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3남이 꼭 연세대학교에서 가기를 작정하고 상경대학 경제학과에 지원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낙방했다. 상경대학 교수들이 최호진 학장과 함께 총장실을 찾아왔다. 그들은 총장의 아들을 떨어뜨릴 수 없어서 상경대학 교수회에서 입학을 허락하기로 가결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학장님과 교수님들의 뜻은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학생을 입학시키는 것은 총장입니다. 나는 입시행정에 있어서 성적순이 아니고서는 입학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하였다.
그들은 “말도 안 됩니다. 총장님, 우리가 연세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총장님의 아들 하나 입학시키지 못하면 무슨 면목으로 여기서 교수 노릇을 하겠습니까? 우리 모두 사표라도 내야 되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로 교수들의 말에 고마움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이 왜 사표를 내야 합니까?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내가 사표를 낸 후에 여러분이 마음대로 내 아들을 입학시키십시오.”라고 했다. 교수들은 조용히 총장실을 나갔다.
며칠 후 막내아들이 나를 찾아왔다. “아버님, 저 미국으로 이민 가서 대학 공부를 하겠습니다. 아버님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는 것이었다. 어느 부모 치고 자식이 대학 입학시험에 떨어졌다는 사실에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아내와 막내는 상경대학 교수회에서 입학을 허락하기로 가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남편이며 아버지인 총장이 거부해서 낙제를 시켰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섭섭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미국으로 이민 가겠다는 아들을 앉혀 놓고 강하게 훈계했다. “네 마음과 뜻은 잘 알겠다. 그런데 너는 남자이기 때문에 병역 의무를 해야 된다. 네가 군대에 가서 군 복무가 끝난 다음에 이민을 가든지 미국 가서 공부를 하든지 해라. 그러나 먼저 군대에 가라.”
나는 언제나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대개 허락을 했었지만 군 복무를 하지 않고 이민 간다는 것은 절대로 허락할 수 없었다. 난처해진 막내아들은 할 수 없이 1년간 재수를 하고 다음 해에 연세대 상경대학 경제학과에 재도전해서 합격했다.
그는 졸업과동시에 군에 들어갔다. 육군 중위로 제대하고 현대 건설에 입사하여 근무하였다. 그 뒤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이민 가서 살고 있다. 아들이 입학시험에 떨어졌을 때에는 가슴 아팠으나, 재수해서 자기가 원하는 학과에 입학하여 공부하고, 한국인으로서 군 복무를 마친 후 이민을 갔으니 얼마나 떳떳한가!
-박대선 감독<하늘에선 정의가 땅에선 진실이>에서-
**** 1960년대만 해도 대개 어느 정도의 학생들을 입학시킬 수 있는 재량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시대에 철저하게 원칙을 지키는 정직하고 진실하게 사회의 기강을 지켜나간 박총장님의 모습이 너무나 멋지지 않습니까? 정말로 가슴이 찡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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