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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영재교육

체세포복제를 포기한 체세포복제의 대가 이언 윌머트 박사

                                                                                                               2008년 09월 02일(화)

과학 기사는 흔히 객관적 과학지식만 다루고, 과학기자가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학기자로서 과학자를 만나 기사를 구성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이 가운데에 맞부딪히는 과학자들의 인간적 면모를 ‘과학자 인터뷰하기’로 풀어놓는다. [편집자 註]

▲ 이언 윌머트 박사 
과학자 인터뷰하기 영국의 이언 윌머트 박사는 1997년 사상 최초의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켜 일약 세계적 스타로 떠오른 생명과학자이다.

그는 새로운 생명을 창조한 ‘신의 손’으로까지 추앙되었지만 몇 년이 지나 돌리 복제 당시 공로가 실제보다 부풀려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명성에 얼룩이 지기도 했다. 올 초에도 돌리 복제의 공로로 그가 영국 왕실로부터 받은 작위를 취소해야 한다는 탄원서가 제출되는 등 윌머트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윌머트는 1997년 <네이처>에 실린 돌리 복제 논문의 제1저자였다. 그런데 업적 논란이 일어난 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체세포 복제 기술의 핵심은 체세포를 어떻게 탈핵시키는가보다, 세포분열만 하는 체세포를 어떻게 난자처럼 개체 발생 상태로 만드느냐에 있었다. 그런데 체세포를 아사상태로 몰아넣고 전기충격을 줌으로써 이를 가능케 한 핵심 기술은 공동연구자였던 키스 캠벨 박사의 업적이었다.

윌머트와 캠벨은 돌리 이전에도 몇 편의 논문을 함께 발표하면서 제1저자에 번갈아 가며 이름을 올렸다. 돌리와 같은 중요한 논문에 윌머트의 이름이 먼저 오르게 된 것이 공동연구자들의 무심한 돌림순 결과였다면 캠벨에게는 억울한 일이다. 이후 공로에 대한 논란이 일자 윌머트는 “캠벨이 3분의 2의 기여를 했다”고 인정했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논문조작이 불거진 즈음 윌머트 박사를 싸잡아 비도덕적으로 보는 시각이 없지 않았지만, 윌머트 박사는 연구에 대한 과장이나 거짓과는 거리가 멀었다. 2005년과 2007년 그를 만나 인터뷰한 경험으로 보면 그는 아주 솔직하고 겸손하기까지 했다.

윌머트 박사를 처음 만난 것은 2005년 8월 서울대 수의대에서였다. 그는 황우석 박사와 공동연구를 협의하기 위해 방한했고, 방한한 그를 단독 인터뷰했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윌머트 박사에게 2001년 스코틀랜드에 있는 로슬린연구소에 방한했던 경험을 이야기했는데, 사실 영국까지 가서도 만나지 못했던 윌머트 박사를 불과 4년 뒤 버젓이 서울에서 만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물론 당시는 황 박사의 2004년과 2005년 <사이언스> 논문 발표 직후였고, 소위 ‘세계 유일의 인간 복제배아줄기세포’가 세계적인 과학자를 서울로 끌어당기고 있다는 사실이 감회를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더구나 그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겸손했다. “당신이 체세포복제 기술의 선구자인데 굳이 서울대와 공동연구를 하려 하느냐, 논문만 봐도 따라잡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우리에겐 서울대 연구팀과 같은 훌륭한 기술이 없다. 꼭 전수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의 복제기술이 “독창적이고 새로우며 효율이 높다”며 “연구진을 영국으로 초청해 직접 배울 계획”이라고 했다.

루게릭병의 연구 계획에 대해서는 동행했던 리처드 쇼(런던 킹즈칼리지 교수 • 신경과 전문의)에게 꼬박꼬박 답변을 넘겼다. 윌머트 박사는 연구에서 한발 뒤로 물러선 관리자처럼 보였다. 그는 복제배아줄기세포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지만 동시에 세포치료에 당장 활용될 수 없다는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고 지적했다.

루게릭병은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과는 달리 줄기세포로 세포치료가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루게릭병 환자의 세포를 복제하면 어떤 유전자가 발병과 관련되고 어떤 신약성분이 치료효과를 갖는지 알 수 있다. 윌머트 박사는 “복제배아줄기세포가 지금 당장 효용을 갖는 것은 (세포치료가 아닌) 질병 메커니즘 규명”이라고 말했다.

황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이 모두 허위로 밝혀지면서 한국과의 협력관계를 단절했던 그는 2007년 12월 새로운 공동연구를 모색하기 위해 다시 방한했다. 이 때는 일본의 야마나카 시냐 교수팀이 난자를 쓰지 않고 체세포를 줄기세포로 만드는 역분화 연구에 성공한 직후였다. 로슬린연구소에서 에딘버러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윌머트 박사도 체세포 복제 방식을 포기하고 역분화 연구에 매진하려는 참이었다.

필자는 “역분화 연구는 바이러스를 사용하므로 임상에 적용하기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체세포 복제 기술은 여전히 유효한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졌다. “나도 체세포 복제 연구를 계속 하고 싶다.” 윌머트 박사의 대답은 이랬다. “하지만 훨씬 쉽고 효율적인 길이 있다. 그래서 역분화 기술을 선택했다.”

2005년이나 2007년이나 그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는 여전히 루게릭병의 원인 규명이었고 이번에는 복제배아줄기세포와 거의 유사한 유도 줄기세포(iPS)가 그가 찾은 길이었다. 어쨌거나 ‘돌리 아버지’는 현재의 자신을 있게 한 자신의 기술을 포기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김희원 한국일보 기자 | hee@hk.co.kr

저작권자 2008.09.02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