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마이너스성장 요인 이렇게 본다
- 고은 교회: 황 부 일목사
(기독언론이 보는 요인)
요즘 기독 언론들을 보면 한국 교회에 큰 위기가 온 것처럼 난리들입니다.
그것은 한국 교회 교인 수 감소가 통계청 조사에 의해 발표된 후부터 시끄러워진 것입니다.
“한국 교회 깊은 밤을 맞았다.” “한국 기독교 마이너스 성장 뚜렷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 교회 문닫고 몰락한다.” “한국 기독교도 드디어 올 때가 왔다.” “유럽의 기독교와 미국의 교회들이 몰락한 것처럼 한국 교회도 그 뒤를 따르고 있다는 증거다.” 등 많은 걱정과 위기에 찬 발언들이 터져 나오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언론들이 이점을 다루면서 교인 수가 줄어가는 요인들을 짚어보는 것을 보면,
“개 교회 주의로 발전한 것”, “기독교의 공신력이 떨어진 것”, “기독교 지도자들의 부패성과 타락성으로 세습 문제, 분쟁 문제가 사회적으로 비판 받는 것”, “교계 주변의 폭로성 매체나 일반 상업주의적인 매체들이 앞 다투어 기독교 문제를 크게 보도하고 심각하게 다룸으로 인해 오는 반 기독교적 정서를 키운 것”, “사회 참여나 소외 계층 불우 이웃에 대한 외면, 교회 개방 미흡, 주변 이웃과 단절된 것”, “급속적인 시대 문화나 기대 적 변화에 뒤처지는 것” 등 많은 요인들이 반복적으로 제기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보는 문제와 요인)
가만히 살펴보면 이런 여러 가지 요인들이 문제로 제기되고 있지만 필자가 볼 때에는 이런 건 진정한 요인이 아닙니다.
피상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요즘 한국 교회들을 보면 얼마나 사회에 참여를 잘합니까?
또한 소외 계층을 위한 관심도나 실천도가 어느 종교보다 앞서 있다고 봅니다.
노숙자들 밥해주고 돈도 주고 하는 데를 볼 것 같으면 대부분 교회나 기독교 단체에서 실행하는 것이 매체를 통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즘 교회들을 보면 이웃에 노인들을 불러 식사도 제공하고 노인대학도 하고 심지어 여행까지 시켜주는 행사를 대부분이 하고 있으며, 좀 커진 교회들은 비전 센터니 하는 건물까지 지어놓고 카페나 콘서트홀까지 갖추고 지역 주민들을 불러내어 건강 강연이나 연예인들까지 불러서 뮤지컬이나 음악회 등을 공연하면서 주변 주민과 함께 하려는 교회들 또한 얼마나 많습니까?
지역 사회의 요구와 기대에 부합하여 나눔과 봉사로 지역과 함께 하려는 것을 목표하는 교회나 그것을 비전으로 여기는 목회자들은 또한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 이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좇으며 현대적으로 맞게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을 대부분의 교회들이 갖추려 합니다. 다만 재정상 못 미쳐서 좀 차이가 날뿐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분쟁이나 지도자들의 부패나 도덕적 문제는 어느 정도 요인이 될 지 모르나 다른 것들은 요인이 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요즘 교회들 모두가 얼마나 교회 성장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까?
작은 교회는 어떻게 해서라도 큰 교회가 되려하고 큰 교회는 더 큰 교회가 되려고 가진 재정과 인력을 총 동원합니다.
서로 경쟁이 무서울 정도로 치열합니다. 때문에 위에서 열거한 요인들은 대부분 요즘 교회들이 알아서 잘 신경 쓰며 열심히 하는 것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성장 세미나나 그런류의 집회는 얼마나 많고 여기에 많은 회비나 참가 수강료까지 내면서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는 리더십이나 운영방침(좋게 말해서 목회 성공방법)에 대해 배우려 다니는 목회자들은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끌어 모으는 식의 전도방법에 관한 이론이나 실재에 대해 간증하며 훈련시키는 집회나 그런 소정의 과정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한국 교회에 능력 받은 자는 얼마나 많으며 그들의 능력을 전수받아 권능으로 목회 성공하려는 자들 또한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저런 어떤 모습을 보더라도 요즘 교회들이 하는 성장일변도의 열정들을 볼 때 교인수가 준다는 것은 잘 안 맞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교인수를 늘리려고 교회마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총력을 기울이는데 왜 교인수가 줄어 가냐는 겁니다.
이미 90년대를 넘어서면서 한국 교회 성장이 제자리걸음이 되었다는 말과 점점 줄어간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렀는데 여기서 우리가 분명하게 파악하여야 할 것은 한국 기독교의 마이너스 성장의 진정한 요인과 복음적인 교회관입니다.
과거 어려운 시대에 교회는 삶의 형편과 문제의 해결로 예수를 찾고 또 그렇게 전해왔습니다. 거기다 모든 은사와 기적 등을 앞세웠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방향은 계속되고 있지만 그때 몰려든 무리들은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 주변으로 몰려든 수많은 무리들과 같은 자들입니다.
당시 무리들은 자신들의 어려운 문제와 사회적 갈등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모여들었고 또한 뭔가 자신들의 기대를 얻고 실현해 보려고 열심히 몰려들었고 쫒아 다녔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 그렇게 모여 크게 성장했다는 교회들과 예수님 당시 몰려든 무리들과 차이가 있다면 당시 그들은 수시로 예수를 떠났고 예수님 공생애 3년에 예수께서 부르신 제자들과 그를 믿던 몇 명의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떠났고 오히려 예수를 반대하는 편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무리들은 수십 년이 지나서야 이제 서서히 떠난다고 하는 것인데 그 요인은 간단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그렇게 부르시지도 않으셨고 또한 그런 인간적 기대를 가지고 모여든 자들에게 인간적으로 맞추어 주지도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6:26-27을 보면 예수님께서 당시 열심으로 좇는 무리를 향해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떡의 해결을 위한 것이라고 지적하시면서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요6:44)고 하자 따르던 무리들이 많이 떠나가고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대표로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 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라고 합니다(요 6:65-68).
그러니까 예수님 당시에 수많은 무리들은 어떻게 소문을 들었든지 각자 자기들의 기대를 가지고 왔다가 예수님 말씀과 안 맞으니까 자기들 멋대로 실망하고 떠나간 것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이들은 교회 된 자들이 아닌 것입니다.
교회 된 자들은 예수님의 복음으로 부름 받고 그 복음을 생명의 진리로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 속에 구원을 끝까지 이루어 가는 자들인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 당시 많은 무리가 모였든, 그리고 떠났든지 그들하고 교회 성장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땅에 크게 부흥했다는 교회들의 경우는 대부분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수를 사람들에게 맞추어주는 변질시킨 다른 복음으로 교인 수 늘이기에 전념했고 또한 끌어 모은 그들을 계속적으로 붙잡아 두려고 사람 중심으로 힘썼던 것입니다.
그것이 성공하는 교회 성장이요 부흥의 기준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순전한 복음을 통해서만이 구원을 이루시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시려고 뜻하시나(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서는 순전한 복음만으로인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 증거함 : 고전 1:21) 한국 교회들의 외적 부흥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교회가 아닌 자들로 모여진 가칭 교회들이 많은 것입니다.
그 증거는 수많은 교인들로 모인 자랑하는 큰교회라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모습은 없는 것입니다.
신앙의 상태를 볼 때 목적이나 실제 행위를 보면 신을 통해 세상을 구하는 이교도와 같고 교회 목적이나 목회자가 목표하는 것은 어째든 더 많은 무리가 모여들게 하고 더 큰 건물을 짓고 그 수는 떠나지 않게 하고 거기다 더 늘어나기만을 목적하는 것이 떠나든 말든 복음의 진리로 택자만 부르기위해 전하시던 예수님의 사역하고 사도들하고 그 이후 진정한 복음의 사역자들하고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이제 보편적으로 어려웠던 시대보다 형편들은 나아지고 시대가 많이 변해 즐김을 찾는 세대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동안 어려움의 해결이 계속적으로 잘 될것이라는 허탄한 말에 빠져 기대하며 모아져 있던 교인들이라고 하는 무리들은 죽고 늙고 물러가는 1세대들이 되었고, 형편이 좋아진 2세대들은 즐거움이나 변화의 비전을 찾아 떠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일찍이 그것을 느끼고 조망한 교회들은 한발 빨리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만들고 축제적이고 즐거운 것들로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대다수의 교회들이 그것을 따라서 서로 경쟁하며 예배까지 즐기는 공연으로 만들고 목사는 설교를 개그로 까지 바꾸게 되었을 정도입니다.
모두가 다 많은 사람을 남보다 더 많이 모으는데 목적하여 그것을 성공으로 여겨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지금까지 해왔고 또한 그렇게 더욱 열심히들 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렇게 해왔던 이런 저런 인간적 여러 방법이나 수단에 한계가 온 것입니다.
물론 아직도 어떻게 하면 교인들이 몰리고 가지 않고 남아있게 할 까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난리들이지만 좀 더 자극적이고 흥미롭고 감정적으로 끝없이 변화무쌍한 인간의 욕망을 원하는 대로 다 채워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본주의로 세워가는 잘못된 교회들의 한계입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인간중심의 기대를 가지고 모여진 그들은 원하던 그것이 이제 안 되고 되풀이 되는 프로그램도 시시해지고 또한 뭔가 새로운 것이 어디 없을까 그것을 찾아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의 수평이동이 많은 것입니다. 여기 좋다, 저기 특별하다, 소문 따라 몰려다니고 심지어 사이비나 다른 종교로도 기웃거리며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동안 컸던 많은 교회들은 불안 속에 이제 교인들 단속에 여념이 없게 된 것입니다.
구역이나 교구, 그리고 교회 부서를 맡은 부교역자들에게는 담당 교인수가 줄어드는 것으로 시말서쓰고 사표내야 할 만큼의 책임까지 가중되기도 한 것입니다.
필자가 보건대 이제 그런 식의 교회 사업은 하향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온갖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끌어 모으려 하는 것은 어떤 면으로 보나 순전한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움하고는 거리가 멀고 교회로 이름한 사업에 불과한 것입니다.
때문에 그런 모습의 교회들이 지금 교인 감수라는 조사보도에 안절부절못하고 자기들의 성공적인 목적달성에 큰 변수요 장애적인 문제가 생긴 것으로 걱정하며 요란을 떨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사회가 여러 가지 악조건이나 어려운 흐름들로 전반적인 경제 침체에 빠져 서로 위기감을 느끼며 불안해하는 세상의 모습들과 흡사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원한 교회의 본질과 정체성을 모르는 자들이 교회를 한다고 해왔고 교회가 될 수 없는 자들이 모여 교회라 칭한 모습들의 실체가 벗겨지는 과정에 이른 것입니다.
(복음적인 교회만 남는다)
앞으로 교회는 복음적인 교회만 남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순리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비밀로 언약된 교회는 복음의 능력으로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잔치 비유에서 청함을 입은 자는 많지만 택함을 입은 자는 적고 예복을 입지 않은 나머지는 쫓겨남을 입는 말씀이 그렇습니다(마 22:12-14).
물론 거짓된 무리들이 교회 이름으로 모여 있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 이들은 가짜 교회로 본색이 더 드러날 것이며 복음적인 교회를 대적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로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길 자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의 참 된 교회는 본질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참 된 교회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계획하시고 언약하신 것을 그분의 능력의 역사로 성취해 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예루살렘부터 시작하여 땅 끝까지 증거 되게 되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여자의 후손으로 언약의 백성으로 잃어버린 양 된 자들로 택함을 입은 자들이 온 세상에서 구원의 계획된 이방의 충만한 수로 채워지기 까지 복음은 먼저 된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의 증인됨으로 구원을 계속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복음을 통한 교회의 계속적인 구원 이것이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교회의 성장이요 하나님 나라로의 확장입니다.
혹 교인이 줄어 간다해도 그분의 교회는 복음을 통해 구원으로 완성해져가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교회의 머리가 되시어 영원한 그 나라로 통치해 가십니다.
그 나라가 완전한 구원으로 완성될 때까지 교회도 점진적인 발전으로 가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요 6:37-39).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구원의 뜻으로서 언약된 것임으로 복음 안에서 성령의 은혜의 역사로 다 불러 오게 하시고 그리고 하나라도 잃지 않고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참교회는 지금도 앞으로도 어떤 환난과 미혹 속에서도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의 은혜로 지속적으로 거룩히 불러지고 구원의 나라로 성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그리스도의 참 된 교회로 서 가는 교회들은 교인수가 늘고 줄고에 요동치 않고 그저 그리스도의 교회 된 모습으로 어떻게 하면 거룩해질까만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영원한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성도들입니다(롬 1:6-7).
때문에 그렇지 않은 자들은 끝내 떠날 것이며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그의 몸 된 교회 된 자들은 그리스도의 교회로 자라며 거룩해질 것이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증인 된 모습으로 하나님 나라를 점진적으로 실현시켜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라면 그리고 주의 종 된 목회자라면 순전한 복음으로 증거하고 가르쳐서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 같은 자들이나 이상적인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 같은 자들은 다 떨어지게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주기로 택함을 입은 자들만 불러서 그리스도의 교회로 세우고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모습과 삶으로 거룩한 교회된 모습을 이루는 복음에만 전념하면 되는 것입니다.
복음에만 참된 교회가 있고 복음만이 참교회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께서 세우시고 주께서 이루어 가시는 영원하고 진정한 교회의 성장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목회자들은 그분이 원하시는 교회를 위해 쓰시는 일군이요 도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것이 모두가 알아야 할 복음적인 참 교회관입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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