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업씨의 경우

                                                                                                    [류근일 칼럼]  2007. 4. 16

호남서 터진 출마반대는 ‘脫 DJ’ 고무적인 현상
명예로운 晩年을 위해 良識의 소리 귀 기울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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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근일 · 언론인

• 전(前) 대통령 김대중씨가 자신의 맏아들 김홍일씨에 이어 둘째 아들 김홍업씨를 또다시 국회의원 후보로 내세운 사태를 둘러싸고 세인(世人)은 부정적인 현상뿐 아니라 고무적인 현상도 목격하고 있다. 호남 지역에서 DJ를 향해 드디어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항의의 목소리가 터진 게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민주화 운동의 거점이 되었던 호남의 양식(良識)이 이제는 DJ의 끝없는 아집(我執)과 양립할 수 없다는 인식을 드러낸 ‘역사적’인 사건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김대중씨는 지난날 많은 풍상을 겪었던 것이 사실이고, 그 점에서 그는 그만한 보상을 받을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믿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아들들 또한 아버지로 인한 고초를 보상받고 싶을 것이고 또 아버지의 후광이 아니더라도 한몫은 할 평균적 인물들일 수 있다.
  
  그러나 무안지역 농민회, 광주 YMCA 등 62개 시민단체, 호남의 저명한 지식인들, 그리고 무안, 신안 민주당원 1000여 명이 그런 일반적인 이치를 몰라서 반대로 돌아선 것은 아닐 것이다. 호남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DJ 일가의 어려웠던 시절을 세세히 잘 알고 있으며, 어느 면에서는 그들과 고락을 함께 해 온 동지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김대중 선생, 이번만은 너무했습니다” 하고 이의(異議)를 제기했다면, 거기엔 반드시 그만한 이유와 까닭이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이유와 까닭은 한마디로 DJ가 호남을 자신의 사당(私黨)처럼 여기는 것을 더는 방치할 수 없어서, 그리고 호남도 이제 탈(脫)DJ를 해야 한다는 대의(大義) 때문이었을 것이다. 평생을 두고 지지해준 ‘민주투사’ 김대중씨가 둘째 아들 김홍업씨마저 그런 식으로 내세워 국회의원 만들려고 하다니, 이 안타까운 심정을 현지의 ‘지역자존 지키기 100인 선언’은 “우리가 바라던 위대한 정치인 DJ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는 말로 토로하고 있다. 자신들의 의도는 호남의 자존과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것이지 다른 데 있지 않음을 분명히 한 것이며, 자신들이야말로 DJ의 명예로운 만년(晩年)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지, 단순히 “당신 다 해먹느냐”는 반발심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김대중씨는 종종 자신이 고생할 때 그 아들들이 아버지 때문에 얼마나 큰 심신의 타격을 입었는지를 가슴 아프게 토로하곤 했다. 그리고 그는 그런 감성적인 호소로 주변의 ‘아들 단속’ 충언들을 그때 그때 물리치곤 했다. 그러나 설령 그렇더라도 왕년의 모든 고생을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았을 법한 오늘의 시점에서 또 그 둘째 아들에 대해서까지 “지난날 나 때문에 고생했으니…” 하는 식이라면, 호남의 양식 아니라 그 누구라도 그 끈질긴 집념에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식 앞에서 약해지는 아버지의 심정은 남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김홍업씨 스스로 80 고령 아버지의 부담을 덜어 드리기 위해서라도 솔선 자제하고 자중하는 처신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 김홍업씨는 물론 “아버지 부시에 이어 아들 부시도 대통령 했는데 무얼…” 하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들 부시의 정계진출에 대해 텍사스 농민회, 텍사스 YMCA, 텍사스 지식인들, 텍사스 공화당원들이 “너무 한다”며 들고 일어났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유명한 정치인들의 자손들이 대를 이어 정계에 진출한 사례는 물론 미국 영국 일본 등 외국에서도 많이 있었던 일이다. 문제는 그들이 나섰을 때 “저건 지나쳤다”고 상당수 홈 그라운드의 평생 지기(知己)들마저 고개를 돌렸느냐 아니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느냐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의 중요한 판정기준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김홍업씨의 경우는 그 전자(前者)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런데도 DJ 일가가 저토록 질기게 나가는 데는 무슨 착각이 있거나 그만한 ‘믿음의 근거’가 있을 것이다. 많은 국민은 그 결과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