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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모음/공병호 칼럼

북한 이야기

 661 2009-05-23
서둘러 평양으로 돌아오라는 지시를 받던 날, 나는 직감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나는 처단대상이 된 것이다.-김현식
   1932년 생으로 1954년부터 38년간 평양사범대학(김형직사범대학)의 로어교수로
재직한 김현식 교수님이 쓴 북한 이야기입니다
 
 


그 분은 1992년에 러시아에 교환교수로 와 있는 동안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어 대한민국을 선택하게 됩니다.
북한에는 아내와 아들 둘 그리고 딸 둘이 있었음은 물론입니다.
특히 이 책은 젊은이들에게 읽힐 만한 책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나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리고 우리가 그리고 대한민국이 북한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1. 느닷없이 미국에서 모스크바로 날아온 누님을 만나면서
   내 인생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빠져 들었다.
42년 만에 만난 누님은 어느새 칠십 노인이 되어 있었다.
동생을 만나기 위해 그 추운 겨울에 늙은 몸을 이끌고 온 누님의 따뜻한 손을
잡으며 나는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야, 네게 내 동생 맞니? 진짜 내 동생이야?
정말로 똥똘바우 맞단 말이지?"
누님은 내 얼굴과 머리를 어루만지며 울었다.

2. "그런데 똥똘바우야, 네가 대학교수가 맞긴 맞느냐?
    대학교수라는 네 꼴이 어찌 이리 험하냐?"
누님은 내게 바지를 벗어보라고 하였다.
누님의 느닷없는 요구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내가 어머니나 마찬가진데 무얼 망설이냐? 어서 벗어 보라니까?"

3. 내가 망설인 것은 누님 앞에서 바지 벗는 게 창피해서가 아니었다.
   내게는 빤쯔(팬티)가 두 장 있었다.
한 장은 본래 내 것이었고, 또 한 장은 해군대학의 교수를 하는 아들이
러시아에 교환교수로 갈 때 선물로 준 것이었다.
러시아에서 그 두 장의 빤쯔를 갖고
일주일이 넘도록 갈아입지도 않고 지냈다.

나는 마지못해 바지를 벗어 보였다.

4.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이럴 줄 알았어.
   대학교수가 이게 뭐냐. 내가 미국에서 듣긴 했어도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구나."
누님은 때에 전 내 속옷을 보고 탄식을 하였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해 온 빤쯔를 한 다스나 내 주었다.
"자 이걸로 날마다 갈아입고 살아라.
정말 이 정도인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5. 북한은 모든 생활은 식량문제를 �惠貂� 생각할 수 없다.
   어찌보면 북한사람들은 먹는 문제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에서는 잘못에 대한 징계도 식량으로 한다.
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교수라 해도 세 번만 지각을 하면
하루분 식량을 잘라 버리고 주지 않는다.

6. 세 번 지각하면 하루를 굶어야 한다.
   그래서 아침 출근시간이면 늦지 않기 위해 다들 헐레벌떡댄다.
상상을 해보라.
어린 학생들과 머리가 허옇게 센 노교수가 하루치 식량 배급을
잃지 않으려고 서로 앞다투어 학교를 향해 뛰어가는 모습을.

그러나 아무리 바빠도 대학 정문의 경비실을 지날 때면 한 손에 책을
들고 읽는 척을 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손에서 책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김일성의 교시가
내려진 이후 대학당의 지도원들이 경비실에 지키고 섰다가 책을
들지 않은 사람의 이름을 적어 당회의에서 비판을 하기 때문이다.

7. 식당을 가득 메운 6인용 식탕에는 굵은 돌소금 그릇이
   댕가당(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수저나 젓가락은 보이지 않는다.
학생들은 저마다 자기 양복 주머니에서 숟가락을 꺼내 식사를 한다.
여학생들은 헝겊으로 주머니를 만들어 알루미늄 숟가락을 넣어 다니지만
남학생들은 숟가락을 반으로 잘라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학교 식당의 출입문에는 식모(대학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를 칭함)들이
보초를 선다. 식모들이 하는 일은 학생들이 국그릇이나 밥그릇을
들고 나가는 것을 잡기 위해서이다.

8. 북한은 사상총화(비판회의)의 나라다.
   생활총화는 북한에서 '사상단련의 용광로'라 불린다.
왜냐하면 불순투성이의 철광석이 용광로의 불길 속에서 순수한 쇳물만 뽑혀
나오듯이 사람도 생활총화의 화끈한 비판을 통해 수령님에 대한
총성심이 가득한 새사람으로 변화된다고 믿는다.

9. 생활총화는 주, 월, 분기, 연간 총화로 진행된다.
   우리 대학의 경우는 주와 월 총화는 우리 로어 교수들끼리,
분기 총화는 로어와 영어교수들이 함께 하고,
연간 총화는 우리 대학의 전교수가 모여 비판회의를 갖는다.
연간 총화 때는 중앙당의 간부가 직접 출석해서
한두 명의 교수를 집중 비판을 벌이고 마침내는 탄광이나 농촌으로 내쫓고 만다.
그러니 교수라 해도 정치사상적 과오를 범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끊일 날이
없었다. 사소한 결함을 찾아내 마치 물어뜯어 죽일 것처럼
격렬하게 비판을 해야만 하는 그 자리에서 버텨내기가 쉽지 않았다.


* 출처: 김현식, <나는 21세기 이념의 유목민>, 김영사, 2007, pp.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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