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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관리/CEO

주변환경 최악…실업 무서워 구조조정 안하면 다 죽는다

한국경제 중대한 위기지만 인식 못하는게 더 큰 위기
경제부총리는 기재부만 맡으라고 있는 자리 아니다
금융위·산업부·국토부와 합친 `구조조정 TF` 만들라
그룹 문어발식 확장 안돼…삼성은 `전자·금융` 특화

  • 노영우,박준형,전범주,정석우 기자
  • 입력 : 2015.10.11 18:45:37   수정 : 2015.10.11 21:14:26
◆ 기업發 경제위기 ⑦ / 윤증현 前 기재부 장관의 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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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현 윤경제연구소 소장)은 "현재 한국 경제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위기국면"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산업과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등이 모두 참여하는 위기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전 장관은 8일 '기업발 경제위기'와 관련해 매일경제와 한 단독 인터뷰에서 "우리 경제는 중대한 위기를 맞이했지만 위기를 위기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더 큰 위기"라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는 기획재정부 장관으로서 위기 국면 타개를 진두지휘했다. 그는 "방금 전에도 1100명을 감원하는 등 대규모 구조조정에 한창인 한 대기업 관계자들을 만나고 왔다"며 기업들이 체감하는 위기감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 지금 한국 경제는 위기인가.


▷ 위기라는 말은 쓰는 사람이나 목적에 따라서 여러 가지 뉘앙스를 가진다. 
   위기를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이나 발전을 위해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점이라고 본다면 지금은 위기다.

― 어떤 점에서 위기인가.

우리 경제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거의 최악이다. 
   대외적으로 미국 금리 인상이 올해 안으로 한 번은 오지 않겠느냐 하는 위험에 중국의 하드랜딩(경착륙) 위험이 있다. 그리스 사태 등 유럽 재정위기 역시 아직은 심각하게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대외의존도가 높은데 글로벌 수요가 줄어 수출이 어렵다. 내수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대내적으로는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 특히 중국이 심각하다.

▷ 매년 학교에서 쏟아지는 노동력을 흡수하기 위한 중국의 최소 성장률이 7%라고 했는데 (발표와 달리) 5%밖에 안 됐다는 시각도 있다. 
   우리가 항상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중국이 워낙 큰 리스크인 건 사실이지만 우리처럼 자원이 부족하고 규모가 작은 나라에서 경쟁은 중국이나 일본하고만 하는 게 아니다. 중국 리스크가 사라지면 언제 또 다른 경쟁자가 나타날지 모른다. 경각심과 긴장을 언제나 일상화해야 한다.

― 기업과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한데.

특히 중소기업이 심각하다. 
   자산규모 하위 25% 기업의 레버리지 비율이 상승하고 있고 이자보상배율이 악화되고 있다. 가계부채 역시 소득 1분위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다. 최근 한 스트레스테스트 결과를 보면 주택가격이 최대 20% 하락할 경우 고위험 가구가 증가한다고 나와 있다. 주택가격이 20% 이상 하락할지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 좀비기업이 우리 경제의 뇌관이 되고 있다.

▷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좀비기업은 있었다. 
   정도와 양의 문제이지. 좀비기업이 정리가 안 되고 남아 있는 이유는 위기가 눈앞에 닥치지 않으면 선제적 대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버틸 때까지 버텨보자는 거지. 곪아터져서 문제가 돼야만 대처한다. 기업만 나무랄 수 없다. 주주, 채권자, 기업 자신, 정책 당국 등 이른바 스테이크홀더(Stakeholder·이해관계자) 어느 누구도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괜히 나섰다가 어떤 망신을 당할지 몰라서다. 일종의 신드롬(변양호 신드롬) 같은 것들이 우리 몸에 와 닿아 있어서 좀비기업이 정리가 안 되는 것이다.

― 좀비기업 정리와 관련해 은행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 우리나라는 자본잉여국이 아니다. 
   고속철 사업이나 대규모 엔지니어링 사업에서 중국과 일본에 자본력 면에서 열세다. 경상수지가 계속 흑자 나고 있지만 아직은 기업에 필요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산업은행·수출입은행을 중심으로 해서 글로벌 시장에서 펀딩해 와야 한다. 정부의 암묵적 보험 덕에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들여와 기업에 지원하는 원활한 자금 순환이 돼야 했다. 이명박정부 시절 산업은행 민영화는 큰 실책이다. 당시 기업들의 걱정이 많았다. 신용 빌려오려면 훨씬 나쁜 조건으로 하게 됐다. 박근혜정부 들어 다시 정책금융공사와 합쳤지만 제대로 안 되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을 리드할 역할을 산은과 수은이 제대로 못하고 있다. 조직과 인사 면에서 고질적인 문제도 있다.

― 산업별 구조조정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필요하면서도 어려운 얘기다. 
   경기는 일정한 주기를 갖고 부침이 있는데 어떤 산업을 평가할 때 불황이 일정한 경기 변동에 따른 것인지 장기적인 추세인지 판단하고 장기적 추세라고 하면 서둘러 구조조정하는 게 맞다. 특히 철강과 조선, 석유화학, 자동차 업종은 공급과잉이 심각하다. 특화·전문화를 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 구조조정은 불가피하게 실업을 수반하는데.

▷ 실업급여 같은 사회 안전망, 노동시장 유연성이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부족해서 그렇다.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은 이유는 노동 유연성 때문이다. 대기업이 많게는 수만 명을 예사로 자르지만 승복한다. 반면 한 직장에서 쫓겨나면 끝난다고 생각하니 강성노조가 죽기살기로 덤벼든다. 사회 안전망, 노동시장 유연성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두려워서 구조조정을 안 하면 남아 있는 직원들까지 다 날아간다. 경제는 가혹한 거다. 실업이 무서워서 구조조정을 안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다.

― 구조조정은 누가 해야 하나.

▷ 당연히 국민으로부터 수권을 받은 정부다. 
   미국도 위기에 처하면 정부가 가차 없이 나선다. 개발시대의 정부 주도 구조조정이 많은 문제를 야기한 것은 사실이지만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탈바꿈하는 산업질서 재편 과정에서 굉장한 마중물 역할을 했다. 시장 기능이 존중되는 국면이지만 오히려 나설 주체는 정부밖에 없다. 채권자, 주주, 기업 자신 등 이해관계자들이 민감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객관적이고 투명한 구조조정의 틀을 짜줘야 한다. 한 부처가 못하고 기획재정부와 금융위, 산업통상자원부, 필요하면 국토교통부가 나서고 경제부총리가 리드해야 한다. 경제부총리는 기획재정부만 하라고 있는 자리가 아니다. (청와대에서) 경제를 보는 시각이 같은 장관으로 팀을 짜줘야 한다.



'再造山河' 정치권 쇄신 역설
  "기업인에 걸핏하면 배임 난리치는데 도 넘는 국감 의원에게나 적용할 말"


윤 전 장관은 기업발 경제위기에서 한국 경제가 탈출하기 위해서는 '재조산하(再造山河)'에 준하는 정치권의 쇄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조조정을 주도할 정부의 권한과 기능을 마비시키는 막무가내식 국정감사와 국회선진화법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배임죄에 해당한다"며 질타했다.

― 정부 주도의 강력한 구조조정 주문이 실천되지 않는 이유는.

▷ 정치권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이미 살아남기 위해 재무개선과 인력 감축을 상당히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는 결코 진공 속에서 자라나는 게 아니다. 정치·문화 상황에 큰 영향을 받는다. 정치권에서 유발하는 대표적인 대내적 취약 요인의 사례는 국정감사다. 국감장에 왜 민간인을 부르나. 국회는 행정부를 견제하고 입법적으로 뒷받침하라고 있는 곳이다. 민간인을 오라가라 하는 것은 월권이다. 오죽하면 사업에 전념해도 시간이 모자랄 기업인들이 국회에 로비활동을 해야 하나. 내 얼굴은 거울에 안 비춰보고 나라 경제가 서서히 침몰해가는데 허구한 날 공천싸움만 하는 국회가 우리나라의 최대 위크 포인트다.

― 국회의 국정감사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인가.

▷ 일 년에 한 번 연례행사처럼 전 국가과제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전 국정에 대해서 무차별적으로 난타전을 펴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매달 국회에서 정책질의하면 될걸 전체 행정이 올 스톱되는 낭비가 엄청나다. 국회의원들이 툭 하면 기업인들한테 배임이라며 난리치는데 국회 선진화법을 만든 국회의원들의 배임은 일반 기업 배임보다 백 배, 천 배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다. 명백한 고의 등 객관적 물증 없이 기업인을 함부로 배임으로 다스리면 안 된다. 경영상 판단에 관한 문제를 배임으로 몰아가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거다. 배임을 규정한 대륙법 체계의 원조인 독일에서도 기업인을 배임으로 몰아가는 건 드문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모험자본이 나오겠나. 100% 성공한다는 보장이 있는 사업이 어디 있나. 나중에 배임의 잣대로 몰아가면 어떤 기업이 움직이겠나.

― 구조조정과 더불어 재벌개혁 얘기도 많이 거론되는데.

▷ 압축성장 과정에서 재벌 중심의 규모의 경제를 추진하면서 재벌 문제가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를 잉태한 것은 사실이지만, 재벌이 우리 경제에 기여한 순기능까지 부인하면 안 된다. 오너 3세로 넘어가면서 소유·지배 구조 역시 제대로 정착되고 있다. 삼성그룹 전체의 시가총액이 316조원인데, 애플 하나가 634조원이고 구글은 460조원이다. 대기업의 부정적인 면만 부각해 타격을 가했을 때 일자리를 잃는 사람은 누구겠냐. 삼성그룹도 특화와 전문화를 통해 기업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 예를 들어 전자와 금융 부문에 특화해서 그룹을 운용한다면 갈채를 보내겠다. 옛날처럼 문어발 식으로 확장하는 것은 안 된다.

― 교육개혁도 시급한 과제 아닌가.

▷ 노동개혁만으로는 일자리 창출이 안 된다.
   노동시장에 투입되는 근로자들의 학력이, 대졸 이상 박사까지 고학력군이 이렇게 많은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고급 일자리가 기능직보다 많을 수 있나. 오히려 경쟁력 있는 인재는 나오지 않고 있다. 경쟁이 배제된 교육, 경쟁을 터부시하는 교육 때문이다.

― 국정 후반기 박근혜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 옛 새마을운동처럼 국민 역량이 집결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을 기대한다. 
   박근혜정부에서 우리나라 국가 신용도가 일본보다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대외적 신용도에 국한된 얘기지 우리 경제 자체가 개선됐다는 뜻은 아니다. 구조조정에 소홀하면 안 되고 특히 인사행정이 제대로 돼야 한다.올해 장관 된 사람들이 또 개각 대상이 된다고 한다. 총선 1년 남기고 국회의원 할 사람을 장관시키면 어떡하냐. 이건 인적자원 낭비다.

■ 윤증현 前 장관은…

1971년 공직에 입문해 40여 년간 재직하면서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최일선에서 몸소 겪었던 역사의 산증인이다. 공직생활을 마무리한 후 2011년부터 여의도에 '윤경제연구소'를 세워 한국 경제와 관련한 각종 연구 사업을 하고 있다. △46년 경남 마산 출생 △서울고 △서울대 법대 △위스콘신매디슨대 행정학 석사 △71년 행정고시 10회 △92년 재무부 증권국장 △94년 재무부 금융국장 △96년 재정경제원 세제실장 △97년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 △99년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 △2004년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 △2009년 기획재정부 장관 △ 2011년 제20차 유럽부흥개발은행 연차총회 의장 △2011년~현재 윤경제연구소장

[특별취재팀 = 노영우 차장 / 박준형 기자 / 전범주 기자 / 정석우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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