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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패는 이처럼 왕명을 받들어 업무수행 중임을 입증하는 신분 확인용으로서의 용도뿐만 아니라 관청 창고를 봉할 때나 서류에 찍는 직인 역할까지 했다. 둥근 모양의 마패에는 말이 그려져 있는데, 그 숫자만큼 역참에서 역마를 지급받을 수 있다. 암행어사가 되면 마패 말고도 지급받는 물품이 또 있다. 맨 먼저 임금으로부터 직접 받는 봉서(封書)가 그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임명장과 같은 봉서의 겉면에는 ‘到南大門外開坼’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즉, 남대문 밖에 이르면 뜯어보라는 의미다. 그 속에는 암행 감찰을 해야 할 지역과 임무의 내용이 들어 있다. 때문에 암행어사가 향하는 지역에 따라서 봉서를 뜯어볼 수 있는 곳이 동대문 밖이나 서대문 밖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임무와 암행 지역에 사전에 누설되는 것을 철저히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봉서를 받은 암행어사는 그날 바로 출발하는 것이 원칙인데, 그 전에 승정원으로 가 승지로부터 마패를 받는다. 그때 함께 받는 것이 사목(事目) 한 권과 유척(鍮尺) 2개였다. 사목이란 암행어사의 직무를 규정한 책이고, 유척은 놋쇠로 만든 자였다. 암행어사는 왜 이런 자를 2개씩이나 지급받았던 걸까. 조선시대 도량형은 세종 때 정비되었지만, 임진왜란 등 전란을 겪으면서 문란해졌다. 그 후에도 여러 번 정비했으나 전국적으로 실시되지는 못했다. 또 탐욕스런 지방 관리들의 경우 백성들에게 엉터리 도량기구로 세금을 많이 거둬들여, 나라에 바칠 때는 정량만 바치고 나머지는 자신들이 착복하는 일도 있었다. 죄인을 신문할 때 쓰는 형구도 문제였다. 국가에서 정한 규격 대신 더 크고 무거운 형구를 사용하여 가혹한 형벌을 내리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암행어사는 두 개의 유척을 가지고 다니며 하나는 형구의 크기를 통일하여 형벌을 남용하는 것을 막는 데 썼고, 다른 하나로는 도량형을 통일하여 세금 징수를 고르게 하는 데 사용했다. 현재 세계적인 표준으로 쓰이고 있는 미터법도 혼란스런 민심을 달래기 위해 등장했다. 1789년 부패한 귀족과 왕의 정치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프랑스대혁명 이후 혁명 정부는 우선 도량형부터 통일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권력이 바뀌고 시대가 변해도 영원히 변치 않는 도량형을 만들어야 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1791년 프랑스의 대학자들이 모여 회의를 한 결과, 영원히 변치 않는 도량형의 기준이 정해졌다. 그것은 지구의 북극에서 남극까지의 거리를 2천만분의 1로 나눈 것이었다. 그 길이가 바로 지금의 1m이다. 그런데 그 후 문제가 발생했다. 과학이 발달해 남극에서 북극까지의 길이를 다시 정밀하게 잰 결과 기존의 2천만m보다 약 1천700m 가량 긴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구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크기가 조금씩 바뀐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또 1889년 제1회 국제도량형총회에서 백금과 이리듐의 합금으로 공들여 만든 미터원기도 초고온이나 초저온에서는 변형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 영원히 변치 않는 기준을 정하는 것이 꽤 어렵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1983년 제17차 국제도량형총회에서 빛이 진공 중에서 2억9979만2458분의 1초 동안 진행한 거리를 1m로 삼기로 했다. 기존의 1m 길이대로 맞추다보니 이런 복잡한 수치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럼 이처럼 복잡하고 번거로운 미터법 대신 암행어사가 사용한 유척처럼 우리 고유의 도량형을 지키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1897년 조선의 국호가 대한제국으로 바뀌고 난 뒤 근대적인 도량형을 도입하기 위해 평식원이라는 담담관청이 설립되었다. 또 고종은 1905년 '척'을 길이와 부피의 기본으로, '냥'을 무게의 기본으로 삼고 서양식 도량형제인 미터법을 병용한 미돌법(米突法)을 공포했다. 미돌법이란 미터법을 한자로 옮겨 적은 용어다. 당시 1척을 30.303㎝라고 못 박았는데, 이것은 바로 일본 곡척(曲尺)의 기준이었다. 그 후 1909년에는 일본식 단위인 ‘돈’과 ‘관’이 도입되었다. 즉, 우리가 여태껏 사용해온 평이나 돈 같은 단위는 사실 일본의 도량형 단위였을 뿐이다. 이번 기회에 미터법 도량형제가 올바르게 뿌리내렸으면 하고 바라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지 않을까. | ||
/이성규 편집위원 yess01@hanmail.net | ||
2007.07.05 ⓒScience 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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