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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에 들어가 문학평론가인 김윤식 교수의 '문학의 이해'라는 교양 과목을 수강했다. 그 명강의가 문학에 대한 편견을 바꿔놓았다.
문학은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역사와 문학의 차이를 듣고 그 명쾌한 설명에 무릎을 쳤다. 역사는 특수한 사건당사자의 행위를 기록한 '특수성'을 지니지만 문학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보편성'을 띤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 그래서 허구인 문학이 사실인 역사보다 더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는 것이다. '가공의 진실'이란 말의 뜻을 깨달았다.
2. 이 세상의 주인이란 할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그는 무엇 때문에 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의 질곡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무엇인가?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탐구하는 인문과학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우선해야 하는 학문이다.
3. 인문학이란 간단히 '인간이란 무엇인가?'하는 명제로 귀결된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존재를 해명하는 데 있어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시간적, 공간적 접근 방식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시간적인 질서와 공간적인 구조 속에서 좌표가 설정되기 때문이다.
4. 사학 즉 역사는 인간을 시간의 축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고, 철학은 공간의 축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인간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역사학이나 철학만으로 불가능하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두 축을 동시적으로 구유한 존재인데 역사나 철학은 시간의 축이든 공간의 축이든 한편만을 해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역사나 철학은 그것이 아무리 철저하다 해도 인간의 반쪽 이상은 접근할 수 없는 한계성을 지닌다. 그렇다해서 철학과 역사의 합이 곧 인간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인간에게 시간의 축과 공간의 축은 동시적인데 역사와 철학의 합은 시간의 순차성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5. 문학은 최소한 역사나 철학이 지닌 논리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인간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한 차원 높은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시학>에서 시는 비록 역사적 기술을 택하고 있디는 하지만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라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6. 그렇다면 인문과학을 받는 세 축으로서의 문학, 역사, 철학은 그 순서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문학은 인간을 총체적이고도 동시적으로 해명하고자 시도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적어도 인간이 반쪽만의 해명에 매달려 있는 역사나 철학보다 더 완전성을 지향하는 학문이다. 그리하여 인문학의 첫번째는 문학이다. 두 번째는 역사, 세 번째가 철학이다.
-출처: 고승철, <CEO인문학>, 책만드는집, pp.163-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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