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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모음/다산 칼럼 모음

다산학은 조선정신(朝鮮精神)의 지보(至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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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학은 조선정신(朝鮮精神)의 지보(至寶)


다산이 세상을 떠난 뒤로, 다산의 글을 통해 다산을 가장 정확하게 이해했던 분으로는 위당 정인보만한 분이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입니다. 다산 서세 100주년을 맞은 1936년을 전후해서, 다산의 전 저작인 『여유당전서』를 간행하려고, 전 저작을 통째로 읽어보고 또 그 책을 교정(校正)했던 분이 위당이니 필연적으로 가장 많이 읽어보고 정확한 판단을 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위당은 다산의 학문이 “조선정신의 지극한 보배”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근세조선을 알려하는 사람은 다산의 유저를 통하여 찾아볼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더욱 위당이 다산에게 감탄한 대목이 또 있습니다. 벼슬하던 시절에 함께 지내던 친한 사람이 호남의 관찰사로 부임하여 다산에게 편지를 보내 해배할 방도를 강구하라고 일러주자, 다산은 그 답장으로 지금 호남에는 탐관오리들이 발호하고 민막(民 )이 너무 극심하여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대사(大事)가 일어날 것이니 빨리 그 방지책을 강구하라고 일렀다면서, “보라! 다산선생이 신(神)이 아니냐! 갑오고부(甲午古阜)의 난(亂)의 예조(豫兆)를 그때 벌써 보지 아니하였느냐. 별것이 아니다. 지성(至誠)인지라 남이 못 미치는 데까지 미치고 남이 못 보는 것까지 보는 것이다. 다산의 눈에 선하게 보이던 것이 하필 이것뿐이랴. 슬프다. 이 정성을 지금에 와서 누가 알랴. 유서(遺書)가 썩으니 누가 알랴. 나는 다산서세 백년이 금년이로구나 할 때 스스로 가슴이 막히는 듯한 감창(感 )이 있다”(정다산 선생의 뜻 깊은 부탁)라고 말했습니다.

눈물겹지 않은가요. 다산의 저서 간행을 위해 애쓰던 위당의 노고가 눈에 선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산의 예언을 당시의 당국자들은 외면하였고, 그래서 끝내 동학혁명은 일어났고, 이런 대사(大事)의 뒷수습의 잘못으로 끝내 나라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나라가 망한 이유로 민족과 국토의 분단이 왔고 그 결과 북핵으로 이어져 우리는 고통만 당하고 있지 않는가요.

실(實)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오늘의 세상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고, 다산을 몰라주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산으로 돌아가 오늘의 난관을 헤쳐나가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가 아닌가요.

박석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