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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료/교회장로

부활절 달걀의 유래 성경이야기

                                                                                <뉴스클리핑 2007. 04.09 >  [유래1]
2007/04/05 10:17
http://blog.naver.com/baga76/50016054974


부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축제 이며 그리스어로는 파스카(Pascha), 프랑스어로는 파크(Paque), 영어로는 이스터(Easter), 독일어는 오스테른(Ostern) 이라고 부른다.

 

교회력 가운데 가장 오래된 축일이며 유대교의 유월절(逾越節, 혹은 과월절過越節) 축제가 기독교 시대를 맞아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축제가 됐다.

 

‘유월’은 ‘지나간다’는 뜻.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기 전날 밤, 이집트인 가정의 장남들이 죽음을 당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리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놓아 화를 면했다는 데서 유래됐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매달리시기 전날 밤, 예루살렘 성내에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켰고, 이것이 ‘최후의 만찬’이 됐다.

초기에는 부활절의 시기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지만,

서기 325년 니케아 공의회 이후 매년 춘분(春分) 이후 첫 번째 보름달(만월)을 넘긴 일요일로 정해졌다.

 

 따라서 양력으로는 매년 날짜가 바뀐다.

2007년은 4월 8일, 2008년은 3월 23일, 2009년은 4월 12일이 부활절이 된다.

 

그러면 부활절 계란을 주고 받는 풍습은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된 것일까?

부활절 이전, 즉 이스터 축제일의 상징은 계란이 아니라 토끼였다.

이스터 여신의 상징이 토끼였기 때문이다.

 

이 부활절 토끼 풍습은 독일인들이 미국에 이민을 가면서 함께 들여갔다.

그러나 18세기 당시 미국의 기독교는 청교도를 위시해서 엄격한 기독교가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에 부활절 토끼는 전혀 발붙일 수 없었다.

 

부활절 역시 미국에서 자리잡게 된 것은 남북전쟁 이후였다.

부활절을 축하하기 위해서 계란을 사용하게 된 것은 "모든 생명은 알에서부터 나온다."라는 로마의 속담은 차치하더라도 어느 정도 기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까지 갈 때 잠시 십자가를 대신 져준 구레네 시몬의 작업이 계란장수였다고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뒤에 그가 집으로 돌아가 보니 암탉들이 낳은 계란이 모두 무지개 빛으로 변해 있었다.

 

이후로 교회에서는 자연스럽게 계란을 부활의 상징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부활절의 기원이 이렇게 순수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출처 :한국기독교정보학회  |  글쓴이 : 필레오 원글보기 
 
우리 기독교의 많은 신학자들과 목사들이 크게 착각을 하고 있는 부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부활절입니다.

오늘날이 부활절이 니케아 종교회의 때 만들어 졌다고 의심없이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부활절은 서기 1582년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율리우스력을 태양력(그레고리우스력, 양력)을 개력하면서 바벨론의 창녀였던 이쉬타 또는 이스터의 축제일을 정하기 위한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물론 그 이전 율리우스(시저)가 만든 율리우스력(B.C. 46년)을 만들면서 로마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매년 3월 25일이 춘분이 되도록 달력 개력을 했는데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습니다.

심지어 주전 46년의 1년이 무려 445일 되어 버렸습니다.


   그후 율리우스력은 다시 로마의 달력을 개력하여 주전(B.C.) 45년 1월 1일에 정식으로 시행했습니다.

 

그러나 율리우스력은 여전히 변동이 많았습니다.

로마의 황제들이 자신의 날이라고 한 달을 달력을 추가하기도 하고,

심지어 몇 일을 달력에서 임의로 빼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영향으로 오늘날의 양력(달력?)을 보면 로마 황제들의 이름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율리우스력은 이처럼 혼란을 거듭 하다가 겨우 서기 4년에 가서 일정한 규칙성을 뛰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율리우스력에 따라 니케아 종교회의에서는 부활절을 정했습니다.


   그러나 니케아(325년) 종교회의에서 예수님의 부활절을 정한 것이 아니라 당시 로마인들이 전통적으로 지켜오던 이쉬타 또는 이스터의 축제일을 춘분 후 보름달이 뜨고 나서 첫번째 돌아오는 날에 지키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콘스탄틴 황제는 예수님을 전혀 믿지 않는 사람으로, 죽을 때까지 태양신을 숭배했었습니다.

 

그는 자기식의 기독교를 설정하여 놓고, 정통적인 기독교인들도 많이 죽였습니다.


   심지어 니케아 종교회의를 얼마 남겨 두고, 자신의 큰 아들과 둘째 아내와 여동생의 남편도 살려준다고 해 놓고 죽였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부활절과 주일도 니케아 종교회의 때 결정을 했다고 믿는 신학자들이 많은데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니케아회의에서 정한 부활절과 주일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을 정한 것이 아니라 로마인들이 전통적으로 로마인들이 춘분이 돌아오고, 보름달이 뜨고 난 후 첫 번째 돌아오는 날에 지켜 온 바벨론 여신(창녀)인 이쉬타 또는 이스터 축제일을 정한 것입니다.

 

주일도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을 정한 것이 아니라 태양신의 날이었던 일요일을 정했다고 고대 문헌에 분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로마의 시저(율리우스)가 개력한 율리우스력은, 러시아에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율리우스력은 1582년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가 다시 개력을 한 것입니다.

 
   참고로 우리가 사용하는 음력은 고려시대와 조선조 초기에 많은 이슬람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살면서 사용했던 회교력(회회력)을, 조선왕조의 세종대왕께서 1432년 왕명을 내려(세종 14년) 회교도인들이 사용했던 달력을 우리 실정에 맞게 약간 개력하여 사용했던 것이 오늘날의 음력입니다.


   그래서 달의 길이가 유대인의 종교력하고 같은 것입니다.

이 달력을 칠정산외편이라고 합니다(세종실록 권 159-163). 백과사전이나 인터넷 검색에서 칠정산외편을 찾아 보세요.

성경과 달력개념, 그리고 천문학적인 상식과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를 못하고 부활절을 지키는 것을 아이러니 한 일입니다.

오늘날의 부활절은 분명히 이교도의 축제일이 맞습니다.


   성경의 사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유대 종교력 니산월(1월) 14일 유월절 예비일에 십자가상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니산월 15일(유월절 대안식일)에 무덤에 계셨으며, 니산월 16일(초실절, 부활의 상징)에 부활을 하셨습니다.

유대력의 니산월(1월, 정월달)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양력(그레고리우스력, 태양력)으로 3월말에서 4월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에 사용했던 유대 종교력 니산월 14일이 과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태양력(양력, 그레고리우스력)으로 언제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독교 2천년 동안 수 많은 신학자들이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것은 교회사가 증명합니다.


  그러나 제가 수년전에 성경기록, 고대사 기록, 천문학, 고대 달력, 계산 프로그램 등 다양한 학문과 장비들을 동원하여 연구한 끝에 현재부터 예수님 시대까지 정확하게 계산을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태양력은 3천년까지 하루의 오차 범위를 허용하지 않고 계산이 가능합니다. 신학자들은 아직 이 부분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저는 3천년까지를 계산하여 정확하게  세계 최로 2천년 최초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정확하게 산출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전 4년 3월말과 4월 초 사이에 태어나시고, 서기 33년 4월 1일 금요일(니산월 14일 유월절 예비일)에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의 시간까지 정확하게 맞추셨습니다.


오전 9시 유대인들이 상번제를 드리는 시간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오후 3시, 두 번째 상번제를 드릴 때 숨을 거두셨으며, 구약 성경과 유대인들의 제사 의식처럼 유월절 예비일, 양을 잡던 날에 정확하게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받으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 안치했던 날이 유월절 대 안식(“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요 19:31)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더욱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매주 돌아오는 통상적인 안식일(토요일)과 유월절 대 안식일이 서기 33년 4월 2일(토요일)에 서로 겹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안식일은 예수님의 상징입니다. 유대인들의 하루 시작은 오후 6시부터입니다. 우리는 밤 12가 넘어야 하루의 시작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하루가 이틀이 걸려 있는 셈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면, 예수님은 서기 33년 4월 1일 금요일 즉 유대 종교력 니산월(1월) 예비일에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유월절 대 안식일이 시작이 되려는 오후 3~6 사이에 급하게 장례식을 치루고, 4월 2일 토요일 안식일과 니산월 15일 유월절 대 안식일 무덤에 안치가 되셨으며, 4월 3일 일요일(니산월 16일, 초실절) 새벽에 부활을 하셨습니다.


이 날로부터 40일 동안(7주가 지나고, 행 1:3 40일)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다가 서기 33년 5월 12일 목요일(유대 종교력 이랴르 25일)에 감람산에서 부활을 하셨으며, 이 날로부터 10일이 지난 후 서기 33년 5월 22일 일요일(시반월 6일)에 성령 하나님께서 마가의 다락방에 강림을 하십니다.
여기에서 계시한 연대와 날들은 성경과 기록과 고대사 기록, 천문학, 컴퓨터 프로그램, 계산 프로그램 등 다양한 학문을 적용해 계산하면 오늘날의 날짜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현재 전 세계 과학자들은 우리가 사용하는 태양력을 3천년까지 하루의 오차 범위도 허락하지 않고 계산하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는 실제로 이런 달력을 개발하여 현재 사용 중에 있습니다.


 저는 이 연구를 약 17년 전에 했었습니다. 그것을 책으로는 2001년에 출판을 했었습니다. 3천년을 대략 12권정도 되는 분량을 압축을 해서 꼭 필요한 부분한 책으로 출판을 한 것입니다. 이제는 부활절을 매월 4월 첫째 주에 지키면 될 것입니다.

 

[유래2]

기독교인이거나 아니거나 우리 친구들 이때쯤이면 교회에서나 직장에서 이쁜 부활절 계란을 하나씩은 받아 보았을 것이다 내가 알고잇는 부활전 계란의 유래는 이러하다 남부 전쟁 말기에 먼곳으로 전쟁터에나간 남편을 학수고대 기다리던 신앙심이 깊은 여인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돌아와도 자기의 남편은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수소문을 해보니 죽은것은 아닉로 부상당한것을 보앗다는 이야기를듣고 먼나면 그곳까지 남편을 찾아서 길을떠났다 전쟁후의 참상은 참담했고 사람들은 먹을것도 없었다 마침 부활절이 다가와서 집안에서 하던대로 계란을 구하여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거기에는 집안에서 적어 넣었던 성경구절을 써넣었다 어떤 꼬마에게 하나 나누어 준것을 가지고 집으로 가던 꼬마는 길옆에 부상당하고 먹지 못하여 걸음도 걷지 못하고 앉아있는 불쌍한 군인아저씨를 보고 먹고싶은 계란은 드렸다 아저씨는 계란을 보니 자기 집안에서 부활절이면 성경구절을 넣어서 이웃에 나누어준 그계란을 보고 깜짝놀랬다 아가~~이계란 워디서 얻었다냐? 아저씨예~~ 마을 저쪽에서 어떤 아지매가 주셨어요 아저씨 얼른 드시이소에~~ 그 아줌니가 어찌고 생겼드냐? 그 아지매는예~~~얼굴이 달덩이 같고예~~키도 크고예 약간 뚱뚱하고예 안경을 썼어예~~ 아주 이쁘고 마음좋게 생겼어예~~ 오메`~그라믄 영낙없는 내 마누라네~~~ 아가 나를 그 아줌니 있는 대로 데려다 주라이~~~ 꼬마는 아저씨를 부축하여 계란을 나누어주던 여인에게로 갔다 그여인은 꿈에 그리던 아름다운 자기의 아내였다 두사람은 부활절에 다시만나서 고향으로 돌아와서 치료하고 열심히 살면서 그일을 기념 할려고 부활절이면 계란을 더많이 나누어준것이 부활절 계란의 유래가 되었다 한다


[유래3]
http://blog.naver.com/02saram?Redirect=Log&logNo=40036304079
내용이 실한데 드래그가 되지 않아 링크 시켰습니다. ^^
[유래4 국민일보기사]


[부활절 계란풍습의 유래] 생명의 연속성 의미·예수 ‘다시 사심’ 상징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5&article_id=0000051325§ion_id=111&menu_id=111
예수님의 다시 사심을 기념하는 기독교 최대의 축제 부활절.교회에서는 알록달록하게 색칠한 예쁜 계란을 주고받으며 부활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그렇다면 이 부활절 계란을 주고받는 풍습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정확한 유래는 아직 밝혀지고 있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교회에서는 계란이 생명의 끊임없는 연속이라는 의미를 나타내준다는 데서 이러한 풍습이 생겨났다고 한다.즉 계란이 병아리로 바뀌고 이것이 성장해 닭이 되고 다시 계란을 낳는 일련의 생명과정을 곧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에 비유할 수 있다는 얘기다.또한 죽음의 세력을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바로 단단한 껍질을 깨고 태어나는 병아리에 비교할 수 있기에 이런 전통이 생겼다고도 한다.
한편 기독교가 공인되고 국교로 정착된 로마의 “모든 생명은 알에서부터 나온다”는 속담이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잠시 대신 져준 구레네 사람 시몬의 직업이 계란장수였다는 초대교회의 전설도 계란이 기독교와 이미 밀접한 관계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특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뒤 시몬이 집으로 돌아가보니 암탉들이 낳은 계란이 모두 무지개 빛으로 변해 있었고 이후로 교회에서는 자연스럽게 계란을 부활의 상징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수난절 기간 중 지키던 금식이나 채식을 끝내고 부활절 아침에는 그동안 먹지 않던 고기나 계란을 먹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으며,십자군 전쟁 당시 로잘린드라는 부인이 당시 유럽에서는 귀했던 닭을 잘 길러 부활절에 가난한 아이들에게 계란을 선물한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어쨌든 확실한 것은 계란을 나누는 부활절 풍습이 일찌감치 기독교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 최정욱기자 jw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