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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사례18페덱스 프리데릭 스미스,국산 선박엔진 힘센엔진,유한양행 연만희,CRM 세일즈포스닷컴
[페덱스(FedEx Corp.)]의 창시자 프리데릭 스미스(Frederick W. Smith)
프리데릭 스미스(Frederick W. Smith)는 수송에 관해서는 뼈대 있는 집안 출신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증기선의 선장이었고, 아버지는 맨손으로 남부 지역의 버스 노선을 개척했는데, 현재 그 노선은 그레이하운드(Greyhound Bus) 버스 시스템의 핵심이 되었다.
스미스는 10대에 이미 비행 조종 기술을 배웠는데 1960년대 예일 대학교 학생으로 공부하면서 주말 특별비행기 조종사로 근무하며 돈을 벌었다.
승객들과 화물들을 실어 나르면서 스미스는 배송산업에 일대 혁명을 가져 올 가능성을 간파하였다.
그는 IBM같은 기업들의 물건들을 날아다 주면서 이런 대형기업들이 컴퓨터 중요 부품들을 고객에게 제 시간에 가져다 주지 못해 안달한다는 사실과, 일반 민간항공사들이 자사 제품을 고객에게 제시간까지 날아다 주지 못한다는 것에 분통해하는 모습을 보았다.
경제학을 전공한 스미시는 1965년 졸업 논문으로 특급배달 서비스(express delivery service)라는 아이디어에 대해 썼다.
이 논문은 이미 배송업계에서는 전설이 되어 버렸다.
항간에는 이 논문은 “C”학점을 받았다고 하지만 스미스는 “학점은 문제가 아니고 그 논문은 정말 심오한 내용이었다”라고 주장한다.
스미스는 해병대원으로 베트남전에 참전 후 60년대 후반에 돌아와 그의 꿈을 쫓기 시작했다. 그는 그의 생각에 더 많은 동조를 하는 사람들은 교수들보다 투자가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4백만 달러의 유산과 투자가들로부터 8천만 달러를 모아 1971년 [페더럴 엑스프레스(Federal Express Corp.)]를 세웠다.
이 회사는 스미스가 네트워크를 구축한 11개 도시 중 두 도시간에는 어떤 물건이라도,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룻밤 사이에 배송하겠다는 약속을 표방하였다.
독특했지만 결코 하룻밤 사이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1973년 3월 12일 멤피스(Memphis)에서 서비스를 시작할 준비를 하였을 때 첫날 밤 부탁받은 배송 소포는 단지 7개였다.
그는 그의 세일즈맨들을 다시 현장에 급파했고 자사의 네트워크망을 25개 도시로 확대했다. 이런 땀과 노력을 기울인지 한 달 만에 주문소포는 186개가 되었다.
빈약한 초기의 운송용량만이 유일한 문제는 아니었다.
1970년대 후반까지 미국 연방 우체국의 독점으로 FedEx에게는 서류배송이 금지되었었다. 번거로운 항공규제 때문에 FedEx는 소형 팰콘(Falcon)비행기만 운항시켜야 했다.
1973년 어느 땐가 스미스는 현금사정이 너무 절박해, 라스베가스로 가서 딴 돈 27,000달러를 회사통장으로 송금해야만 했다.
스미스의 집요함은 결국 대가를 얻게 된다.
1970년대 후반쯤 미국은 소포가 기업제품이든, 서류든, 급한 생일 선물이든 물건을 하룻밤 사이에 옮겨 줄 능력을 가진 FedEx에 점점 더 많은 의존을 하게 된다.
[메릴 린치(Merrill Lynch & Co.)]사 이사들은 심지어 층간으로 서류를 보낼 때도 Fedex를 이용하면 본사내의 수발체계보다 더 안전하고 빨리 옮겨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요새 Fedex는 “정시의 배송혁명(just-in-time delivery revolution)”의 구심점이 되었고, 회사의 비행기와 트럭은 이동 창고로서 역할하며 전세계 기업들에게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극대화하도록 기여하고 있다.
그러한 배송과 보급 시스템이 FedEx 연간 매출 2백 6십억 달러의 92%를 차지한다.
비록 FedEx는 여러 경쟁사를 낳았지만 여전히 항공배송시장의 점유율 44%의 막강한 제국이다.
645대의 비행기로 구성된 비행단과 71,000대의 트럭들은 매일 평균 5백 5십 만 건의 배달을 수행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한 대학생이 다른 이들이 보지 못했던 시장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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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설계로 국산 선박엔진을 만들어라 - 힘센엔진 프로젝트
▶국내 최초의 독자모델 힘센엔진의 탄생
한국은 세계엔진제작 2위. 그 중에서 현대중공업은 단일회사로는 전세계엔진제작1위 기업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기술선진국의 기술제휴하에 엔진을 만드는 엔진 라이센시 국가로 허울만 좋았던 조선강국 이었다.
더 이상 남의 디자인만으로 엔진을 생산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순수 우리 독자모델엔진을 개발하기 위해 엔진개발프로젝트팀이 본격 가동되었다.
최고출력, 최저연비를 내는 세계 최고의 엔진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는 10년간 계속됐다.
그리고 2000년 2월. 드디어 우리가 만든 독자모델엔진이 전세계에 테스트를 받는 날.
한국 최초의 독자모델 선박엔진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엔진 라이센시 국가라는 설움에서 벗어나 우리나라도 선박엔진모델 보유국가로 새롭게 탄생하게 된 것이다.
▶선박용 엔진을 우리 손으로 만든다!
76년 7월 엔진사업부가 발족됐다. 100%수입에 의존해오던 선박엔진을 자체적으로 생산하자는 취지로 엔진사업부가 만들어진 것이다. 엔진 사업부는 외국에서 도면을 사와 자체엔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속에서 자체엔진을 생산해낸다는 것은 불가능 했다.
우여곡절 끝에 78년 11월 엔진공장을 만들었다.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최신의 설비였다.
국내최초 제작일 뿐 아니라, 국내 부품업체 또한 개발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시행착오를 거치고 국산엔진개발은 계속됐다. 수많은 실패, 그러나 모든 걸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1979년 8월, 드디어 설계사와 기술제휴하에 제작설계도면을 가져와 우리가 제작한 엔진 1호기가 완성됐다. 무사히 시운전을 마치고 나니 수주주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엄청난 물량수주 이후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술제휴사에서 설계도를 만들어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기술제휴사가 자신들이 직접 엔진을 제작할 욕심을 부린 것이다.
▶독자 모델 엔진을 개발하라! 힘센 엔진 개발동기와 개발과정
외국기업으로부터 설계도면을 가지고 와서 기술료를 주고 엔진을 생산만 한다는 것은 엔지니어들의 자존심 문제였다. 독자 모델의 엔진을 개발하려면 10년이상의 시일과 많은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회사측의 반응은 냉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여곡절끝에 새로운 엔진 개발팀을 구성하기에 이른다.
개발의 첫 단계인 설계 초기부터 어떤 제품을 개발해야할지 몰랐던 개발팀. 외국도면을 파악하고 직접 실험용 엔진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1년에 거쳐 실험용 1기통엔진이 완성됐다. 이로써 본격적으로 개발의 박차를 가하게 되고 1년후 2차팀이 합류하게 된다. 엔진전문가 5명이 힘센개발팀에 합류해서 총 12명의 팀원으로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잦은 의견충돌로 1차팀과 2차팀간의 갈등, 해외엔진사들의 은근한 압력행사등 열악한 환경속에서 개발팀은 묵묵히 엔진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97년 12월 25일 드디어 1기통 엔진출력을 170마력에서 270마력으로 증강시켰다. 독자적인 하이테크의 성공이었다.
▶디자인의 혁명,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하이터치
새로운 디자인 컨셉을 고민하던 김주태 팀장은 당시 베스트 셀러였던 이면우 교수의 <W이론...>이라는 책에서 하이터치 개념을 발견한다.
개발팀은 고객, 즉 사용하는 사람을 위한 최고의 제품을 위한 하이터치 설계개념정립에 착수했다.
하이터치개념을 살린 엔진설계는 인체공학적이고 편리하다.
기존의 중형디젤엔진들은 매우 복잡한 구조다. 그러나 힘센 엔진은 이 모든 걸 단순화 시켰다. 타경쟁사와 비교했을 때, 출력은 높고 연비는 적다. 세계 유수의 동급 엔진과 비교해 더 우수했다. 그러나 엔진이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러 시운전 날짜를 받아놓고 엔진부품인 캠샤프트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새로 제작하려면 40일이 걸리는 일이었다. 개발팀은 90%의 실패율을 무릅쓰고 이미 열처리된 캠을 재가공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캠 고주파 열처리를 풀고 금이 없음을 확인, 성공한다.
이어진 공식인증과 공개 성능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하고 2002년 7월 힘센 엔진은 전세계에 정식 출시 된다. 드디어 엔진기계사업본부는 지난 25년간의 엔진제작기술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8년 동안 400억원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하여 국내 최초의 독자모델 엔진을 완성한 것이다.
▶ 세계속 우리 엔진 <힘센>
2001년 3월 함부르크에서 열린 씨막에서 힘센엔진개발 사실을 최초로 전 세계에 공표했다.
기존엔진의 설게도면의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던 독일 아우그스부르크에 있는 Man B&W사.
Man B&W사의 엔지니어들도 놀라워 하며 기술을 인정했다.
힘센엔진의 하이터치 개념을 도입한 디자인은 세계적인 엔진잡지등에 실리며 그 독자적인 엔진기술을 인정받게 됐다.
힘센엔진의 개발 성공은 엔진개발을 경험한 연구자조차 제대로 없는 빈약한 기반위에서 세계 기술수준에 크게 못 미치는 국내엔진설계 기술실력의 한계를 딛고 이룩된 것이었기에 매우 큰 기술사적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이제 힘센엔진의 개발 성공으로 연간 100억 원의 기술절감을 이루게 될 것이다. 선박엔진 국내 독자 모델 10년, 맨 땅에서 시작해 좌절과 고난 속을 묵묵히 달려온 개발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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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양행 이사장 연만희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을 기업의 모토로 내세운 (주)유한양행. 한국은 물론 세계에서도 예외적인 형태의 이 회사를 이끄는 사람은 연 만희 유한재단 이사장이다. 故유일한 박사 밑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현재 유한을 끌며 창업자의 기업이념을 실천, 전수하고 있다. 유한양행에 평사원으로 입사한지 9년 만에 상무이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올해로 벌써 30년째 유한양행 경영의 구심점 역할을 해오고 있다. 기업이익을 다시 사회에 되돌리는 공익사업을 모범적으로 실천하면서도 전문경영인으로 기업의 이익창출을 최대화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미래의 경영자상을 보여주는 연 만희 이사장. 그의 오늘의 모습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성공 비결 1 : 인생의 스승을 만나다.
유한에 입사한 연 만희는 유한의 주식공개에 큰 공을 세우고 입사한 지 2년도 안돼서 총무과장에 임명된다. 총무과장으로 일하면서 유일한의 신임을 받게 된 연 만희는 승승장구 승진을 거듭한다. 그러나 유일한의 아들을 비롯한 미국 유학파가 회사에 오면서 영어를 못하는 연 만희는 상대적으로 고립감을 느낀다. 친구의 권유로 다른 회사로 옮기려고까지 했지만 유한에 남아 유일한 회장의 죽음까지 함께 지킨다.
성공 비결 2 : 할말은 한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에게 정직을 최고의 덕목으로 교육받고 자란 연만희는 군대에 가서도 튀는 존재가 된다. 6.25 당시 명령체계가 혼란해진 군대에서 군수품을 빼먹는 등의 비리를 보아 넘기지 못해 연판장을 돌리다 영창까지 가기도 하는데.
성공 비결 3 : 소신대로 실천한다.
유 일한이 죽은 뒤 유언집행위원에 임명된 연 만희. 유한재단 이사장직을 계승한 유일한의 딸 유 재라와 뜻이 맞지 않아 방계회사인 스미스클라인 사장으로 간다. 좌천인사였지만 거기서 최선을 다한 연 만희는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87년 위기에 처한 유한양행에 다시 돌아와 회사를 정상화시킨다. 전문경영인도 긴 안목으로 봐야 된다는 생각에 거의 한국 최초로 직급정년제를 도입하는 등 선진경영으로 미래의 유한을 위한 경영에 성공하고 현재 재단이사장으로 사회사업에 열중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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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M 전문 세일즈포스닷컴 연평균 67% 성장
구글 무료SW 배포에 '공룡MS' 위기감 표출
많지않은 기업비중ㆍ통합성ㆍ안정성 해결 과제
지난해 1월 구글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06` 전시회에서 안티바이러스, PDF, 데스크톱 검색엔진 등 각종 개인용 SW를 무료로 내려 받아 PC에 설치할 수 있는 구글팩을 발표해 충격을 줬다. 또 지난해 10월 선보인 문서와 스프레드시트 패키지로 사무용패키지 SW업체들을 잔뜩 긴장시키기도 했다. 구글이 인수합병을 통해 패키지 SW업체를 하나둘씩 사들이고 이를 고객에게 무상으로 제공하자 패키지SW 공룡인 마이크로소프트는 심각한 위기감을 표하고 있다.
구글의 의도는 과거 PC에 설치된 윈도 등 운영체제가 제공하던 플랫폼을 웹으로 전환하는데 있다. MS가 OS 플랫폼기반 SW업체라면 구글은 웹을 기반으로하는 SW사업자가 된 것이다. MS역시 라이브전략을 통해 구글의 공세에 대항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이는 웹의 플랫폼화가 지닌 위력의 단면에 불과하다.
◇ 웹의 플랫폼화=소프트웨어진흥원 산하 SW정책연구센터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가트너 등 시장조사기관들이 예상한 것처럼 웹의 플랫폼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가 SW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을 지는 아직 분명치 않지만 기존 SW산업에 엄청난 파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특히 윈도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윈도OS 중심으로 구성하는 사실상 시장표준이었다면 웹의 플랫폼화는 서비스의 새로운 유통공간의 의미를 띄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SW산업계는 이미 이러한 변화에 영향권에 놓였다. 웹기반 CRM업체인 세일즈포스닷컴은 미국 온디맨드 CRM시장의 절반을 확보했으며 1억7000만 달러의 매출(2005년기준)을 올렸다. 또 연평균 67%의 매출 신장세와 76%에 달하는 고객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대기업 시장이 포화하면서 IBM이나 오라클 등 전통적인 기업용 SW사업자들도 SaaS 솔루션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오라클이 이미 e비즈니스 스위트의 SaaS 버전을 출시했고 DB나 미들웨어, 기업 메시징 솔루션 등 협업시스템과 JD에드워드 애플리케이션을 같은 방식으로 선보이고 있다. 인수사인 피플소프트 제품의 온드맨드 버전도 출시를 앞두고 있다. IBM역시 SW업체들과 협력해 공동의 SaaS 기반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 개인용과 기업용 SW시장에 미칠 파장=일단 개인용 SW시장에서는 MS와 구글의 경쟁결과에 관심이 모아진다. 데스크톱 기반 애플리케이션과 운영체제를 바탕으로 한 MS와 검색과 광고료기반 무료 SW를 앞세운 구글의 경쟁은 결국 새로운 SW모델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실제 MS는 라이브전략의 관점에서 윈도비스타와 오피스2007을 출시해 소프트웨어와 온라인을 점진적으로 통합할 계획이며, 구글 역시 다양한 웹기반 사무용SW를 확충하고 있다. 미국 IT온라인 잡지인 씨넷의 설문에 따르면, 서비스품질에 따라 유동적이지만 MS 엑셀 사용자의 30% 이상이 구글 스프레드시트로 옮겨갈 수 있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세일즈포스닷컴으로 대표되는 온디맨드형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시장의 변화역시 관심사다. 온라인 서비스의 약점이던 커스터마이징을 보완하는 `에이팩스' 기술이나 다양한 개발자와 군소업체들이 개발한 SW를 교환하는 마켓플레이스인 `앱익스체인지'는 SaaS모델의 새 접근법을 제시했다는 평이다. 하지만 MS, 오라클, SAP 등 기존 기업용애플리케이션 업체들도 이를 좌시하지 않고 있다. 물론 대기업용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익숙하던 이들이 SaaS의 주 고객층인 중소기업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공략할지는 의문이다. 이미 세일즈포스닷컴을 위시한 전문 SaaS업체들이 이들의 특성을 간파한 서비스를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일즈포스닷컴 역시 대기업의 채택률이 제한적이라는 한계에 봉착해있다. 또 아직은 부족한 통합성이나 기업IT시스템에서 CRM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크지 않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대기업이 요구하는 안정성이나 보안 문제 역시 SaaS가 풀어야할 숙제다.
◇ 새로운 SW패러다임으로 이어지나=시장의 판세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지만 일단 웹의 플랫폼화와 이에 따른 SaaS 모델은 새로운 SW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와 관련, SW정책연구센터측은 세일즈포스닷컴의 앱익스체인지와 에이팩스 등 새로운 SaaS 모델은 전통적인 개발자와 사용자의 역할, SW의 모습을 바꿀 수 있으며 특정 개발자에 만들어진 고정된 SW가 아니라 인터랙티브하고 필요에 따라 쉽게 커스터마이즈 될 수 있는 유연한 SW모습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결국 수많은 상호작용에 의해 스스로 진화하는 새 SW의 가능성이 제시된다는 것이다.
전통적 SW 유통방식 역시 PC에 번들되거나 단독 패키지구매, 기업의 라이선스 구매, 또는 불법복제로 유통되던 방식에서 웹서비스 허브를 통해 확산전파되는 모델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앱익스체인지처럼 새로운 SW마켓플레이스는 사용자가 직접 참여하는 웹2.0의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나아가 SW수익모델 역시 광고나 가입자 기반으로 빠르게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 IDC는 2008년 모든 라이선스 수익의 34%가 가입자 기반에서 나오고 2010년에는 73%의 SW벤더와 70% 고객이 가입형태의 온디맨드 SW를 사용할 것으로 예측했다. 결국 웹이 SW플랫폼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많은 사업자들을 위기에 빠뜨릴 수있지만 기존 소수사업자들의 독점된 산업구도가 무너지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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