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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료/교회장로

[스크랩] 예수님 수난의 의학적 증거는?

예수님 수난의 의학적 증거는
‘고문’의 어원은‘십자가로부터’
우형건 기자

이 글은 2015년 부활절을 앞두고 보도한 바 있으나 워낙 많은 독자들이 지금도 이맘때면 클릭하는 빈도가 높기에 다시 한번 개제합니다. <편집자주>

 

십자가의 극한 고통 표현할 말이 없어…새 단어 만들어
로마의 태형은 잔인한 형벌…쇠구슬∙뼛조각 박혀 있어

 
예수님은 얼마나 큰 고난을 당하셨나.

▲     ©크리스찬투데이

갖은 조롱과 함께 채찍을 맞고, 십자가 위에서 비참하고 잔인하게 처형을 당한 그 고통을 상상이나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탈진해서 기절했거나’, ‘죽은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약을 먹었다’,

‘본디오 빌라도가 뇌물을 받고 예수님이 죽기 전에 십자가에서 끌어 내려지도록 허락했다’는 음모설과 기절설 등이 여전히 난무하고 있다. 예수님의 그 처절했던 수난의 행적과 이에 따른 의학적 증거를 살펴보았다. <편집자 주>
 
최후의 만찬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셨다. 그 곳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밤새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앞으로 겪어야 할 고통이 얼마나 큰지 잘 아셨기 때문에 엄청난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땀이 핏방울이 됐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혈한증이라고 불리는 상태이다. 흔히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를 아주 심하게 받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심하게 고민하면 땀샘에 있는 모세관을 파괴하는 화학 성분이 나온다. 그 결과로 땀샘으로 소량의 피가 흘러 들어오게된다. 그리고 땀을 흘릴 때 피가 섞여서 나오는 것이다.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께 태형을 가했다. 로마의 태형은 무시무시하게 잔인한 형벌로 알려져 있다. 채찍은 보통 39개의 가닥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병사의 기분에 따라 그보다 훨씬 가닥수가 많을 때도 자주 있었다. 그 채찍은 많은 가죽으로 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쇠 구슬이 박혀 있었다.

채찍으로 몸을 때리면 구슬들 때문에 깊은 상처나 멍이 생겼고, 채찍질을 계속하면 상처 난 곳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또 채찍에는 날카로운 뼛조각들이 박혀 있었기 때문에 채찍질을 하면 살이 심하게 찢겨져 나갔다. 특히 등이 심하게 찢겨져 나가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척추의 일부가 드러나기까지 했다. 채찍질은 어깨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아래에 있는 등과 엉덩이 그리고 정강이까지 계속된다. 정말 끔찍했다.

로마의 태형을 연구했던 한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태형이 계속되면 피부 밑에 있는 골격 근육까지 찢겨지게 되고, 찢겨진 살은 피범벅이 된 채로 리본처럼 덜렁덜렁 매달려 있게 된다.”3세기의 역사가였던 유세비우는 태형에 대해“태형을 당하는 사람의 정맥이 밖으로 드러났고 근육과 근골 그리고 창자의 일부가 노출됐다”고 적었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태형만 당하고서도 죽었다. 죽지 않더라도 희생자는 극도의 고통을 느끼게되고 저혈량성 쇼크(hypovolemic shock) 상태에 빠진다. 저혈량성 쇼크란 어떤 사람이 많은 양의 피를 흘리고 나서 고통을 겪는 상태를 의미한다.

스트레스 심할 때 땀이 핏방울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수평들보를 지고 갈보리 언덕으로 비틀거리면서 올라가셨다. 그 때 예수님은 저혈량성 쇼크 상태에 있었다. 결국 예수님은 넘어지셨고 로마 군인들은 시몬에게 십자가를 대신 지라고 명령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자 사람들이 예수님께 신 포도주를 한 모금 드린다. 예수님께서는 끔찍한 채찍질을 당하셨기 때문에 손과 발이 못이 박하기 전에 이미 위독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예수님은 처형장에 도착해 눕혀진 후에 십자가의 가로 들보위로 팔을 뻗친 상태에서 못박혔다. 이 가로 들보는 패티볼룸(patibulum)이라 불렸고 십자가의 수직 기둥과는 분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수직 기둥은 땅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로마 군인들은 7인치에서 5인치 정도 되는, 끝이 가늘고 뾰족한 대못을 사용해서 손목에 박았다. 손바닥에 못을 박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다르다. 손목에 못을 박아야 손이 단단하게 고정된다. 만약 손바닥에 못이 박히면 몸무게 때문에 손바닥이 찢겨나가서 십자가에서 떨어져 버린다. 당시의 언어는 손바닥과 손목을 구별하지 않았다. 손목도 손바닥에 속했다.

못이 손목에 박힐 때의 고통은 펜치로 척골(팔굽 뼈) 신경을 잡고 비틀어서 뭉갤 때의 고통과 비슷하다. 사람이 그 고통을 이겨내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야했다. 그 단어가 바로‘고문하다’

(excruciating)란 말이다. 문자적으로‘excruciating’은‘십자가로부터’라는 뜻이다. 십자가에 달려 있을 동안 겪는 고통이 얼마나 심했으면 그 고통을 표현할 말이 없어서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야 했겠는가.

그런 다음에 가로 들보를 들어 올려서 수직 기둥에 부착시켰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의 발에 못이 박혔다. 또 다시 발에 있는 신경이 완전히 으깨졌고 손목에 못이 박혔을 때와 비슷한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렸을 때, 무엇보다도 먼저 팔이 늘어난다. 아마 6인치 정도 늘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양어깨가 탈골된다. 이는 구약성경 시편22편의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라는 예언의 성취이다.

손바닥 아닌 손목에 못 박히고

일단 희생자가 십자가에 수직으로 매달리게 되면 질식하면서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게 된다. 질식하게 되는 이유는 근육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횡경막이 가슴의 상태를 숨을 들이쉬는 상태로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숨을 내쉬기 위해서는 십자가 위에서 발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근육이 잠시 동안 이완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발에 박혀 있는 못이 발을 점점 깊이 찌른다. 결국에는 못이 발 근육에 붙어 있는 뼈를 고정시키게 된다.

간신히 숨을 내쉰 후에는 세웠던 발을 내리고서 잠시 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서는 다시 숨을 들이마시게 된다. 그러면 또 다시 숨을 내쉬기 위해 발을 세워야 하고 동시에 십자가의 거친 나무 결에 피 묻은 등이 긁히게 된다. 완전히 지칠 때까지 이런 식으로 계속하다가 결국 발을 세울 수 없게 되고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게 된다.

호흡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면 희생자는 소위 호흡 산독증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결국 심장 박동이 불규칙적으로 되며, 죽음이 임박하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기 시작했을 때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아셨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셨다. 그리고 심장이 정지되면서 돌아가셨다.

로마 군인들이 와서 예수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서, 예수님의 오른쪽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서 확인했다. 성경의 묘사로 볼 때 오른쪽 옆구리, 갈비뼈 사이였을 것이다. 창은 오른쪽 폐와 심장을 꿰뚫었다. 그래서 창을 뺄 때 물처럼 보이는 액체-심낭삼출과 늑막삼출-가 나왔다.

요한이 복음서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처럼, 물처럼 투명한 액체가 흘러나온 다음에 많은 양의 피가 쏟아졌다. 이 요한의 설명은 현대의 의사들이 예상하는 바와 일치하고 있다. 이 점 때문에 요한이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있는 것이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두 강도의 다리를 군인들이 부러뜨렸다. 로마 군인들은 안식일과 유월절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빨리 죽이기 위해 단검을 이용해서 희생자의 다리뼈 아래뼈 부분을 부러뜨렸다. 그렇게 되면 희생자는 발을 들어올릴 수 없기 때문에 숨을 쉴 수 없다. 그래서 몇 분 안에 호흡 산독증 때문에 죽게 된다.

예수님의 다리를 꺾지 않은 이유는 예수님이 이미 돌아가셨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또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창을 사용했다. 로마 군인들은 사람을 죽이는 일에 전문가였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그들의 직업이었고 실제로 사람을 잘 죽였다. 그들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사람이 죽었는지를 판단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죄수가 탈출하면 책임지고 있던 군인들은 대신 목숨을 내어 놓아야 했다. 따라서 십자가 위에서 희생자를 끌어내릴 때 그가 죽었는지를 꼭 확인했다.

창으로 옆구리 찔러 죽음 확인

▲     ©크리스찬투데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살아 남았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많은 피를 흘렸기에 이미 저혈당량 쇼크 상태에 있었다. 사람이 오랫동안 숨을 쉬지 않는 척 하는 일은 불가능하듯이, 예수님은 죽은 체 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창이 예수님의 심장을 찔렀다.

예수님께서 살아 남았다고 가정하자. 못이 박혀서 구멍이 뚫린 발로 어떻게 걸을 수 있었겠
는가. 어떻게 잠시 후에 멀리 떨어져 있는 엠마오 도상에 나타날 수 있었겠는가. 이미 탈골되어 버린 팔을 어떻게 사용했을까.

또한 등에 심한 상처가 있었고 창이 예수님의 허리를 찔렀다. 그리고 그렇게 애처로운 상태에 있는 예수님을 만난 후에, 밖에 나가 예수께서는 죽음을 이기신 생명의 주님이라고 선포할 제자는 아무도 없다. 예수님께서는 살아 남았다고 해도, 몸 안에 있는 피를 다 쏟고 그렇게 끔찍한 상처를 입은 후였기 때문에 애처로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본 제자들이 죽음을 이기신 승리자라고 환호할 수는 없다. 오히려 반대로 미안함을 느끼면서 그를 간호하려고 애썼을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그렇게 흉측한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나타 났는데도, 제자들이 언젠가는 예수님처럼 부활한 몸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서 세계적인 조직을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도 안되는 소리다.

우형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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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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