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병 욱(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
‘사람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지난 설을 쇠며 내가 받은 느낌은 딱 이 한마디로 정리됐다. 모두가 당황하고 불안해하고 힘들어했다. 내 주변인들이야 평생 서민층으로, 팍팍한 세파에 부대끼느라 힘이 다 빠졌다지만 명절날까지도 ‘죽을 상’을 펴지 못하는 건 큰 충격이었다. 예의상 나누던 덕담은 오히려 사치스럽게만 느껴졌다. 어떤 음식보다 맛나게 설 상머리에 오르던 웃음이 사라진 판이니 거기에 무슨 희망가가 나오겠는가. 무슨 잔치 분위기가 일겠는가. 입만 열면 근심 걱정이 쏟아졌다.
오직 TV 속에만 웃음이 있었다. 큰 몸짓으로 유명한 개그맨이 연신 가식적 너털웃음으로 명절 분위기를 돋우려 애를 썼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꼴도 못 봤다. 직장에서 쫓겨난 친척이 “야, 텔레비전 꺼라! 도대체 뭐가 좋다고 웃고 있냐?” 쏘아붙이자 좌중은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누군가 얼핏 객쩍은 농담을 해봤지만 이내 큰 한숨에 묻혔다. 서로가 얼굴을 안 보려고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수저질만 해댔다. 부모형제, 친척이 한자리에 모여 한해 희망찬 새 출발을 다짐하는 설날 아침이 이런 적은 일찍이 없었다.
우울한 설날, 걱정은 여전히 ‘먹고 살기’라니! 걱정은 ‘원초적’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사느냐?”였다. 수사(修辭)로서의 먹고 살기가 아니었다. 정말로, 말 그대로 ‘먹고 살기’였다. 빚이 얼마고, 직장이 어떻고, 자식들 취업이 어쩌고, 교육비가 얼마고 간에 얘기는 모두 그 원초적인 먹고 살기로 귀착되었다. 아, “어떻게, 뭘 해서 먹고 사느냐”는 문제라니! 21세기, 인간의 기술과 발전이 하늘이라도 찌를 듯 높아진다던 세기, 그 첫 10년 안에 닥친 크나큰 걱정이 아직도 여전히 ‘먹고 살기’라니!
불안은 전염병과 같다. 설 아침을 그렇게 보내고 나도 웃음을 잃었다. 매사 짜증이 나고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래선 안 된다면서도 참담한 무력감에 시달렸다. 사실 어제 모처럼 책을 뒤져 이 글을 찾아내 한바탕 크게 웃지 않았더라면 그 기분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나를 괴롭혔을 것이다.
“집안에 값나가는 물건이라곤 겨우 <맹자>일곱 권뿐인데 오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200전에 팔아 그 돈으로 밥을 지어 실컷 먹었소. 영재( 齋 柳得恭)에게 자랑을 늘어놓았더니 그도 굶주린 지 오래라, 내 말을 듣자 즉각 <좌씨전>을 팔아 쌀을 사고, 남은 돈으로 술을 받아 마시게 했소. 이야말로 맹자가 직접 밥 지어 나를 먹이고, 좌구명(左丘明)이 손수 술 따라 내게 권한 거나 다름없지요. 그래서 나는 맹자와 좌씨, 두 분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칭송하였다오.” (안대회, <고전산문 산책>(휴머니스트) - 이덕무 편)
맹자가 밥과 술을 사다! 스스로 책만 보는 바보로 칭한 이덕무가 글벗 이서구에게 보낸 쪽지다. 백면서생의 궁상맞은 넋두리처럼 들리는 이 글이 무어 그리 우스운지 처음엔 낄낄대다, 나중엔 껄껄 소리 내어 웃었다. 책 팔아 밥과 술을 먹으면서도 맹자가 밥과 술을 샀다고 호기를 부리는 문사(文士)의 자부심, 게다가 그 운치와 정감이라니. 대학생 시절 책이나 학생증을 맡기고 밥을 먹어본 일이 있는 이라면 이쯤에서 ‘그까짓 먹고 살기’에 대한 근심 따위야 훌훌 털어내지 않고 배기겠는가. 그리고 쪽지의 말미.
“우리들이 한 해 내내 이 두 종의 책을 읽는다 해도 굶주림을 한 푼이나 모면할 수 있겠소? 이제야 알았소. 독서를 해서 부귀를 구한다는 말이 말짱 요행수나 바라는 짓임을. 차라리 책을 팔아서 한바탕 술에 취하고 밥을 배불리 먹는 것이 소박하고 꾸밈이 없는 마음 아니겠소? 쯧쯧, 그대는 어찌 생각하오?”
말은 그러면서도 여전히 손에서 책을 못 놓는 사람들, 야무진 자부심으로 “너는 그러렴, 나는 그래도 책을 읽을 거야”라고 눙치는 능청. 이덕무의 쪽지를 읽고 또 읽으면서 나는 위안을, 그리고 희망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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