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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모음/공병호 칼럼

컴퓨처가 할 수 없는 것들

디지털 기술의 비약적인 변화가 가져올 미래를 아주 잘 다룬 책이 에릭 브란욜프슨의 제 2의 기계시대 The Second machine Age 입니다. 이 책 가운데 컴퓨터가 할 수 없는 것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우리는 아직 진정으로 창의적인 기계나 모험적인 기계나 혁신적인 기계를 본 적이 없다. 운율을 지닌 영어 문장을 지어낼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본 적이 있지만, 진정한 시를 지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는 아직 못 보았다. 산뜻한 산문을 지을 수 있는 프로그램의 탄생은 놀라운 성과이지만, 더 이어서 무엇을 써야 할지를 이해하는 프로그램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또 우리는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본 적 없다.

지금까지 그런 시도들은 처참한 실패를 거듭했다. 2. 컴퓨터가 못하는 이 활동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아이디 떠올리기(ideation), 즉 새로운 아이디어나 개념을 생각해내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훌륭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나 개념을 떠올리는 것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겠다. 3. 컴퓨터는 여전히 답을 내놓은 기계로 남아 있다. 흥미로운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지 못하고 말이다. 새 질문을 하는 능력은 아직 인간만의 것인 듯하며, 여전히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우리는 아이디어를 잘 떠올리는 사람들이 당분간은 디지털 노동자보다 계속 비교 우위에 있을 것이고, 그들을 원하는 수요가 계속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고용인이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당분간 재능 있는 사람을 뽑고자 할 때, 계몽 운동가인 볼테르가 했다는 조언을 따를 것이라고 본다. “어떤 답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질문을 하느냐로 사람을 판단하라.” 4. 아이디어 떠올리기, 창의성, 혁신을 영어로는 흔히 상자 바깡에서 생각하라(thinking outside the box)라고 표현하는데, 이 말은 인간이 이 분야에서 디지털 노동자보다 꽤 오래 상당한 우위를 누릴 것임일 시사한다. 컴퓨터와 로봇은 프로그래밍된 틀 바깥에 놓인 일은 여전히 잘하지 못한다. 5. 이렇게 컴퓨터는 자신의 틀 안에서는 패턴 인식을 아주 잘 하는 반면,

그 바깥에서는 정반대다. 이 점은 인간 노동자에게는 희소식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감각을 지닌 덕분에, 본질적으로 디지털 기술보다 훨씬 더 넓은 틀을 갖고 있다.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당분간, 우리의 감각기관들 및 그와 긴밀하게 연결된 뇌라는 패턴 인식 엔진은 우리에게 더 폭넓은 틀을 제공할 것이다. 6. 스페인 의류회사 자라(Zara)는 이런 이점을 적극 활용한다. 자라는 컴퓨터 대신 인간의 판단을 바탕으로 어떤 옷을 만들지를 판단한다. 대부분 의류업체들은 옷을 실제로 상점에 내놓기 몇 달 전에 조사하여 얻은 통계 자료를 토대로 수요를 예측하고 판매 계획을 세운다. 자라는 다른 접근법을 취한다. 자라는 주로 십대와 청년층을 겨낭한 유행에 맞는 저렴한 옷 패스트 패션을 전문적으로 생산한다. 이런 옷들은 금방 유행했다가 금방 시들해지므로, 자라는 유행하는 옷을 아주 빨리 만들고 운송할 수 있도록 공장과 창고를 배치했다. “어느 옷을 만들어서 각 매장에 보내야 할까?”라는 중요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자라는 전 세계의 매장 관리자들에게 주문을 정확히 하도록 하고, 그런 다음 며칠에 걸쳐 그 지점에서 팔릴 만한 상품만을 만들어 보낸다. 7. 따라서 아이디어 떠올리기, 큰 틀의 패턴 인식, 가장 복잡한 형태의 의사소통일하는 인지 영역에서는 인간이 여전히 우위에 있는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도 당분간 그 우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교육 환경은 이런 기능들은 강조하지 않고 있다. 대신에 초등교육은 사실들을 기계적으로 암기하고, 토리당 국회의원인 윌리엄 커티스 경이 1825년 경에 3R 이라고 이름 붙인 읽기, 쓰기 그리고 셈하기 기능을 숙달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8. ‘새로운 기계 시대에 가치 있는 지식 노동자로 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직설적으로 권고한다. 단지 3R를 배우는 대신에 아이디어 떠올리기, 큰 틀의 패턴 인식, 복잡한 의사소통의 기능들을 갈고 닦으라. 그리고 가능할 때마다 자기 조직적 학습 환경을 이용하고, 이 기능들의 발달 과정을 기록하라. "사람들은 직업을 갖고자 할 때, 앞으로 자동화가 이루어질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옮겨갈 준비를 갖추고,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보완하고 강화하는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더 많은 융통성과 적응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에릭 브란욜프슨, 제2의 기계시대, 청림출판, pp.237~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