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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관리/CEO

[월요아침] `실패의 추억`파는 유바리市

일본 북부 홋카이도의 유바리(夕張)시는 눈이 많은 탓에 설국(雪國)으로 불리는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유바리 국제판타스틱 영화제는 국산 영화도 자주 수상작에 올라 우리에게도 친근하다.
 
특산품인 멜론은 무척 비싸지만 맛이 좋아 일본 사람들에게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다.

이런 유바리시가 최근 이색적인 관광상품을 내놓았다. 다름아닌 지방자치단체가 저지른 잘못으로 초래된 참담한 실패의 경험을 상품화한 것이다.

유바리시는 한때 잘 나가던 탄광도시였으나 1980년대 폐광으로 경제 침체를 겪게 된다. 시는 탄광역사촌, 석탄박물관 건립 등 관광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여 활로를 모색했다.
그러나 무분별하게 벌인 사업은 적자를 면치 못했고 돈을 빌려 적자를 메우는 일이 되풀이되면서 차입금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지난해 6월 360억엔에 달하는 빚을 남긴채 지자체로서는 극히 이례적으로 파산하고 말았다.

지자체 파산사태로 주민들이 겪는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장기 재건계획에 따라 주민들이 부담하는 세금은 늘어났고 교육ㆍ의료 등 공공서비스 혜택은 크게 축소됐다.
공무원들도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큰 폭의 임금삭감을 감수해야 했다.

유바리가 실패의 뼈아픈 경험을 팔려는 것은 재정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일이든 마다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절박함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외 지자체와 주민들에게 자신들과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교훈과 경각심을 주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우리 지자체들이야말로 유바리의 경험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소중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세금을 눈 먼 돈인 양 펑펑 써대는 일부 지자체와 공공기관의 행태가 도를 한참 넘었기 때문이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전국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연장이 140곳에 달하는데 추가로 30곳이 건립되고 있다.
이들 공연장은 대부분 `개점휴업` 상태여서 건립비용뿐 아니라 시설유지비까지 낭비되고 있다고 하니 한심한 노릇이다.
컨벤션센터도 수입이 손익분기점을 넘긴 곳이 전국 2곳에 불과한 데도 각 지자체들의 건립경쟁이 여전히 뜨겁다.
민간 기업을 이런 식으로 운영했다면 망해도 벌써 여러 번 망했을 것이다.

기획예산처가 지난 2년간의 예산 낭비를 신고받아 조사해보니 실제로 예산 낭비가 확인된 사례가 204건에 달했다고 한다.
공연장과 컨벤션센터 사례만 보더라도 건축ㆍ토목 분야에서 신고건수가 가장 많았다는 게 결코 이상할 것이 없다.

수당을 부풀려 받거나 출장비를 과다하게 청구해 국민 세금을 빼돌리는 일도 흔하다.
최근에는 서울 일부 구청이 공무원들에게 매년 수십억원씩 초과근무수당을 허위로 지급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나기도 했다.
재정자립도가 전국 최하위권인 경북의 한 군은 거액을 들여 군수 집무실을 리모델링하고 대형 관용차를 구입해 구설수에 오른 일도 있다.

얼마 전 남미로 외유성 출장을 다녀와 여론의 질타를 받은 서울지역 구청장 7명이 귀국하면서 "많이 배우고 왔다"고 오히려 목소리를 높인 장면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들이 유바리시를 방문했더라면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아울러 공기업 감사들도 진정으로 혁신에 뜻이 있다면 남미 이과수폭포가 아닌 유바리시를 찾기를 권하고 싶다.
다만 한꺼번에 너무 많이 몰려가거나 유바리 방문을 앞세워 여흥에만 몰두했다간 또 다른 구설에 휘말릴 수 있음을 고려하기 바란다.

[성철환 논설위원]      2007.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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