다. 역량강화 등급과 진단 제외 대학은 2018학년도 기준으로 입학 정원의 10%를 줄여야 한다. 역량강화 등급보다 부실 정도가 심한 재정지원제한 등급은 Ⅰ, Ⅱ로 구분했다. 재정제한 Ⅰ은 15%, Ⅱ는 35% 감축이다. 소형 대학(편제정원 1000명 미만)은 정원 감축 대상에서 제외한다. 소형 대학이라도 재정제한 Ⅱ그룹에 속했다면 예외 없이 입학 정원의 35%를 줄여야 한다.
구조조정 공식을 역량강화, 재정제한, 진단제외 등급 명단에 대입하면 입학정원 감축 인원이 산출된다. 대구·경북·강원권이 1662명(24.1%)으로 가장 많았다(표 참조). 호남·제주권이 1590명(23.1%)으로 뒤를 이었고 부산·울산·경남권 1292명(18.8%), 수도권 1207명(17.5%), 충청권 1137명(16.5%) 순이었다.
수도권 대학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타격을 입었다. 특히 대형 대학이 밀집해 있는 서울 지역은 사실상 건드리지 않았다. 서울에선 입학 정원 264명이 줄어드는데 전체 감축 인력의 3.8%에 불과한 수준이다. 역량강화 등급에 들어간 덕성여대(130명 감축 권고 예상)를 빼면 감축 대상이 주로 체육이나 종교 특화 대학들이다. 따라서 실제 줄어드는 입학 정원은 미미하다. 비수도권에서 대학생 21명이 줄어들 때 서울 지역은 1명이 줄어들게 된다.
벚꽃 피는 순서로 대학이 망한다
지방대는 얼마나 살아남을까. 전망은 암울하다. 구조조정의 룰이 지방대에 불리하게 바뀌었다. 선택받지 못하면 자동적으로 도태되는 시장 시스템이다. 2015년 첫 구조조정 때는 고통분담 시스템에 가까웠다. 전국 대학을 A∼E 등급으로 나누고 A등급을 뺀 나머지 대학이 모두 정원을 줄였다. 입학 자원 감소의 충격을 분담하자는 취지였다. ‘벚꽃 피는 순서로 대학이 망할 것’(수도권에서 먼 지방부터 학생 수 감소 때문에 문을 닫을 것)이란 우려를 반영했다.
두 번째 구조조정인 이번 기본역량 진단에선 4년제 대학 187곳 중 160곳을 평가해 120곳에 자율개선 등급을 부여했다. 평가받은 4곳 중 3곳(75%)은 정원을 줄이지 않아도 된다. 정부가 행·재정적 수단을 동원해 반강제로 줄이는 입학정원은 4년제 대학과 전문대를 합쳐 2021년까지 1만명 규모다. 인위적 감축 인원을 최소화한 것이다. 1차 구조조정 당시 예고했던 ‘2015∼2017년 4만명, 2018∼2020년 5만명, 2021∼2023년 7만명 감축’ 로드맵은 폐기 처분했다.
입학정원 1만명 감축으론 수험생 감소 추세를 감당하기에 턱도 없다. 올해 고3은 57만9250명인데 3년 뒤에는 46만9168명으로 10만명 이상 사라진다. 이후 40만명대 초반까지 하락한다. 또한 고질적인 고학력 실업 때문에 대학 타이틀에 대한 매력이 줄었다. 서울 지역 명문대이거나 취업이 보장되는 학과가 아니라면 비싼 등록금을 주고 다닐 이유가 줄었다. 그래서 진학률도 감소하는 추세다. 1만명 감축 계획은 교육부가 손에 피를 묻히기 싫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입 개편도 지방대 불리
문재인정부는 현재 중학교 3학년이 치르는 대입제도를 개편했다. 전국 4년제 대학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위주인 정시모집에서 30% 이상 뽑도록 했다. 입시 전문가들은 수시에서 정시로 넘어오는 인원까지 포함한 실질 정시 비율을 35∼40%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가 정시 비율을 안정적으로 보장했다. 고3 학생 수는 매년 줄어든다. 서울 지역 대학의 입학 정원을 줄이지 않았다. 수험생들이 ‘인(in) 서울’ 경쟁이 쉬워지는 것으로 판단할 여지가 크다. ‘지방대 가느니 차라리 재수한다’ 내지는 ‘지방대 가서 반수(대학 다니며 대입 재도전)한다’와 같은 분위기가 나타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서울 소재 대학 진학열기가 높아지고 있다. 지방대에 정원 감축이 집중돼 다음 주부터 진행되는 수시 지원에도 상당 부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방대들이 순순히 주저앉을까. 입학정원 한 명이 줄어들면 지역에선 4년 뒤 1∼4학년 학년별로 대학생 네 명이 사라진다. 대학의 담을 넘어 지역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대학 정원은 정치의 영역에 가깝다. 그래서 지방대 몰락을 예단하긴 어렵다. 이번 기본역량 진단 때도 경기도가 ‘수도권’으로 묶여 서울 지역 대학들과 경쟁하게 되자 경기 지역 국회의원들이 집단으로 반발했다. 서울 지역 정원을 정부가 손대길 꺼려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학부모들이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서울·수도권의 파워가 지역균형 발전론을 눌러 지방대가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게 됐다는 시각도 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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