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덕환의 과학문화 확대경 (117) |
우리 학생들의 과학 성취도가 크게 떨어졌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있었다. 평균이 무려 7단계나 떨어졌고, 최상위권의 경우에는 무려 15단계나 곤두박질을 쳐버렸다. 과학 지식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학생은 전체의 1.1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다만 과학에서 ‘다소 하락’했을 뿐이라는 것이 교육부의 공식 입장인 모양이다. 지금까지 OECD가 2000년부터 실시해왔던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왔던 교육부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입장이다.
심각한 공교육 붕괴의 징후
물론 우리 학생들이 언제나 모든 평가에서 반드시 1등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경제력이나 과학기술의 국제적 경쟁력을 고려하면, 우리 학생들의 과학 성취도가 세계 11위인 것이 당연하다. 읽기와 수학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만족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선 우리 교육이 여전히 높은 수준의 성취도를 달성하고 있다는 교육부의 결론은 너무 성급했다. PISA의 평가 대상인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에 대한 사교육은 논술과 수학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1까지의 사교육 시장에서 과학은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읽기와 수학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한 것은 극성스러운 사교육 덕분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공교육의 효율이 그대로 반영될 수밖에 없는 과학은 2000년의 1위를 정점으로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번 결과는 우리 공교육이 완전히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탄일 수가 있다.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과학이 추락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명백하다. 이번 평가에서도 드러났듯이 우리 학생들이 과학의 가치는 높이 평가하면서도, 과학을 배우려는 신념이나 흥미는 크게 뒤떨어진 결과다. 우리 학생들이 과학을 외면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우리 과학교육계가 외쳐왔던 ‘실용적이고 쉽고 재미있다’는 주장이 학생들에게는 설득력이 전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나친 선택중심의 교육과정이 우리 학생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다. 65퍼센트 이상의 학생들에게 과학은 고1에서 끝나는 과목이다. 자연계로 진학하겠다는 학생들에게도 과학은 절대 중요 과목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학생들이 과학을 배워야 한다는 신념과 관심을 가질 아무런 이유가 없다. 잘못된 교육과정이 문제다. PISA의 문제에 주관식 생물 문제가 많았고, 우리 과학 교사가 잘못 가르쳤고, 교과서가 잘못되었다는 지적은 핵심을 완전히 벗어난 지적이다. 과학을 배우려는 학생이 없는 것은 교사와 교과서 탓일 수는 없다는 뜻이다.
과학만 그런 것이 아니다. 역시 학생들의 선택권을 핑계로 지나치게 세분된 다른 과목도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공교육의 총체적인 붕괴는 시간 문제일 뿐이다. 예체능의 향유(享有)와 문화적 창의성을 강조하는 새교육 과정이 시작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 확실하다.
공교육은 반드시 살려내야 한다
그렇다고 공교육을 완전히 포기하고 사교육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비용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교육부 장관까지 감탄했던 사교육의 효율은 불합리한 대학입시 때문에 나타나는 착시에 의한 환상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사교육이 공교육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떨어뜨리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결국 어렵더라도 공교육을 살려내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무엇보다도 학교를 통한 공교육의 역할과 한계에 대한 분명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학교는 전문성을 갖춘 유능한 교사만이 가르칠 수 있는 내용을 교육시키는 곳이 되어야만 한다. 진정한 전인교육은 전문적인 학교 교육과 가정과 사회의 인성 교육이 결합되는 경우에만 가능한 것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도 획기적으로 축소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백화점식 교육으로는 어느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다. 교육부가 비난했던 ‘교과 이기주의’는 모든 것을 가르치겠다는 욕심에 눈이 멀어버린 교육부가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모든 학생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핵심 과목과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은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와 같은 핵심 과목의 교육은 대폭 강화되어야 한다. 사교육의 수요가 발생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만 한다.
공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의 기(氣)를 살려주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공교육의 교사들은 우리 사회가 정한 엄격한 기준을 통해 선발된 우수 인력이다. 그동안 우리가 그런 교사들에게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스승이 받아야 할 당연한 대접을 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교사들을 문제 집단으로 인식하는 사회에서 공교육 정상화는 절대 불가능하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동대학 과학커뮤니케이션 협동과정 주임교수이기도 하다. 이교수는 2002년 한국과학저술인협회 저술상을 수상했으며, 2004년 제5회 대한민국 과학문화상을 수상했고, 2006 국제화학올림피아드 실무조정위원장을 맡는 등 과학대중화를 위한 과학문화 확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이교수는 제10기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으로 위촉돼 활동하고 있다.
| | |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duckhwan@sogang.ac.kr
|
2007.12.17 ⓒScience Time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