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의 기도]는 자괴(열등)감이 만들어 낸 괴물이다
이창모 목사의 김요한 지렁이 잡기(5)
글을 시작하며
[지렁이의 기도]는 김요한 목사의 자괴(열등)감에서 비롯된 恨이 만들어낸 비극적인 괴물이다. 그러므로 영적 자괴(열등)감에서 오는 김요한 목사의 恨이 [지렁이의 기도] 여러 곳에 여과 없이 투영되어 있음이 발견된다.
“나는 약 2개월간 50차례가 넘는 이런 일들을 반복해서 겪으면서도 여전히 목사들에 대한 실망과 불신이 누그러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그런 사람들을 위해 내 남은 인생의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다. 나는 예수님은 좋지만 기독교인들, 그중에서도 특히 목사들은 싫었다. 교회를 생각하면 연민의 마음이 물밀 듯이 몰려왔지만,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 위선과 허영심에 치가 떨렸다. 나는 더 이상 기독교인들과 엮여 살고 싶지 않았다.”(지렁이의 기도, p.131)
위의 글을 보면, 누구의 잘못인지는 차치하고라도, 김요한 목사가 한국교회로부터 받은 상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목사들에 대해서는 돌이킬 수 없는 미움으로(아마도 이 미움은 소속 노회의 선배, 동료, 후배 목사들로부터 면직 당한 것에 대한 지독한 아픔일 것이다), 또 교회에 다니는 신자들에 대해서는 치가 떨림(아마도 이 치 떨림은 자신이 담임했던 교회의 신자들이 자신을 지켜주지 않고, 그냥 교회를 사임하도록 방치한 것에 대한 지독한 배신감일 것이다)에서 비롯된 김요한 목사의 몸서리치는 핏빛 恨이 이 책에 서려 있다. 바로 이 치 떨리는 김요한 목사의 핏빛 恨이 [지렁이의 기도]라는 괴물을 탄생시킨 것이다.
새물결 플러스 출판사 김요한 대표 |
사탄은 자괴(열등)감에 사로잡혀 恨을 품고 있는 자들을 자신의 사냥개로 만든다.
20세기 초 오순절주의 시작을 가져온 거짓방언 열풍도 이런 자괴감에서 오는 恨과 깊은 관련이 있다. 사단은 세계 교회사의 가장 큰 비극이라고 할 수 있는 오순절주의의 시작을 위해 윌리엄 시무어의 자괴(열등)감을 교묘히 이용해 거짓방언을 교회에 뿌렸으니까 말이다.
1906년 LA 아주사 거리에서 거짓방언이 시작되었을 당시 미국 경제는 전반적으로 대단히 어려웠고, 특히 아주사 거리는 멸시와 천대의 대상인 가난한 흑인들의 빈민촌이 즐비했을 정도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더욱 심했다. 아주사 거리의 거짓방언 운동을 주도한 윌리엄 시무어도 당시 사회적으로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었던 흑인이었다.
그는 그의 스승인 백인 목사 로버트 파함에게서도 지독한 천대를 받았다. 그래서 파함의 강의실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복도에서 창문 너머로 강의를 들으면서 신학공부를 했다고 한다. 백인 신학생들이 앉아 있는 강의실 밖 복도에서, 흑인 시무어는 어떤 심정으로 백인 파함의 신학 강의를 들었을까? 이때 흑인 시무어가 얼마나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지는 굳이 상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결국 흑인 시무어는 백인 로버트 파함과 결별하고 LA 아주사 거리에서 독립하여 자신의 목회를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조건에서 백인 로버트 파함보다 열등했던 흑인 시무어의 목회는 여의치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자신의 목회를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의 선생이었던 백인 목사 로버트 파함보다 자신의 영적 신령함이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때 사탄이 시무어에게 고전14:2을 코스프레(cospre/게임이나 만화 속의 등장인물로 분장하여 즐기는 일, 흉내 내기) 하도록 미혹했을 것이다.
흑인 목사 시무어는 고전14:12에 있는 거짓방언을 코스프레한 이상한 소리의 방언으로 단번에 로버트 파함을 뛰어 넘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왜냐하면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던 LA 아주사 지역의 빈민가 흑인들에게 흑인 시무어 목사가 퍼뜨리는 거짓방언이 열풍처럼 번져갔기 때문이었다. 사탄은 당시 미국 사회에서 흑인, 하층 계급의 빈민이라는 이유 때문에 천대받았던 그들의 자괴(열등)감을 교묘히 자극하여 자신들을 멸시하는 백인, 부자, 상류층 신자들보다 자신들이 적어도 영적으로는 훨씬 탁월한 존재임을 입증하도록 부추겼다.
그러므로 이들 빈민가의 흑인들은 고전14:2의 거짓방언을 코스프레한 시무어의 거짓방언 운동에 열정적으로 동참했고, 이것이 오순절주의의 모체가 된 것이다(이렇게 오순절주의가 급작스럽게 성공을 거두면서 지금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은 거짓 방언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장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거짓 방언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쉽게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마음만 먹고 거짓방언 전도사들이 하라는 대로 열심히 따라 하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이 거짓 방언이다. 또 하나의 위대한 장점은 거짓 방언을 해도 절대로 들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거짓 방언하는 자가 뻔뻔하게 연기만 잘하면 누구라도 그것을 거짓 방언이라고 입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이후 20세기 초 사이에 나타났던 두 세 번의 방어 현상이 모두 다 소수의 이단 집단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왜냐하면 다수의 정통 세력들 사이에서 소수의 이단들이 생존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다수의 정통보다 영적으로 더 뛰어남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여기에 가장 효과가 있는 거짓방언을 채용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김동수 교수와 배덕만 교수는 이런 역사적 현실을, 즉 부유층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이, 지식층보다는 무식한 사람들이,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보다는 하류 인생들이,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방언의 은사(거짓방언)에 더욱 심취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지금은 부자들과 유식한 자들도 방언을 많이 하고 있으며, 한국 교회 방언의 본산지인 여의도 순복음 교회도 부자라는 논리로 방언이 자괴(열등)감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애써 부인하려고 한다.(김동수, 방언은 고귀한 하늘의 언어, pp.23-27; 배덕만, 성령을 받으라, pp.169-170).
그러나 현재 방언하는 자들 가운데 부자, 상류층이 제법 있는 것은, 대부분 가난했던 1960년대에 비해 지금은 경제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었기 때문이며, 또 상류층, 부자들에게는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막10:25)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주는 결정적인 영적 자괴(열등)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류층, 부자들도 거짓방언 열풍에 편승하여 자신의 영적 열등감을 해소하려는 시도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거짓 방언 전도사들은 이런 사실을 감추기 위해, 부유한 자나 유식한 자들과 같은 상류층이 방언을 많이 한다는 것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면서까지 애써 강조한다(김동수, 방언은 고귀한 하늘의 언어, pp.25, 81; 김우현, 하늘의 언어, pp.45, 50, 172). 그러나 그럼에도 현대 교회의 방언 열풍이 부자보다는 가난한 자, 유식한 자보다는 무식한 자, 남자보다는 여자에게서 훨씬 더 많아 나타나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며, 이런 현상은 거짓방언을 추구하는 자들의 영적, 육체적 자괴(열등)감과 필연적인 관계에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사단은 20세기 초 흑인 윌리엄 시무어의 열등감을 이용해 만들어낸 “거짓방언”이라는 괴물을 지금까지 교회에 계속 뿌려댐으로써 지구촌에 존재하는 교회들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고 있으며, 지금 한국교회가 그 중심에 서 있다. 김요한 목사도 이 괴물에 의해 사냥되었으며, 이제는 교회 파괴를 주도하는 사탄의 사냥개로 쓰임 받고 있는 것이다.
괴물 [지렁이의 기도]를 만들어낸 열등감의 배경
김요한 목사가 극단적인 심리적 불안으로 어쩔 줄 몰라 했던 시기는 한서노회로부터 면직의 위협을 받고 있을 때부터인 것 같다. 그리고 그가 본격적으로 이상해진 시기는 면직이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기 시작한 2013년 초부터였다.
“내가 처음으로 방언통변을 받은 날은 2013년 3월 20일이다. 이날 지리산과 섬진강이 맞닿는 전라도 남원의 한 교회를 방문하여 그곳 교회를 섬기는 사모님께 방언통변을 받았다. 당시 나는 약 1년 전부터 목회를 그만두고 교회를 떠날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교회에 대한 환멸, 더 정확히는 소속 교단 및 목회자들에 대한 실망과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지렁이의 기도, p.125)
왜 하필 이때 처음으로 방언통변을 받은 것일까? 그동안 수없이 많은 방언기도를 해왔으면서도 이전에는 방언기도의 의미를 알고 싶지 않았단 말인가? 아마 그랬을 것이다. 왜냐하면 살만할 때에는 방언기도 자체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목회에 앞이 안 보이는 위기가 닥쳤을 때, 그는 자신을 향한 구체적인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싶었을 것이며, 사람들에게는 버림받았지만, 하나님께는 인정받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절실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도 어려울 때 찌푸리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점쟁이를 찾아가는 경우들이 많다. 김요한 목사도 이때 찌푸리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용하기로 소문난 방언 통역자의 점치기 통역을 의지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용한 방언 통역자를 찾아 구만리 전라도 남원까지 찾아 갔을 것이다. 바로 이때가 김요한 목사가 노회로부터 목사 면직을 당한 때였으며, 또 시무하던 새물결교회를 사임하고 떠나야 할 때였다. 김요한 목사가 나중에 시작한 출판사 명칭을 ‘새물결플러스’로 한 것을 보면, 새물결교회를 떠났을 때, 정확하게 표현하면 쫓겨났을 때 그의 상처가 얼마나 대단했을까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요한 목사는 처음 방언 통역을 받기(013년 3월 20일) 1년 전 쯤에 자신이 소속된 노회에 의해 일련의 면직 수순의 조사를 받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목사 면직을 당할 수 있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그는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당시 나는 약 1년간 특정한 이슈를 두고 교회 개혁 및 교단 정화 운동에 적극 관여했는데 이 과정에서 얻은 심리적 내상과 그로 인한 교회에 대한 환멸이 너무 컸다. 그래서 목회를 그만두고 차후의 내 삶의 여정을 어떻게 꾸려나갈까 하는 세속적(?) 고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지렁이의 기도, p.127)
그는 이렇게 1년 정도 자신이 소속된 노회와 투쟁(?) 하다가 이듬해 3월에 목사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목사 면직이라는 엄청난 일을 당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더 정확히는 소속 교단 및 목회자들에 대한 실망과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도 과거 김요한 목사와 유사한 일을 겪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상처와 실망이 얼마나 컸을 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때 아마 그는 심리적으로, 정서적으로 심하게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을 것이다. 특히 앞이 보이지 않는 자신의 목회의 미래에 대해서는 더욱 불안하고 두려웠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다음과 같은 다짐을 했겠는가?
“나는 사람에게 상처받은 상처와 모멸감으로 인해 내 마음과 의지를 총동원하여 다시는 하나님의 일을 안 할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지만~”(지렁이의 기도, p.133)
그가 점집을 찾는 심정으로 방언통변을 받으려고 그 멀리 지리산과 섬진강이 맞닿는 전라도 남원의 한 교회를 방문한 때는 자신이 섬기던 새물결교회를 사임(2013. 3.31 사임)하기 열흘 전쯤인 3월 20일이었다. 그는 그전부터 있었던 사탄의 영성에 도움을 받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지렁이의 기도]에 나오는 일들을 하게 된 것 같다. 그는 섬기던 교회를 사임한 후 거의 1달을 이런 일에 몰두했다. 이때 그는 “하나님께서는 한국의 중장년 세대가 아닌 젊은 세대, 특히 10대들에게 관심이 많으시다.....하나님께서는 한국의 청소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건하고, 사회정의에 힘쓰는 세대가 되길 원하시며 그 일을 인도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방언통역에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사람에 바로 자신이라고 확신한다.(지렁이의 기도, p.126)
김요한 목사와 동일하게 방언 전도사 김우현 PD에게서도, 그의 성장 과정에서 받은 깊은 자괴(열등)감을 발견할 수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부터, 방황하다가 예수를 믿게 된 과정 ... 나를 교회로 인도했던 누나를 사로잡은 흑암의 세력 ... 그 불의 시련 앞에서 처절히 무너진 20대의 절망 ... 내가 가진 영적 내공이 얼마나 형편없는가를 뼈저리게 맛보았던 절망의 구덩이 ... 너무나 남루한 영혼을 어쩌지 못해 주님을 부르기조차 부끄러웠던 그 허무의 밑바닥 ... 아무도 눈여겨봐주지 않던 누더기 청춘“(김우현, 하늘의 언어, p.30).
김우현은 이런 절망감에서 오는 자신의 견딜 수 없는 자괴감을 신령한 그 무엇에 집착해서 해결하려고 했으며, 이것이 바로 김우현이 거짓방언을 코스프레하며 거기에 심취하게 된 계기이며, 김요한 목사도 성경 코스프레로 자신의 자괴감을 우월감으로 바꾸려고 했다.
열등감을 이기려는 지렁이의 바이블 코스푸레
열등감을 우월감으로 바꾸려고 사탄을 의지하는 자들은 일반적으로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예를 들면 이적을 행한다고 하는 자들은 그런 성경 기사의 사람을 흉내 내는 것이며, 방언의 은사를 주겠다는 사람은 은사를 주시는 성령 하나님을 흉내 내는 것이다. 김요한 목사에게서도 자신이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성경의 인물이나 기적 사건을 흉내 내어, 자신을 성경의 인물과 동일시함으로써 자신의 열등감을 영적 우월감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김요한 목사는 이런 행위를 통해 이런 행위가 없는 자들보다 영적으로 우월함을, 그래서 그들보다 자신이 하나님께 더욱 인정받는 자임을 나타내려 한다. 자신을 면직시킨 자들보다 훨씬 영적으로 우월한 자신을 보여줌으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려는 것이다. 사탄은 이것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지렁이의 기도]라는 괴물을 만들어내게 했다. 이제 [지렁이의 기도]에 나타나 있는 그의 성경 코스프레 몇 가지를 살펴보자.
1. "그리고 곧이어 맑고 분명한 목소리로 이런 음성이 들려왔다. '아들이다. 됐냐?! 뭐 그런 것 갖고 하루 종일 화를 내고 그러냐?'”(지렁이의 기도, p.32)
-성령 코스프레: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2. "처음에는 방언으로 시작해서, 기도할 때마다 온몸이 심하게 진동하더니, 급기야는 기도하는 순간에 어쩌면 영혼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어떤 실체가 내 몸 밖으로 빠져나가 하늘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일까지 일어났다."(지렁이의 기도, p.33)
-오순절 초대교회 코스프레: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3-4).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행4:31)
-바울 코스프레(유체이탈 코스푸레):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고후12:2)
-이런 유사한 정신 나간 이야기는 그들 세계에서는 드문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방언기도를 하다가 공중 부양을 경험했다고 주장하는 강요셉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 기도하다가 하늘로 올라가 버리면 우리 사모가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하고 인간적인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중단했습니다.”(강요셉, 방언기도에 숨은 비밀, p.17)
3. "심지어 예배당에 놓인 장의자 사이로 지나가기만 해도 사람들이 방언을 받거나, 안수기도를 할라치면 손을 갖다 대기도 전에 사람들이 바닥에 고꾸라져 데굴데굴 구르는 일도 있었다."(지렁이의 기도, p.34-35)
-베드로 코스프레: (행5:15-16)"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4. “네, 집사님 심정은 잘 이해가 됩니다만, 하나님이 딸이라니 어쩌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번에 주신 아이가 정말 좋은 딸이니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셋째는 꼭 아들을 주신다고 하니, 너무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지렁이의 기도, p.97)
-천사 코스푸레: (눅1:13)"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5. “하나님이 이 집사님 남편이 크게 아플 거랍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집을 서울대 부근의 관악산 주변으로 옮기는 게 좋다고 해요.”(지렁이의 기도, p.114)
“너희 가정은 서울로 들어와야 길이 열리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활동의 폭이나 길이 막힐 수밖에 없으므로 성남을 떠나 봉담으로 이사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라”(지렁이의 기도, p.117)
-여호와 코스프레: (창12: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왕상17:3) "너는 여기서 떠나 동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6. “하나님께서 장인이 오늘 안 죽는다고 하시네. 일주일 시간 여유를 주시고 중간에 한 번 깨어나시게 하실 거니까, 그때 꼭 온 가족이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라고 하시네.”(지렁이의 기도, p.191)
-히스기야 코스프레: (왕하20:6)"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7. "그래서 하루는 작심하고 기도 중에 여쭤보았다. '주님, 제가 불을 가지고 나가 사람들 앞에서 회개를 촉구할까요?'”(지렁이의 기도, p.198)
-보아너게 코스푸레: (눅9:54)"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8. “'목사님, 저는 공대 출신이어서 말을 잘 못합니다. 그냥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조그만 사업을 하는데 그동안 열심히 일을 해서 얼마간의 돈을 모아놓은 게 있습니다~~' 그렇게 몇 마디 하시더니 자리를 파하고 일어서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정말 며칠 후 1억 8천 만원의 돈이 내 통장으로 입금되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얼마 후 K집사님이 또다시 연락을 주셨다. 하나님이 자꾸 본인에게 '김 목사 생활비는 어떡할 거냐?'는 마음을 주신다며, 앞으로 1년 동안 매달 500만원씩 입금해주시겠다는 것이었다. 기도원에서 질리게 들었던 '내가 네게 돈을 줄 테니 걱정 말라'는 음성이 현실화된 것이다."(지렁이의 기도, p.236)
-엘리야 코스프레: (왕상17:4-6)"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9. "내가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을 오랫동안 괴롭히던 별의별 불치병을 고치셨다. 내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깜깜한 밤길을 헤매는 사람들을 밝은 대로로 인도하셨고, 절벽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셨으며,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셨다. 하지만 정작 나는 뭔가? 내가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지금껏 수많은 공황장애 및 우울증 환자를 고쳐주셨지만 정작 나는 수년간 만성불면증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내가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수많은 사업가들의 길을 선하게 인도하시고 물질의 복을 부어주셨지만 장작 나는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하루 평균 14~15시간을 죽어라 일해도 다음 달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피곤한 삶을 산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겨우 몇 십초만 기도해도 척척 들어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정작 내 문제는 몇 년을 엎드려 눈물로 기도해도 기별조차 없다. 나는 고달프고, 곤핍하고, 아픈 삶을 산다."(지렁이의 기도, p.354)
-바울 코스프레: (고후12:8-9)"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글을 마치며
바이블 코스프레는 사탄이 영육 간의 위기에 빠진 자들을 자신의 사냥개로 만들 때 즐겨 사용하는, 대단히 달콤하고 위험한 조커(joker)이다. 왜냐하면 위기에 빠진 자들은 쉽게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그래서 사탄이 제시한 성경과 비슷한 바이블 코스프레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쉽게 믿어버리기 때문이다. 사탄은 이 방법으로 공생애 직전 40일 금식으로 육체적인 위기에 빠지신 예수님에게도 시91:11-12를 코스프레 하도록 유혹했다(마4: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김요한 목사처럼 나름대로 큰 꿈을 가지고 목회를 시작했다가 예상치 못한 목회의 생사기로에서 헤매는 목회자들이 의외로 많다. 물론 동역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은 없지만, 그러나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목회자들이 가장 먼저 해여 할 일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자신의 실패를 냉철하게 분석하여 고칠 것으 고치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면서 아프게 자신을 성찰하는 고통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윌리엄 시무어나 김우현 피디, 김요한 목사 같은 자들은 이런 회개와 성찰의 아픈 시간을 외면한 채, 소위 신령한 세계, 즉 사탄의 성경 코스프레의 길로 도피해 버리고 만다. 이 길은 아픔 없이 일시에 모든 것을 역전시킬 수 있는 넓은 길이다. 사탄은 이런 자들을 놓치지 않고 불 체험, 진동, 예언, 거짓방언 등으로 속여서 자신의 사냥개를 만들어 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혹 예상치 못한 목회의 위기로 생사의 기로에서 어쩔 줄 모르는 목회자들이 있다면, 이때 입은 마음의 상처나, 정신분열에 가까운 자괴감에서 오는 恨을 기도원 같은 데 가서 거짓 영의 이상한 체험의 넓은 길로 도피하고 싶은 유혹, 즉 강렬한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만약 이때 입은 마음의 상처를 스스로의 힘으로 도저히 이겨낼 수 없다면, 거짓 영의 신령한 위로보다 정신과 의사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훨씬 더 낫다.
그럼에도 일시에 자신의 위기를 역전시키려고, 소위 신령하다는 자들 찾아 방언 통역, 예언 등 점치기를 하거나, 또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자들은 외국에까지 나가서 사탄의 사냥개들인 신사도주의자들에게 안수까지 받는 이상한 짓들을 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사탄의 사냥개가 된 자들은 지금도 교회에서 성경 코스프레를 통해 자신이 마치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라도 된 양 연기함으로써 순진한 성도들을 미혹하는 사탄의 유능한 사냥개 노릇을 하고 있다.
김요한 목사의 [지렁이의 기도]는 사탄이 인간의 자괴감을 교묘히 이용해 만들어낸 괴물이며, 사탄의 사냥개 교본이다.
이창모 목사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한국 교회를 신물 나게 체험하며 갈등하다 하나님을 향해 살아 있는 교회를 꿈꾸며 1999년 김천에서 ‘제자들 경배와 찬양교회’를 개척하였다. 이창모 목사는 한국교회를 죽음에 이르게 한 병이 단지 성공주의, 황금만능주의, 도덕적 윤리적 타락 등이 아니고 이미 한국교회에 만연된 잘못된 신학에 있음을 확신하고서 무엇이 바른믿음인지 신학적으로 깊이 고민하는 목사이다. 이창모 목사는 자신이 중2때 수련회에서 방언을 받았고, 대부분의 목사들이 그것을 ‘영의 기도의 언어’라고 가르치므로 의심없이 수 십년 동안 옹알거리는 방언현상으로 기도(?)하였던 대표적인 방언기도자였다. 김우현, 김동수 등이 저술한 거짓 방언을 미화하는 한심한 서적들을 접한 후 방언에 관한 깊은 신학적인 성찰을 시작하게 되었고, 결국 오늘 날 방언이라고 알려진 소리현상과 성경의 참된 방언은 무관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게되었다. 이전의 자신처럼 방언으로 기도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다른 목회자들과 신자들을 진정한 복음으로 돌이키기 위해 <방언, 그 불편한 진실>(밴드오부퓨리탄,2014)을 출간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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