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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모음/다산 칼럼 모음

<중앙일보>가 말하는 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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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환(고려대 명예교수)


<중앙일보>가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뉴스는 대부분 사람을 만나 취재하기 때문에 신문사 기자가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야말로 차 마시고 밥 먹는 것이나 진 배 없는 일, 즉 다반사(茶飯事)다. 그러나 지난달에 이 신문이 만난 사람들을 살펴보면 이 신문이 말하고자 하는 시대정신이 읽힌다.


오연호, 신영복, 안희정을 만나다


이 신문은 1월 8일에 <오마이뉴스>의 대표기자 오연호를 만났다. 메이저신문이 마이너신문의 대표를 대서특필하는 건 이례적이다. 그것도 <오마이뉴스> 대표라니, 뜻밖이다.

<중앙일보>는 종이신문이지만 <오마이뉴스>는 인터넷신문이다. <중앙일보>가 대자본 신문사라면 <오마이뉴스>는 그야말로 시민기자가 꾸려가는 구멍가게다. <말>지의 기자였던 오연호는 신방과 졸업반 학생 둘, 사진기자 하나를 고용해 이 신문을 창업했다. <중앙일보>가 제 아무리 중앙을 표방해도 우파임을 부정할 수 없다면 <오마이뉴스>는 스스로 공정성을 내세운다 해도 제 길을 가는 좌파다. 그런데 <중앙일보>는 <오마이뉴스>의 오연호를 만났다.

 

<중앙일보>는 15일에는 성공회대학 석좌교수 신영복을 만났다.

신영복은 누구인가? 스물일곱의 나이에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가 20년을 그 안에서 지낸 사람이다. 그가 감옥에서 쓴 편지를 모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많은 이의 심금을 울렸다.

그가 내보낸 편지를 읽으며 사람들은 심산유곡 절간에 있는 선승(禪僧)을 만나는 것이 아닌지 착각했다. 감옥에서 보낸 메시지가 증오가 아닌 사랑이었다는 사실은 독자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좌파다. 좌파는 눈에 핏발이 서있고 머리에 뿔이 달린 무서운 사람들이라는 냉전시대 내임콜링(name calling)을 누구보다 큰 망치로 때려 부순 좌파 중의 좌파가 그다.

 

그런데 그를 <중앙일보>가 만났다.

이 신문은 1월 30일에 충남지사 안희정을 만났다. 안희정이라면 메이저신문이 조롱을 일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이다. 노 전 대통령이 평생동지라고 부른 사람은 안희정과 이광재 단 두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 총선에서 좌희정과 우광재로 불린 두 사람은 충남지사와 강원지사가 되어 정계 전면에 나섰다. 일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한테서 느낀 신선함을 그들에게서 다시 느꼈지만 일부는 노무현 패러다임의 재현을 우려하기도 했다. 독자들의 눈에 비친 메이저신문의 시선은 후자 쪽이었다.

그런데 <중앙일보>가 안희정을 만났다.


<중앙일보>가 그들의 말을 통해 하고자 한 말은?


<중앙일보>는 이 세 사람을 만나 무슨 말을 들었는가? <오마이뉴스>의 오연호는 진보와 보수의 성역이 구축한 불신의 퇴적층을 걷어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창간사에서 ‘열린 진보를 추구하면서 경직된 진보에는 회초리를 들되 생산적이고 양심적인 보수와는 악수하자’고 한 사실을 기억하게 했다.

 

신영복은 60대 이상의 세대는 소통이 아니라 소탕을 해왔다며, 이제 공존을 위한 바람직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명화 <만추>를 연출한 이만희 감독의 딸 이혜영 앞에서 18번이라는 노래 ‘시냇물’도 부르고 영화 ‘부베의 연인’ 주제가도 불렀다. 그가 노래를 부른 것은 일종의 행위예술이다. 감옥에서 증오 대신 사랑을 이야기한 그이답게 그는 말이 아니라 그 행위예술 자체로 소통과 변화를 가로막는 감옥에서 탈출하라고 우리들에게 역설했다.

 

안희정은 과거와의 싸움으로는 미래를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과거가 아닌 미래를 위해 싸울 때 새로운 미래가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는 20세기까지 지녔던 미움과 불신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 그는 김종필은 물론 심대평 이완구의 역사까지 껴안아 축적하겠다고 했다. 연부역강한 초짜 지사가 보인 담대한 아량은 참으로 격이 있고 든든하다.

 

<중앙일보>는 세 사람의 말을 말한 그대로 옮겨 적었다.

그럼 그들의 말을 통해 <중앙일보>가 하고자 한 말은 무엇인가?

신영복과 만난 기자가 썼듯이, 이념적으로 오른쪽이건 왼쪽이건 다른 방향으로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면 그게 감옥이다. 이제 그 감옥에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풀어주어야 한다. 그게 시대정신이고 <중앙일보>가 간접화법으로 한 말이다.

 

이래서 좋은 신문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