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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교육정책

[‘교육 소통령’ 교육감 대해부]진보·보수 정치 광풍, 교육감에 따라 교육 판 뒤집혀 “백년 아닌 사년대계”

                                                                                                      중앙선데이

                                                                                                      입력 2022.05.07 00:02

SPECIAL REPORT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청계천에 서울시장, 서울시교육감 및 구청장 선거 후보자 100명의 선거 벽보가 설치됐다. [중앙포토]

 

“교육감의 교육 정책에 따라 교육 현장이 바뀝니다. 교육청 인사부터 예산 편성까지 모두 교육감의 정책 방향에 따라 달라집니다. 교육감이 특정 정책을 추진하면, 교육청이 교육감 눈치를 보며 세부 정책을 추진하고, 교육청 지침에 따라 학교 운영 정책도 바뀌기 때문이죠. 교육감이 추진하는 정책 시행 여부에 따라 학교 배정 예산도 달라져요.”  -세종시 초등학교 A교사

교사들이 체감하는 교육감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10년 넘게 교단을 지키고 있는 A교사를 비롯해 중앙SUNDAY가 인터뷰한 현직 초·중·고교 교사들은 교육감의 권한이 ‘교육 소통령’으로 불릴 정도라고 입을 모았다. 정치적 중립을 위해 교육감 후보자는 1년 내 정당 가입 이력이 없어야 하고, 정당도 후보자를 추천하거나 지지할 수 없다. 하지만 교육감 선거 때마다 자칭 ‘진보 교육감’ ‘보수 교육감’이 나오는 게 현실이다.

 

교육감 정치 성향따라 시험 횟수 달라

수도권 교육지원청 B장학사(교직경력 20년 이상)는 “진보 교육감은 학생 인권과 경쟁을 줄이는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혁신학교를 강하게 추진하는 반면 보수 교육감은 자사고 등을 중시하고, 경쟁을 통해서라도 학력을 높이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대구시 중학교 C교사(교직경력 30년)도 “서울시처럼 진보 성향의 교육감은 교사보다 학생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해 교사들이 지도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고, 보수 성향의 교육감은 예의범절, 학력 신장을 우선시한다”고 전했다.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에서는 전국 17개 선거구 중 대전·대구·경북을 제외한 14곳에서 진보 교육감이 당선됐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실제 교육감의 정치 성향에 따라 각 지역 학생들의 시험 횟수부터 다르다. 교육감 직선제 도입 이후 줄곧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경기도의 중학교 1학년은 시험을 보지 않는다. 경기도교육청이 시험을 치르지 않고 다양한 방식의 수업과 평가를 시행하는 자유학년제를 시행하기 때문이다. 경기도교육청은 중학교 2~3학년 때도 지필 평가를 최소화할 것을 권고했다. 따라서 경기도 중학생의 상당수는 한 학기에 한 번의 지필고사(기말고사)만 치른다. 반면 보수 교육감이 계속 당선된 대구의 중학교 1학년 학생은 1학기부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본다. 1학년 2학기에만 자유학기제를 운영하기 때문이다. 2022학년도 대구 중학교 학사운영 현황에 따르면 125개교 중 122개교(97.6%)는 학기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편성했다. 대구 중학생 대부분은 1학년 2학기를 제외한 모든 학기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보는 셈이다.

기초학력 진단검사 방법도 달랐다. 대구의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의 학생들은 지난 3월 지필고사 형식의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봤다. 반면 경기도 교육청은 지난 3월 2일부터 4월 8일까지를 진단 활동 기간으로 정하고 학교별로 자유롭게 관찰, 지필 평가, 기초학력 진단 보정 시스템 등을 활용해 학습 지원 대상을 파악하게 했다. 진보 진영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혁신학교도 지역별 격차가 크다. 혁신학교는 획일적인 교육 커리큘럼 대신 토론과 학생활동 중심의 주도적이고 창의적인 학습을 지향하는 자율학교다. 2009년 진보 성향의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이 도입한 이후 2010년 진보 교육감이 대거 당선되며 전국으로 퍼졌다. 현재 경기도 초·중·고교의 혁신학교 비율은 57%에 달한다. 반면 보수 텃밭으로 불리는 경북의 혁신학교(경북미래학교) 비율은 2.18%에 불과하다.

특목고·학력평가 정책 등 오락가락

이에 따라 진보 교육감이 선출된 지역의 학부모들은 학력 저하를 우려한다. 유치원생부터 초등학생까지 4명의 아이를 둔 박재찬(52·서울)씨는 “지난 4년 동안 아이들이 학교에서 학습하는 내용이 별로 없다고 느껴졌다”며 “2019년부터 교과서·책 등을 활용한 지면 교육을 늘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서울시교육청은 혁신학교와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에만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런 우려는 기우가 아니었다. 실제 기초학력 미달 학생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20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에 따르면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의 수학 과목 기초학력 미달비율은 13.5%로 8년 전(4.3%)에 비해 세 배로 늘었다. 국어는 6.8%, 영어는 8.6%로 전년 대비 50% 이상 증가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지역별 편차도 크다. 2016년 평가 결과를 보면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낮은 지역은 울산(0.9%), 대구(1.2%), 대전(2.1%), 충북(2.2%) 순이었고, 높은 지역은 서울(6%), 강원(5.1%), 전북(5%), 경기(4.7%) 순이었다. 당시 충북을 제외한 울산·대구·대전은 중도·보수 교육감이었다. 2018년 선거에서 울산도 진보 교육감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평가 방식을 바꾸며 2017년부터 지역별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까닭에 최근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알 수 없다. 학력 저하 우려는 혁신학교 지정 갈등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혁신학교로 신규 지정된 경기도 하남시 미사고등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1인 시위를 벌이며 반발했다. 과천과 안양의 학교 20여 곳도 학부모의 거센 반발로 신청 계획을 백지화했다.

교육 현장에서는 “백년대계가 아닌 사(四)년대계에 불과한 교육”(서울의 고등학교 D교사)이라는 씁쓸한 목소리도 나온다. 공정택(2008년), 곽노현(2010년), 문용린(2012년), 조희연(2014년) 순으로 교육감을 보수와 진보가 번갈아 맡은 서울시의 경우 자사고와 특목고 정책, 학생인권조례, 학력평가 등 많은 정책이 오락가락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8년 재선에 성공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자사고 폐지 공약 이행에 나섰다. 2019년 경기도와 부산 등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지역까지 합세해 관내 학교들의 자사고 지정을 취소했다. 하지만 자사고 10개교가 제기한 소송에서 1심 법원은 “취소 과정에 절차적 문제가 있다”며 모두 자사고의 손을 들어줬다.

학생인권조례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경기·광주 등 진보 교육감이 연속 선출된 지역의 교육청은 이미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했거나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반면 대전·대구·경북은 도입하지 않고 있다. 학생인권조례에는 체벌 금지, 반성문 금지, 교내외 집회 허용, 두발 및 용모의 자유, 소지품 검사 금지, 휴대전화 사용 등을 담고 있다. 문제는 학생의 권리만 나열한 점이다. 학생의 권리뿐 아니라 책임과 의무, 교권 존중까지 담고 있는 뉴욕학생권리장전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진보 진영의 민병희 교육감이 내리 3선을 한 강원도의 고등학교 E교사는 “2010년 이후 학력 향상과 관련된 예산이 많이 줄었고, 학생 인권과 관련된 정책이 늘었다”며 “학생 인권도 중요하지만 교육적 필요를 넘어선 불합리한 예산 지원이 많은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교육 전반에 영향력이 큰 교육감을 선출하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교육감 선거에 대한 관심은 낮다. 2018년 지방선거 직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조사 결과 교육감 선거에 대한 관심도는 43.6%로 가장 낮았다. 광역단체장(72.3%)은 물론 지방의원(46.9%)보다도 떨어졌다. 교육감 후보의 이름과 공약을 알고 투표했다는 사람은 41.3%에 불과했다. 올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학부모 박재찬(52)씨는 “교육에 관심이 적은 학부모나 자녀가 없는 젊은 세대는 현 교육감의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장기적 관점서 교육 정책 방향 정해야”

각 후보의 교육 정책보다는 단일화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국민 무관심 속에 단일 후보가 표를 독식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는 정치 논리만 남았기 때문이다. 광역단체장과의 러닝메이트제 도입 등 제도 개선 요구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교육감의 권한을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무엇보다 현재 교육감이 가지고 있는 권한이 너무 크다”며 “기초 지자체나 학교별 운영위원회 중심으로 교육 권한을 나눌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오는 7월 중앙 정부에서 출범하는 국가교육위원회처럼 지역마다 지방교육위원회를 만들어 중장기 교육 계획에 주민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방교육위가 있다면 최소한 교육감이 바뀌었다고 해서 해당 지역의 지역 교육 정책이 단번에 바뀌는 일은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에 백년대계라는 말이 붙는 이유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 방향을 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교육감 후보자의 공약집을 꼼꼼히 읽고 투표하자고 제안한다. 박 교수는 “문제 해결의 첫 단추는 시민이 얼마나 관심을 가지느냐 여부”라고 말했다.

“국민 아무도 관심 없는 교육감 선거, 교육 되레 망치고 있어”

박융수 서울대학교 사무국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7회 지방선거 당시 후보자 1인당 평균 선거비용은 교육감이 11억1000만원으로 구·시·군장(1억1900만원)은 물론 시·도지사(7억6200만원)보다도 많았다. 정당의 지원 없이 출마해야 하는 교육감 후보는 스스로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8년 인천 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던 박융수 서울대학교 사무국장(사진)은 “국민 아무도 관심 없는 교육감 선거가 교육을 되레 망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직과 자금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중도 하차했다.

왜 출마했고, 왜 사퇴했나.
“교육감 선거에서 당선되려면 두 가지만 충족하면 된다.
첫째가 단일화고, 둘째가 인지도다. 나는 두 가지 다 부족했지만, 오랜 시간 지지해준 학부모들을 믿었다. 관행처럼 이어져 오던 출판기념회, 후원금, 기부금을 거부했고, 퇴직금에 대출까지 받아 선거비용을 마련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고액의 선거비용, 든든한 뒷배를 가진 후보를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개인이 당선되는 게 어려운가.
“두 달간 선거운동 하면서 산간벽지까지 돌아다녔지만 마주친 사람이 1만명도 안 된다. 짧게라도 대화를 나눠본 사람은 200명 정도, 이 중에서 교육감 선거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20명 정도다. 인천광역시 유권자가 220만명인데 이렇게 해서 이름이라도 알릴 수 있나. ‘더불어’, ‘전교조 출신’이라고 붙이고 다니는 후보를 개인 후보가 이길 방법은 없다.”
교육감의 권한이 막강한데.
“당선만 되면 무소불위다. 모든 학교 교장 임명부터 교사들의 출퇴근 시간까지 결정할 수 있다. 서울시청 구성원은 1만명이지만, 서울교육청 구성원은 약 6만명 수준이다. 더 좋은 건 남들이 모른다는 거다. 시장은 시의회에서 적극적으로 견제하지만, 교육청은 의회에서 관심도 없다.”
 
선거제도도 여러 차례 바꿨다.
“간선제로 진행되니까 국민의 관심이 없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니 지방선거에 표 하나 끼워 넣으면 되지 않겠냐는 행정 편의적 발상에서 직선제를 도입한 거다. 나조차도 직선제를 옹호했고, 최선의 수단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선거날 아무나 한 명 더 찍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니 비리는 끊이지 않고, 관심도 없고, 대표성도 부족하다.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 선거하는데, 교육 현장은 되려 망가지는 이유다.”
 
결국 피해는 학생들이 볼 텐데.
“지금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잉크처럼 스며들고 있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하는데, 역으로 생각하면 아무리 망쳐도 그걸 알아차리기까지 100년이 걸린다.
백약이 무효한 교육감 제도를 유지하는 한 공짜로 교육이 발전할 일은 없을 거다.”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윤혜인 기자 yun.hye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