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강해]
/ 고멜
(호 1;2-3) “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3.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고멜은 호세아 선지자의 아내입니다. 고멜이라는 의미는 <끝> <마지막> <완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상 숭배가 극심하였던 여로보암 2세 시절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주시려고 호세아 가정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호 1;2)
그래서 호세아는 음란한 여자 고멜과 결혼하였습니다. 그리고 세 자녀를 낳았습니다. 첫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지었습니다. <내 백성이 아니다>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로 딸을 낳았습니다. 로루하마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 할 자>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세 번째로 아들을 낳았습니다. 로암미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내 백성이 아니다>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귀한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호 1;2) 대물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부모의 죄는 대물림이 됩니다. 어머니가 음란한 중에 자녀를 낳으니까 자녀가 음란합니다. 호세아가 이런 사실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밧세바와 간음을 하였습니다. 선지자가 와서 지적하였습니다. 그 때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어머니가 죄 중에서 다윗을 낳았습니다. 다윗은 그 죄를 대물림 받았습니다. 성경이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까닭 없는 저주는 이르지 아니 하느니라>(잠 26;2)
지난 주간 나는 청주 집회를 인도하였습니다. 운전을 맡은 최 목사님의 집안에는 간경화라는 대물림이 있었습니다. 동생이 간경화로 죽었습니다. 그래서 부흥회 기간에 장례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도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최 목사님도 간경화로 사경을 헤맸습니다. 하나님이 기적으로 고쳐 주셨습니다. 대물림이 끊어졌습니다.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가정에는 대물림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지난번 신문에 났던 사건입니다. 어머니가 딸을 목 졸라 죽인 사건입니다. 왜 사랑하는 딸 목을 졸라 죽였을 가요? 이유가 있었습니다. 딸이 외박을 하고 돌아 왔습니다. 목덜미에 키스 마크가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캐물었습니다. 남학생과 함께 자고 들어 온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울면서 말했습니다. <딸아! 우리 집안이 왜 그러니? 엄마가 중학교 때 너 같은 일이 있었단다. 좋지 않은 남자관계로 얼마나 고통을 당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네가 꼭 엄마같이 행동하는구나!> 그리고 어머니와 딸이 말다툼을 하다가 화가 난 어머니가 딸 목을 졸라 죽였습니다. 이같이 대물림의 죄가 있습니다. 호세아 가정이 그랬습니다. 다윗의 가정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대물림의 저주를 끊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두 가지로 경고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호 1;6)
하나님은 두 단계로 그런 저주가 그 가문에 흐르지 못 하게 하십니다.
제1 단계 가시로 막는 단계
제2 단계 담으로 막는 단계
가시로 막든지, 담으로 막든지 하나님은 징계로 대물림을 막으려고 하십니다. 이것은 징계라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우선 가볍게 가시로 징계하십니다. 가시에 찔리는 것은 그리 심각한 상처는 아닙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징계를 주실 때가 종종 있습니다. 가시로 징계하실 때가 있습니다. 가시로 혹은 징계로 잘못을 막을 때 이런 자세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1. 분노형
<내게 하필이면 이런 징계가 임하였나?>라고 분노하는 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반항하는 형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만을 미워한다고 생각하는 형입니다. 야곱이 아버지 이삭이 자기를 미워한다고 생각하며 화가 나서 위장하고 들어가서 축복기도를 받는 형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아버지 야곱이 요셉만 사랑하고 자기들은 미워한다고 생각하며 분노를 일으키며 요셉을 팔아버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2. 체념형
하나님은 절대 주권자이기에 징계를 주어도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고 받아드리는 형입니다. 하나님은 <복수하는 하나님> 정도로 받아 드리고 있습니다. 완전히 체념하고 징계를 받아 드리는 형입니다.
3. 훈련형
그러나 하나님이 징계를 주실 때에 분노를 느끼는 것도 아니요, 체념하는 것도 아니라 징계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훈련시키려고 주시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형이 있습니다. 제롬이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최대의 노여움은 죄를 범하는 사람에 대하여 노여워하시지 아니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죄을 범한 인간에게 주는 최대의 벌은 상관하시지 않고 내버려 두시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무관심이 가장 큰 형벌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 가시같은 미세한 징계라고 경홀히 여기면 안 됩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를 경홀히 여기지 말며 그의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히 12;5)
히브리서 기자는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징계에는 반드시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는데 경홀히 여긴다면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풍랑을 주셨습니다. 이는 니느웨로 가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가는 요나에게 주신 징계였습니다. 풍랑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정한 의도를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왜 풍랑이 일어나는 지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람이 풍랑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풍랑을 일으키시는 것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바다로 던지라고 말했습니다. 징계를 받아드렸습니다.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습니다. 그러나 3일 3야 동안 소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기적중에 기적입니다. 큰 물고기는 말할 것도 없이 고래입니다. 고래는 4시간이면 어떤 음식물도 다 소화시키는 동물입니다. 그 속에서 3일을 있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잠수함을 하나님은 보내주신 것입니다. 운전도 필요 없는 잠수함이었습니다. 풍랑이 일어나도 끄떡없는 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운전하셔서 니느웨로 보내주셨습니다. 요나에 의하여 니느웨 성은 짐승부터 왕까지 모두가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징계를 경홀히 여기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노아의 홍수 때 사람들은 하나님이 징계하신다는 사실을 경홀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노아만은 하나님이 징계하실 것을 너무나 두려워하였습니다. 드디어 홍수로 물이 점점 불어났습니다. 그리고 가시와 같은 징계를 받을 때라도 낙심하여도 안 됩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를 경홀히 여기지 말며 그의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히 12;5)
징계를 받을 때에 낙심하여도 안 됩니다. 이유는 너무도 분명하고 너무도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잘 되라고 주시는 것이 징계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을 향한 징계가 대표적인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계신 3층천까지 다녀오는 영계 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고 돌아 온 직후 가시와 같은 병에 걸렸습니다. 갈라디아 지방으로 휴양가서 고쳐보려고 애쓰기도 하였습니다. 그 병을 고쳐 달라고 세 번이나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쳐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병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이 유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병이 있어야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고 기도하여야 그 능력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일생 가시와 같은 병을 그대로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 병의 징계가 도리어 유익이 되었습니다. 그 병 때문에 바울은 능력의 삶을 살아 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병 때문에 죽지 않았습니다. 누가라는 의사를 붙여 주셔서 늘 같이 지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정말 묘한 곳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가시와 같은 병이라는 불치병을 주셨을 때 낙심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보니 바울에게 유익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징계를 받을 때에 낙심하면 안 됩니다.
슈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는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등장하는 영화는 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95년도 승마경기 중에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는 불운하게도 전신마비가 되었습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살아가는 역경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타로서 죄를 물마듯이 저지른 것을 하나님이 장계하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낙심하지 않고 무엇인가 할 일을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휠체어를 타고 영화감독이 되었습니다. 자기가 배우로서 이런 영화를 만들면 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금도 좌절하지 않고 휠체어를 타고 영화 촬영현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신문기자와 인터뷰를 통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일함으로서 분노나 좌절대신 해방감을 느낀다. 많은 것을 빼앗겼지만 창조적인 길을 찾아낼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 징계를 받아도 낙심하면 안 됩니다. 더 잘 되라고 하나님이 징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알보 고면 징계는 사랑입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히 12;6)
그래서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입니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여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 12;7-8)
징계가 있다면 사생아가 아니라 참 아들이라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버나드 쇼라는 사람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여! 나에게 노아여 주옵소서!> 어느 날 목사님 <무교병은 쓴 나물과 함께 먹으라>라는 설교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한 사람이 면담을 요청하였습니다. 목사님과 마주 앉았습니다. 그는 품속에서 칼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교회에 나온 사람입니다. 나는 채무자입니다. 나에게 돈을 꾸어준 사람이 얼마나 나를 못 살게 구는 지 나는 그에게 이 칼로 복수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쓴 나물도 먹기로 작정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숩니다. 감사합니다. 나에게 준 고난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려는 뜻이 들어 있는 것인 줄 믿게 되었습니다.>
징계는 사랑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매로 쳤다면 이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를 받을 때에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에 주신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게는 <조상 매>라는 체벌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자녀가 잘못을 저지르면 부모는 자식을 데리고 조상 묘 앞으로 가서 회초리를 들어서 자기 종아리를 자기가 치면서 말합니다. <내가 너를 잘못 가르쳐서 네가 그렇게 하니 내가 조상 앞에서 견딜 수 없구나! 그래서 내가 조상 앞에서 매를 맞아야 한다.> 이때만큼 자녀가 아픈 적은 없다는 것입니다. 징계는 자녀가 잘 되라고 하는 사랑의 표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징계를 주실 때에도 그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다음과 같은 징계를 주었습니다.
1. 병으로 징계하실 때가 있습니다.
2. 가뭄으로 징계하실 때가 있습니다.
3. 전쟁으로 징계하실 때가 있습니다.
4. 고통으로 징계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 사랑에서 주시는 징계입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떠나 죄악의 소굴 소돔과 고모라로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롯의 가정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기도를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롯은 아브라함에게 4번 빚을 진 셈입니다.
1. 아브라함은 롯을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2. 아브라함은 롯을 부자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3. 아브라함은 롯이 붙들려갔을 때 구출하여 주었습니다.
4. 아브라함은 롯을 소돔에서 구하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롯의 후손들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4번 괴롭혔습니다. 은혜를 은혜로 갚지 않고 악으로 보상하였습니다. 롯의 후손들은 모압과 암몬이었습니다. 모압과 암몬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4번이나 괴롭혔습니다.
1. 모압 선지자가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하였습니다.
2. 예후다 시대에 롯의 후손들은 이스라엘을 쳤습니다.
3. 여호사밧 기대에 또 이스라엘을 쳤습니다.
4. 이스라엘의 성전을 무너뜨릴 때에 그들은 또 협력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롯의 후손들을 향하여 4명의 선지자로 하여금 저주하게 하였습니다.
1. 이사야
2. 예레미야
3. 에스겔
4. 스바냐
이 4명의 선지자들은 롯의 후손들의 멸망을 계속 하여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다 롯의 가정이 잘 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사랑이 동기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징계를 받을수록 더욱 기도하고 조심하여야 합니다. 팽이를 때리면 때릴수록 더 잘 돌라고 하는 의도입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죠지 워싱톤이 승리하고 장군들과 함께 둘러앉았습니다. 같이 즐겁게 축배를 들고 있었습니다. 이 때 한 장교가 워싱톤의 모친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길렀기에 저렇게 자랑스러운 아들을 만들었습니까?> 모친이 말했습니다. <나는 아들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순종하는 법을 가르쳤지요> 야단치더라도 부모를 공경하는 법을 가르친 결과 워싱톤은 늘 부모에게 공경하는 마음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구세군이 전 세계에 복음을 증거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 때 윌리암 부스 장군은 구세군의 성도들과 사관들에게 늘 가르친 것이 있습니다. <당신들은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공경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후 설교가 죠웨트(Jowett)가 말했습니다. <한번은 구세군 사관 70명이 상부로부터 외국으로 선교하러 나가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단 한 명도 어디로 나가게 되느냐고 묻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다 어디로 보내 주시던지 나가서 복음을 증거 하겠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어떤 사명을 주시고 어떤 징계를 주시더라도 무조건 순종하겠다고 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징계는 유익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의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히 12;10-13)
징계는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말했습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 119;67)
그래서 어떤 성도는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진정한 눈물은 영혼을 아름답게 합니다>(True tears make souls beautiful) 욥도 말했습니다.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욥 5;17)
고멜이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1. 우리 모두는 일시적인 죄인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누구나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죄에서 빠져 나옵니다. 그러나 마귀의 사람은 죄 속에서 딩굴며 살게 됩니다.
워싱턴이 길을 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돼지와 양이 같이 구렁텅이에 빠져 있었습니다. 양은 이렇게 저렇게 애를 쓰면서 기어코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더러운 데 있을 수 없는 천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돼지는 구렁텅이에서 딩굴고 있었습니다. 만족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아예 빠져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천성이 더럽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천성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져 있기에 양심이 있습니다. 천성이 아름답습니다. 일시적으로 죄를 지을 수 있으나 끝내 빠져 나오고 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2. 호세아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의 사랑입니다.
고멜이 집을 나가 다른 남자와 살면 또 가서 데리고 옵니다. 그리고 용서하고 같이 삽니다. 이런 일이 거듭되어도 끝까지 용서하시고 사랑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3. 우리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이다.
하나님은 가정을 제일 먼저 만드셨습니다. 마귀는 가정을 제일 먼저 공격하였습니다. 하나님도 마귀도 어제와 오늘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우리는 가정을 지켜야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입니다. 가정은 학교입니다. 가정은 교회입니다. 가정 같은 교회, 교회 같은 가정을 하나님은 원하고 게십니다. 유대인들이 나라를 1900년 동안 잃어버렸어도 가정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찾았습니다. 히틀러가 유대인의 가정만은 파괴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승리하였습니다.
▲강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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