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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료/잡학사전

쌍춘년에 이은 황금돼지 소동

     쌍춘년에 이은 황금돼지 소동
                                                                                                   이덕환의 과학문화 확대경

                                                                                                   Science Times 2007. 1. 2

올해가 ‘600년 만에 돌아오는 황금돼지의 해’라고 야단들이다. 올해에 태어난 아이들은 거부(巨富)가 된다는 것이다. 언론과 기업들이 총동원이 되어 법석을 떨고 있다. 해운대와 울산의 간절곶 해안에는 거대한 황금돼지 조형물까지 설치했다고 한다. 작년에는 난데없이 ‘쌍춘년’(雙春年)이라고 떠들썩했었다. 그 덕분에 많은 젊은이들이 결혼식장으로 몰려들었다.

올해가 600년 만에 돌아오는 황금돼지의 해라는 주장은 정말 터무니 없는 것이다. 동양에서 사용하던 간지(干支)는 10개의 간(干;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과 12개의 지(支,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를 순서대로 묶어서 60개의 숫자를 표기하는 방법이다. 간지는 60진법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0’이 없기 때문에 숫자의 표기에는 적당하지 않아서 연월일을 표시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된다. 간지 표기법에서는 모든 간지가 60년을 주기로 되돌아온다.

정해(丁亥)년이라는 올해가 ‘돼지’의 해라는 것은 12개의 지(支)에 각각 동양에서 익숙한 동물인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를 대응시켰기 때문이다. 결국 60년 동안에 을해(乙亥), 정해(丁亥), 기해(己亥), 신해(辛亥), 계해(癸亥)가 모두 돼지의 해가 된다.

그리고 음양오행설에서는 10개의 간(干) 중에서 을(乙), 정(丁), 기(己), 신(辛), 계(癸)를 각각 오방색(五方色) 중 푸른색(靑), 붉은색(赤), 노란색(黃), 흰색(白), 검은색(黑)을 대응시킨다. 오방색을 오행(木火土金水)과 대응시키기도 했고, 동서남북의 방향에 대응시키기도 했다. 물론 현대 과학적으로 볼 때는 아무런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대응 방식이다.

음양오행설을 모두 믿더라도 정해(丁亥)년은 ‘붉은 돼지’의 해이고, 남쪽의 해가 된다. 그리고 그런 정해년은 60년마다 어김없이 돌아올 수밖에 없다. 동양의 속설에서 60년 주기의 10배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결국 내년이 ‘600년 만에 돌아오는 황금 돼지’의 해라는 주장은 엉터리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작년의 쌍춘년 소동은 오늘날 몇 나라만 사용하는 태음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쌍춘년은 한 해 동안에 양력 2월 4일에 해당하는 입춘(立春)이 두 번 들어가는 해를 말한다. 그러니까 1월에 설날이 있으면서 윤달이 있는 해는 쌍춘년이 될 가능성이 많다. 달의 주기를 근거로 하는 태음력에서는 한 해가 354일이고, 윤달을 넣으면 최대 한 해가 385일까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쌍춘년이 드물게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윤달이 있는 해는 거의 대부분 쌍춘년이기 때문이다. 작년에 이어 다음 윤달이 들어가는 2009년도 쌍춘년이다. 결국 작년 한 해 동안 우리 젊은이들을 들뜨게 만들었던 쌍춘년 소동은 태음력과 태양력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부족해서 생긴 어처구니없는 소동이었던 셈이다.

물론 쌍춘년과 황금 돼지가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한 번 웃고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더욱이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많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게 된다면 그런 정도의 해프닝은 바람직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21세기의 과학기술 시대를 살고 있다. 태양계의 작동 원리를 거의 완벽하게 알아냈고, DNA에 담긴 생명의 신비를 밝혀내고 있으며, 우주의 기원과 운명을 과학적으로 풀어가고 있다. 그런 우리가 아직도 과거의 근거 없는 속설에 정신을 팔고 있다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선 아직도 농사를 지으려면 음력이 필요하다고 굳게 믿는 사람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초등학교부터 춘분, 하지, 추분, 동지를 비롯한 24절기가 지구 자전축과 태양의 상대적인 방향에 따라 결정되는 ‘양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귀가 아프도록 배웠는데도 말이다. 우리가 초중등학교에서 배운 산 지식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무조건 학교에서 배운 것은 고리타분한 ‘이론’일 뿐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뿌리깊게 박혀 있는 셈이다.

서양에서는 중세가 지나면서 자취를 감춰버린 사원소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음양오행설과 그와 관련된 속설들이 여전히 살아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오히려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현대과학이 서양의 지나친 환원론에 근거를 두고 있어서 문제가 된다면서 동양의 전통 사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 우리의 우울한 현실이다.

그나마도 크게 왜곡된 정보가 우리의 생각을 크게 오염시키고 있다. 쌍춘년과 황금 돼지 소동이 대표적인 예가 된다. 과학기술중심사회를 추구하는 우리가 결코 웃어넘길 수 없는 심각한 문제다. 새해에는 우리가 또 어떤 엉터리 상술(商術)에 현혹될 것인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에서는 2000년 용의 해에 태어난 기록적인 숫자의 아이들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 많은 아이들을 수용할 학교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용의 운을 타고 태어난 아이들은 부모들의 잘못으로 평생을 심각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내년에 우리 땅에서 태어날 아이들도 그런 운명을 타고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물론 기록적인 숫자의 아이들이 태어난다면 그 중에는 유별난 재운(財運)을 타고난 아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것으로 만족해야만 할까? 2007년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좀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소문으로 즐거워했으면 좋겠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동대학 과학커뮤니케이션 협동과정 주임교수이기도 하다. 이덕환 교수는 2002년 한국과학저술인협회 저술상을 수상했으며, 2004년 제5회 대한민국 과학문화상을 수상했고, 2006 국제화학올림피아드 실무조정위원장을 맡는 등 과학대중화를 위한 과학문화 확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이덕환 교수는 제10기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 위촉돼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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