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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영재교육

언론의 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

이덕환의 과학문화 확대경 (103)
정치와 사회 문제를 주로 다루는 시사 월간지가 자칭 ‘재야 과학자’의 새로운 이론을 ‘노벨상 0순위’라고 추켜세우면서 우리 사회의 과학 보도가 또 한 번 시험대에 오르는 일이 있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한국물리학회를 중심으로 한 물리학자들의 발빠른 대응과 언론의 적극적인 협조로 논란이 더 이상 확대되지는 않게 되었다. 최근 과학 보도에서 우리 언론의 자정 능력이 크게 높아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수준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과학 보도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더욱 강도 높은 노력이 필요하다.

선정적인 과장 보도의 전형(典型)

이번 논란의 시작은 과학 분야를 전문으로 하지도 않는 시사 월간지 「신동아」의 별책 부록이었다. “재야 과학자가 물리량의 단위를 통일하는 내용의 논문 두 편을 유럽의 입자물리학회지에 보내서 세상을 흔들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기사의 진짜 내용은 황당한 것이었다.

두 편의 논문 중 한 편은 이미 편집자로부터 ‘반송’이 되었고, 나머지 한 편에 대해서는 13개월이 넘도록 ‘리뷰’ 중이라는 것이 ‘세계를 뒤흔들었다’는 주장의 가장 중요한 근거였다. 그러나 전문성을 확신할 수 없는 몇몇 ‘과학자’들의 지극히 ‘비과학적’인 찬사를 제외하면 그런 주장이 세계를 뒤흔들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내용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전형적인 과장 기사였던 셈이다.

기사의 내용으로 보면, 재야 과학자가 아마도 양자역학에서 표기의 편의를 위해 사용하는 ‘원자 단위’(atomic unit)를 엉뚱하게 이해했던 모양이다. 그의 주장은 과학은커녕 일반 상식에도 맞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이미 한국물리학회의 진짜 입자물리학자들도 기사에 소개된 주장이 ‘과학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공개했다.

더욱이 재야 과학자가 주장하는 내용에 대한 평가는 두 편의 논문 중 한 편이 반송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리뷰가 늦어지고 있는 다른 한 편도 기사의 내용과는 달리 단순한 행정적인 이유 때문에 통보가 늦어지고 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다. 재야 과학자가 논문을 공개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도 논문의 내용을 더욱 의심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번 「신동아」의 기사는 ‘진실성’은 완전히 외면한 ‘선정적인 과장 보도’의 전형(典型)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우선 기사의 과학적 내용이 전혀 과학적이지 않았다. 재야 과학자의 주장에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물리량의 단위를 통일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부터 밝혀내지 못했다. 과학에서 ‘물리량의 단위’가 무엇이고, 그것을 ‘통일’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부터 정확하게 밝혔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시사 월간지가 그 구체적인 방법을 밝힐 필요는 없다. 그러나 기사의 핵심이 되는 주장이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밝혔어야 한다. 재야 과학자가 주장하는 실체를 소개하지 못하는 기사는 ‘알맹이’가 완전히 빠져버린 엉터리 기사가 될 수밖에 없다.

「신동아」 기사의 선정성은 누가 보아도 지나쳤다. 심지어 학술지의 편집위원인 하기와라 박사를 ‘심사위원’으로 둔갑시키면서 ‘고(故) 이휘소 박사의 제자’라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입자물리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공학 분야의 인물들을 등장시켜 온갖 찬사를 늘어놓게 만든 것도 선정성을 극대화시키는 요소였다.

재료공학을 전공한 공학자는 이미 온갖 엉터리 유사(類似)과학적 주장의 홍보대사로 그 이름이 알려진 대표적인 문제의 인물이다. 재야 과학자 자신을 신비화시킨 내용은 누가 보아도 유치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학적 내용을 제쳐두더라도 이런 수준의 내용으로 가득 채워진 기사가 ‘별책부록’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유사과학은 사회를 어둡게 만드는 ‘악령’

현대의 과학이 놀라운 수준으로 발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제 우주의 기원과 운명은 물론이고 생명의 정체까지 밝혀낼 수 있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우리가 과학 지식을 밝혀내기 위해 많은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충분한 과학적 지식을 확보하기까지 자연은 우리에게 두렵고 위험한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과학 지식을 통해서 자연을 정확하게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더욱 안전하고, 건강하게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과학을 통해서 얻어지는 경제적 소득은 오히려 과학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작은 이익에 지나지 않는다.

엉터리 유사과학은 우리의 그런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리는 심각한 위험 요인이다. 유사과학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마약과도 같은 것이다. 유사과학을 확산시키는 사람들의 목표는 분명하다. 우리 사회를 불안하고 어둡게 만들어서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챙기려는 것이다. 이번 재야 과학자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이미 문제의 재야 과학자는 상당한 수준의 경제적 이익을 챙긴 것으로 보인다.

정통 천체물리학자였고 세계적으로 알려진 과학저술가였던 칼 세이건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을 통해 유사과학의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오늘날 언론은 자칫하면 유사언론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언론의 과학에 대한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책이다. 과학적 내용을 보도하는 기자와 편집자의 과학 상식과 비판적 사고방식이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뜻이다. 작년에 과학기자협회가 심사숙고한 끝에 발표한 ‘과학보도 윤리선언’은 모든 언론이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동대학 과학커뮤니케이션 협동과정 주임교수이기도 하다. 이교수는 2002년 한국과학저술인협회 저술상을 수상했으며, 2004년 제5회 대한민국 과학문화상을 수상했고, 2006 국제화학올림피아드 실무조정위원장을 맡는 등 과학대중화를 위한 과학문화 확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이교수는 제10기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으로 위촉돼 활동하고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duckhwan@sogang.ac.kr


2007.09.03 ⓒScienc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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