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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영재교육

과학은 재미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이덕환의 과학문화 확대경 (99)
정부가 과학기술기본계획을 새로 만들고 있다. 5년마다 과학기술의 발전 목표와 정책의 기본 방향을 비롯한 13개 항목의 중장기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는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른 것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과학기술 발전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누가 뭐라 해도 ‘과학교육’이다. 그래서 과학기술기본계획에도 ‘과학기술교육의 다양화 및 질적 고도화, 과학기술인력의 양성 및 활용 증진’과 ‘과학기술문화의 창달 촉진’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모두가 학교에서의 과학교육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호기심만 강조하는 과학교육

그런데 이번에 마련하고 있는 과학기술기본계획에서도 과학교육의 목표를 학생들의 ‘호기심’을 길러주는 쪽으로 방향을 맞추고 있다고 한다. 물론 과학에서 호기심은 대단히 중요하다. 호기심은 학생들이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 동기가 될 수도 있다. 학생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내용을 가르치는 일은 정말 어렵다. 그래서 학생들이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호기심을 동원하는 것이 절대 나쁘다고 할 수가 없다.

특히 지금까지 우리의 과학교육은 많은 비판을 받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학생들의 관심은 제쳐두고 맹목적으로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내용을 지극히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가르쳐왔던 것이 사실이다. 학생들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과학을 외면해버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오늘날 고등학생의 65퍼센트 이상이 최소한의 과학교육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늘날 우리의 과학교육이 획기적으로 혁신되어야 하는 대상임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그런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과학의 ‘실용성’을 강조함으로써 과학교육을 혁신하겠다고 했다. 과학교육의 실패가 이론 중심의 교육에서 비롯되었다는 진단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론 중심의 학문적 교육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과학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학생들의 관심을 끌어보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실용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동안의 교육 내용도 30퍼센트 이상 줄여버렸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학생들에게 실용성을 그렇게 강조했지만, 우리 사회에서 일상생활과 관련된 엉터리 과학 상식은 오히려 더욱 빠른 속도로, 더욱 심각한 수준으로 확산되고 있다. ‘에너지’, ‘이온’, ‘물’, ‘알칼리’, ‘전기분해’ 등의 기본적인 과학 용어들이 엉뚱한 의미로 활용되어 우리의 소중한 건강을 해치고, 아까운 재산을 빼앗아가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과학교육에서 강조하고 있는 실용성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심각하게 반문하지 않을 수가 없는 형편이다.

이번에 과학기술기본계획에서 강조하고 있는 ‘호기심’도 역시 제7차 교육과정의 ‘실용성’처럼 공허한 구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선 호기심을 강조한 과학교육의 효과에 대한 심각한 고려가 필요하다. 호기심은 과학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특성인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학생이 호기심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다. 모든 학생이 과학자가 될 필요도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결국 호기심을 강조하는 과학교육은 과학자가 되고 싶은 학생들만을 위한 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


과학은 현대 사회의 필수상식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과학교육의 목표는 ‘모든 학생을 위한 과학’(Science for All)이 되어야만 한다. 자연에 대해 특별히 호기심을 느끼지도 않고, 과학 지식의 실용성에도 관심이 없는 절대 다수의 학생들도 최소한의 과학 상식을 갖출 수 있도록 배려하는 과학교육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학생들에게 현대 사회에서 과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인식시켜 주어야 한다.

학생들이 과학을 싫어하고 외면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밝혀내야 한다. 과학 지식은 배우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다른 과목과는 달리 과학에서 가르치는 내용 중에 어느 것도 저절로 알게 된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가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과학자의 끈질긴 노력과 사회의 엄청난 투자를 통해 밝혀진 우리 인간이 확보한 가장 높은 수준의 지식이 바로 과학이다. 그런 과학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고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학생들에게 그렇게 어렵고 재미없는 과학을 배워야 하는 동기를 분명하게 알려주고 이해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과학자로 성장할 학생들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과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과 재능이 없는 학생들이 동감할 수 있는 동기를 찾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사회적 합의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 사회가 먼저 미래 세대에게 과학을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는 합의를 해야 하고, 굳은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과학이 ‘쉽고 재미있다’는 환상은 버리도록 해주어야 한다. 교육은 ‘쉽고 재미있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재미없지만 꼭 필요한 것’을 가르치는 것임을 분명히 해주어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동대학 과학커뮤니케이션 협동과정 주임교수이기도 하다. 이덕환 교수는 2002년 한국과학저술인협회 저술상을 수상했으며, 2004년 제5회 대한민국 과학문화상을 수상했고, 2006 국제화학올림피아드 실무조정위원장을 맡는 등 과학대중화를 위한 과학문화 확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이덕환 교수는 제10기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으로 위촉돼 활동하고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duckhwan@sogang.ac.kr


2007.08.06 ⓒScience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