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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기타/책 읽기

처칠

처칠, 그 안의 `우주`를 보라  
처칠을 읽는 40가지 방법 / 그레첸 루빈 지음
처칠의 트레이드마크인 `승리의 브이 사인`.

65세를 갓 넘은 내 모습은 키가 작고 뚱뚱하며 등은 굽고 턱은 돌출돼 있습니다. 물론 22살 때는 영화배우 뺨치는 외모로 화려한 정장이 어울리기도 했죠. 나는 변치 않는 불독이며 영국인의 공격성과 독설까지도 대변합니다. 나는 공작의 손자이며 빅토리아 시대의 소산이자 세계적인 정치가입니다.

내가 안하무인 격으로 남들을 부린다고 뭐라고 하지 마세요. 난 `위대한 사람`이니까. 또 영국을 전쟁이라는 수렁 속에서 건져 냈습니다. 대신 개인적으론 항상 빚에 쪼들렸지만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자상한 아버지의 면모도 갖고 있어요. 가장 큰 행운은 독일의 `히틀러`라는 악당과 비교됐다는 점이죠. 덕분에 불한당 이미지는 많이 감춰질 수 있었답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처칠의 트레이드마크인 `승리의 브이 사인`.
이쯤 되면 모두들 눈치챘으리라. 그러나 어린 시절 위인전기에서 잠깐 `윈스턴 처칠`을 만난 사람이라면 다소 헷갈릴 수 있다. 처칠은 세계2차대전에서 영국을 승리로 이끈 영웅으로 묘사된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처칠은 영웅이자 문장가요 명연설가에 재담꾼이다. 그런데 무심한 남편이요 울보에 술꾼, 전쟁광이기도 하다. 놀라지 마시길. 그는 재능 있는 화가이기도 하다.

과연 그의 정체는 무엇인가. 전쟁이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 한 인간의 복잡한 양면성을 인정하는 순간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그동안 수많은 전기가 그의 영웅적인 면, 신화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 것에 대해 신간 `처칠을 읽는 40가지 방법`(고즈윈 펴냄)의 저자는 새로운 전기 읽기를 제안한다. 한 인물 속에 담긴 `우주`를 보라.

수병복을 입은 7살의 처칠. 나이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거만한 표정이다.
출간된 전기만 해도 650종이 넘는 세기의 영웅 처칠. 그는 영국 내 `위대한 영국인`을 꼽는 설문에서 부동의 1위다.

이 위대한 인물을 한 가지로 설명하기엔 부족함이 너무 많다는게 이 책의 저자 그레첸 루빈의 생각이다. 저자는 처칠의 삶에 대한 핵심적인 질문으로 구성된 40가지 주제로 수년에 걸쳐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연구한 끝에 처칠에 대한 평가를 집대성하고자 한 것.

40가지 주제는 흥미롭다. 주제 중 하나인 `처칠의 최상의 순간`에선 그의 리더로서의 결정과 각종 명언이 쏟아진다.

예를 들면 "만일 이 오랜 우리 섬나라의 역사가 종말을 고한다면, 그날은 바로 우리 모두 땅 위에 쓰러져 그 위로 흐르는 우리의 피로 익사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해안에서 싸울 것이고 상륙 지점에서도 싸울 것이며 들판에서, 거리에서, 언덕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등이다.

이러한 처칠의 웅변은 전 영국인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울렸다. 처칠의 뚝심은 항상 감동적이고 전쟁 상황이어서 더 비장하게 느껴진다.

1895년 제 4경기병 연대 근무 시절 정장을 차려입은 처칠 부관.
절체절명의 순간 리더로서 역량을 발휘했던 그이지만 처칠의 이율배반성은 그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주제별로 상반된 의견까지 실어 균형감을 잃지 않았다. 가령 `술꾼 처칠`에선 그가 알코올 중독자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아닐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80세에 이를 때까지 책임 있는 지위들을 수행한 것을 보면 알코올에 대한 의존성이 강하지 않았다는 것. 그가 자식들에게 존경받는 자상한 아버지일 수도 있지만 또 무책임한 면도 없지 않았다고 넌지시 암시한다.

그의 행운아적 기질도 흥미롭다. 돈 씀씀이가 헤펐던 처칠은 1921년 죽은 친척에게서 부동산을 넘겨 받거나 남아공 거부에게서 모든 빚을 탕감받기도 했다.

그러나 진정한 행운은 그가 `절대악`인 히틀러와 비교됐다는 점. 만약 역사가 인도 영웅 간디와 처칠을 짝지어 비교했다면 처칠에 대한 이미지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문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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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