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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모음/다산 칼럼 모음

불끈 솟아오르는 작약 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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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끈 솟아오르는 작약 움


인권변호사이자 민주화운동가인 취영(翠英) 홍남순(洪南淳) 어른께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라 안에 애도의 마음을 지닌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비록 9순(旬)을 훨씬 넘은 고령이지만, 너무나 뚜렸했던 삶의 족적(足跡) 때문에 슬픔을 머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십 년을 가까이 모시고 민주화운동의 지도를 받았고 함께 감옥생활도 했고, 구속되었을 때에는 무료변론의 큰 혜택을 받았던 필자의 입장은 필설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회에 잠기게 됩니다.

유신독재가 한창이던 70년대 후반의 어느 해 초봄으로 기억됩니다. 광주의 민주주의 사랑방, 궁동(弓洞) 15번지 홍변호사님의 자택이자 법률사무소를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반유신 투쟁의 어떤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떠나올 때 마루에서 마당으로 따라 나오신 변호사님은 마당가 조그만 화단을 가리키면서 “여기 와서 보시게. 아직 풀리지 않은 땅에서 새움이 솟고 있네그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작약의 새움이 덜 풀린 땅에서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봄은 오고 마는 것일세.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네. 저라고 아니올 수 있겠는가?”라고 희망찬 말씀을 하고 계시는 취영선생의 언사와 모습은 정말로 여유롭고 화락하기만 하였습니다.

다산의 시 한수가 생각났었습니다.

  붉은 작약 새움이 크게 성내며 솟아오르니                 紅藥新芽太怒生
  죽순보다 뾰족하고 경옥처럼 붉도다                         尖於竹筍赤如瓊
  산 늙은이 새싹 다칠까 걱정스러워                           山翁自守安萌戒
  아이들 둑 옆으로 못가도록 막는다네                        不放兒孫傍塢行

다산초당에서 읊었던 꽃노래의 하나입니다. 아무리 추운 겨울을 지냈지만, 봄이 오면 아직 덜 풀린 땅을 뚫고 솟아오는 작약을 노래한 다산의 뜻이나, 화단에서 솟아오르는 붉은 작약 움을 민주주의의 소생으로 비교한 홍남순 변호사님의 마음에는 통하는 것이 있었나 싶습니다.

홍변호사님은 가셨습니다. 그분의 공에 힘입어 많은 부분에서 민주주의가 회복되기도 했습니다. 그분의 희생은 이제 국민적 추앙을 받고 대접을 받아야 하건만 타계하고 말았으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박석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