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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관리/대화기술

설득의 심리학


많은 사람들이 혁신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혁신기법과 과정을 즐기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데는 상당히 인색하다는 것을 깨달을 즈음, 나는 나의 일터 도서실에서 「설득의 심리학」이란 책을 만났다.

같은 사안일지라도 ‘갑이 이야기할 때는 듣는 시늉도 하지 않다가 을이 요구하니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더라’라는 이야기를 우리는 조직 안에서 종종 듣게 된다.

이 책은 그 이유를 설명해주고 이제는 설득에도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설득에 대한 오랜 학문적 연구 결과를 저자 스스로가 3년 동안 외판원, 레스토랑의 웨이터 등의 직접적 체험(참여적 관찰)을 통하여 터득한 실천적 지식과 함께, 설득 현상에 대한 이론과 현실의 균형을 절묘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 이 책을 접하면서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은 정보사회에서,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하여 단편적인 정보에 의존하는 지름길 식 의사결정 방식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고 의아해 했다. 그러한 독자의 궁금증을 이미 예견이라도 한 듯 원 저자 치알디니 교수는 학문적 논리에만 치우치지 않고 구체적 사례를 들어가며 천천히 이해시켜 나간다.


이러한 설득의 법칙들을 간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주고받기의 심리에 기초하고 있는 상호성의 법칙이다.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베푼 대로 우리도 그에게 되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상대방의 호의는 우리의 또 다른 호의로 되갚아져야 하며, 이는 ‘1보 후퇴는 2보 전진을 예고하고 있다’는 심리에 기초하고 있다.

두 번째, 심리적 일치성에 대한 압력을 이용하고 있는 일관성의 법칙이다.
작은 요구로부터 시작하여 결국 커다란 승낙을 얻어내고자 하는 전략으로 ‘문전걸치기 기법(the foot in the door technique)’이나 우선은 존재만 인정해 달라고 하는 설득 전문가들의 미끼 기법(a low -ball tactic)이 여기에 속한다. 이는 ‘한번 선택한 것은 버리기가 아깝고 약속은 약속을 낳는다’는 인간의 순수한 심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세 번째, 다수의 영향력에 의존하고 있는 사회적 증거의 법칙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우리 행동의 옳고 그름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행동을 같이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한 심리를 이용하여 스탠드바의 바텐더들은 영업시작 전에 팁을 담는 유리병에 미리 1달러 지폐 몇 장을 넣어 두는 경우가 있고, TV 코미디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가짜 웃음은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가짜 웃음을 사용하면 사람들이 그 프로그램이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종종 활용되고 있다.

네 번째, 유사성 등의 조건에서 유발되는 호감의 법칙이다.
재판 과정에 있어서 피의자의 외모나 체격이 판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는 우리를 심란하게 만든다. 신입사원 면접장에서 잘 생긴 사람을 보면, 그는 당연히 능력 있고 친절하고 정직하며 동시에 머리도 영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후광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첫 대면에서는 신체적 특성이 호감도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만남의 횟수를 늘리고 익숙해지면, 상호간의 공통의 목표를 설정하고 서로 협력을 통해 호감도가 높아지게 되는 후천적 노력 또한 호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본인의 삶에 충실한 열정을 가진 자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고 있다.

다섯 번째, 맹목적인 복종을 기초로 한 권위의 법칙이다.
사기꾼들을 보면 모두 그럴 듯한 직함을 갖고 있거나 또는 자기들의 권위를 상징하는 겉치장을 하고 있다. 연구자들의 관찰에 의하면, 신호가 바뀌자마자 앞의 소형차를 향하여 마구 경적을 울려대었던 사람들 중 절반은 값비싼 고급 차 뒤에서는 차가 움직일 때까지 전혀 경적을 만지지도 않는 경향이 높다고 한다. 권위의 법칙이 지닌 영향력은 그 힘 자체로서도 막강하지만 그 힘을 우리가 제대로 예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우리에게 미치게 되는 것이다.

여섯 번째, 소수의 가치를 바탕으로 한 희귀성의 법칙이다.
희귀성 법칙을 가장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이제 얼마 없습니다!’와 같은 전략이다. 그러한 광고는 소비자에게 그 품목의 희소성에 대한 인식을 주입하여 그것의 가치를 상승시키려는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


옮긴이 이현우 교수는 사람을 움직이는 여섯 가지 법칙 중 단 한 가지라도 당신이 정확하게 이해하고 또한 실생활에서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데 투자한 당신의 노력은 충분히 보상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에게 가장 맞는 설득법칙부터 시작하라고 권한다.

개인적으로는 4번째 법칙인 호감의 법칙을 선호한다. 상기한 6가지 법칙이 모두 신뢰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설득전문가를 만날 때에는 설득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반해, 호감의 법칙은 오랜 접촉과 상호교류를 통해 형성되는 경우가 많아 불신을 최소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저자는 호감의 법칙을 미국 피닉스주의 TV방송국에서 근무하는 일기예보통보관이 악기상시 연상되는 결과 때문에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예로 들며 설명하였는데 기상청 직원의 한사람으로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날씨가 나빠지면 많은 사람들은 통보관의 잘못으로 돌리며 온갖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들어 너무 억울하다는 하소연인데 그러한 사정은 내 일터에서도 수시로 볼 수 있는 상황인 걸 보면 예보관이나 통보관의 입장은 국경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사례로 든 피닉스가 일년에 300일은 좋은 날씨가 계속되는 지역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약 200일 정도를 변화무쌍한 기상상황에서 근무하는 우리나라 예보관의 고충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 설득의 심리학 : 로버트 치알디니 지음/이현우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20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