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래(조선일보에서 펌)2007. 9. 1
나는 어제 모임에서 돌아온 후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지나친 편견에 앞날이 걱정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이 번 16대 대선 이야기가 주종을 이룬 가운데 격앙된 감정을 접하고 정말 큰일 났다고 낙담(落膽)했습니다.
물론 지지와 선택의 결과가 허망하고 서운한 감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 결과를 수용하는 자세가 아쉽다고 느꼈고, 그 편견의 정도가 매우 심함에 실망했습니다.
물론 상실감이 없지는 않고 그 감정의 잔흔이야 마음 속에서 쉬 사라지지 않을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지 편견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정당하지 못한 견해입니다.
오히려, 그럴 것이 아니라 왜 그런 결과가 왔을까하는 쪽으로 담론을 이어가는 것이 성숙된 시민 의식이 아닐까로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잘은 몰라도 짐작으로 볼 때 그 모임 중에도 견해가 달라서 선택을 달리한 인사도 있을 것으로 봤습니다.
그럴진데, 자기나 그 집단에 맞지 않다고 타를 배척하거나 두고 두고 질시하는 행동은 선비다운 운신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감정의 골이 계속 아집과 편견으로 이어질 때 화합은 아직도 거리가 먼 희망으로 느껴졌습니다.
만약, 강단에 선 선생님이라면 학생들의 현실적 질의에 어떻게 답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며 처신일까도 생각해 봤습니다.
또,나는 세대간의 편견과 갈등이 어디서 왔을까를 나름대로 생각해 봤습니다.
'아집(我執)'이 그 주범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에다 다양한 정보의 부재가 더욱 굳은 성(고집)을 부추긴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대화의 다양성을 용인할 너그러움이 없으니 자연히 세대간에 이질감을 낳았고, 안정을 기하고자 하는 아버지 세대는 정체되어 있고 자기들 위주로 세상을 농단한다는 오해까지 불러온 것이 아닌가로 생각합니다.
거기에 비해서 젊은 세대들은 미디어와 인터넷 바다에서 다양하고 광역한 정보와 대화를 통한 결속으로 이어진 것을 어른들은 폄하만 했을 뿐 그 다양성과 정당성을 용인하려 하지 않았던 결과 역습을 당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젊은 세대들의 선택이 만능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세대간, 상호간의 온유한 포용의 결핍이 원인이었다고 생각해 봤습니다.
이제는 어른들의 위신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러러면 아집과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온유한 포용력으로 모두를 감싸는 넉넉한 인품을 갖추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러면, 젊은이들처럼 힘이 닿는 대로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정보의 세계를 공유해야하고 젊은 세대와의 대화에도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참여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이러한 나의 견해가 새로운 편견이 되고 오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두려움이 생기기도 합니다.
* 이 글은2002년12월12일의 글입니다. 지금은 어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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