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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관리/건강

"눈이 이상해" '롱 코비드' 아이들..표현 서툴러 더 고통

장현은 입력 2022. 04. 08. 05:06 

[코로나19 험난한 일상회복][코로나의 깊은 흔적, 롱 코비드] 확진자 아이 부모 4명 인터뷰
소아·청소년, 누적 확진자의 26%..후유증 호소 사례 늘어
집중력 저하·두통·장염.."눈알 빠진다" "학습능력 저하"도
최근 격리 해제 이후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는 백아무개(8)군. 지난 1일 두통으로 응급실을 방문해 수액을 맞고 있는 모습. 보호자 제공

올해 중학교 2학년인 정아무개군은 지난해 11월17일 코로나19에 확진됐다. 열흘간의 격리기간 동안 약간의 열과 인후통이 있었지만, 입원을 요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경증으로 넘어가나 보다’ 싶었지만, 문제는 격리해제 이후였다. 미세하게 느껴지던 후각·미각 상실이 한 달간 이어졌다. 모든 냄새가 썩은 휘발유 냄새로 느껴지고, 향수를 코앞에 가져다 대도 향을 맡을 수 없었다. 이상 후각이 점차 회복될 무렵, 갑자기 참을 수 없는 두통과 안압통이 찾아왔다. 평소 아픈 걸 잘 내색하지 않는 정군이었지만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다”며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잦은 구토까지 이어져, 결국 정군은 격리해제 두 달 뒤인 지난 1월 말 응급실을 가야 했다. 다른 병이 생긴 게 아닐까 싶어 피 검사와 여러 수치 검사를 했지만 결과는 ‘정상’이었다.

7일 0시 기준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1477만명 중 20살 미만의 소아·청소년 확진자가 26%에 달하는 가운데, 소아·청소년 확진자들도 성인처럼 격리해제 이후 원인을 알 수 없는 후유증이 나타나는 ‘롱 코비드’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영국 통계청 자료를 보면, 영국에서 롱 코비드를 겪고 있다고 보고된 16살 이하 소아·청소년이 지난해 10월 7만7000명에서 올해 1월 11만9000명으로 늘었다. 한국은 아직 규모가 추산되지 않았지만, 오미크론 대유행 이후 코로나19 후유증 커뮤니티 등에 자녀의 후유증을 호소하는 부모가 늘고 있다. <한겨레>가 후유증을 겪고 있는 소아·청소년 확진자의 부모 4명을 인터뷰한 결과 집중력 저하, 두통, 잔기침, 미열, 피부질환, 장염 등 성인과 후유증이 유사했다.(▶관련기사: “1년째 미열, 두통”…코로나 ‘긴 후유증’에 무너진 삶) 김탁 순천향대 교수(감염내과)는 <한겨레>에 “델타나 오미크론에서 후유증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보고는 아직 보지 못했다”며 “다만, 델타 변이의 경우 중증으로 급격히 진행하기 때문에 폐 손상에 따른 비가역적 후유증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비율이 오미크론에 비해 더 높을 개연성은 있다”고 말했다.

극심한 체력 저하 호소

 

강아무개(35)씨의 딸 김양(4)은 코로나19 확진 이후 극심한 체력 저하를 호소하고 있다. 강씨는 “전에는 키즈 카페를 가면 6시간씩 놀고도 더 놀고 싶다고 울던 아이었는데, 지금은 두 시간만 놀아도 집에 가자고 한다”며 “활동적이고 바깥을 좋아하던 딸이, 코로나 이후 집에만 있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농구를 좋아해 일주일에 3∼4회는 운동장을 찾던 정군도 요즘에는 하루 운동을 가는 것도 힘들어한다. 지난 2월 코로나19에 확진됐다 고열로 입원치료를 받았던 5살 강군도 마찬가지다. 강군의 어머니 김아무개(45)씨는 “3년 전에 심장질환 수술을 했는데, 그때 퇴원한 이후로 3년간 잔병치레 한 번 없던 아이”라며 “코로나 후로는 장 경련도 오고, 눈도 아프다고 하고, 피부염도 생겨서 약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강아무개(8)군이 지난 2월 코로나19 이후 처방받은 약과 진료 영수증들. 보호자 제공

집중력·인지력 감소 걱정

집중력과 인지력 저하를 호소하기도 한다. 강군은 요즘 코로나19 이후 친구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한다. 이전에는 25명 반 친구 이름을 다 기억하곤 했지만 지금은 놀이터에서 같이 노는 친구 이름도 기억하기 어려워한다. 김씨는 “작년부터 한글 숫자를 가르쳐주는 학습 선생님이 계신데, 학습력이 전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고 하더라”며 “코로나로 인해 몇 주 쉬고 나갔을 뿐인데, 전부터 아이를 봐왔던 선생님이 기억력과 집중력이 눈에 띄게 저하됐다고 하니까 너무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정군은 코로나19 이전과 같은 양의 영어 단어를 외우는데 1시간 정도가 더 걸린다. 격리 해제 4개월도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찾아오는 두통과 무기력이 집중을 망치는 건 아닐까 걱정만 늘 뿐이다. 백순영 가톨릭대 의대 명예교수(백순미생물학교실)는 “여러 가지 세포들이 바이러스에 의해 손상을 받아서 후유증으로 남을 수 있는데, 기억력 저하나 브레인 포그(머리가 멍해지는 현상) 등 신경과적인 증상이 그럴 수 있다”며 “아이들은 열감 등도 많이 느낄 수밖에 없고, 소화기계 감염 등의 등도 바이러스 침범으로 인한 후유증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코로나19로 입원했을 당시 강군의 모습. 보호자 제공

원인 모를 증상들 불안

소아·청소년은 아픈 부위를 명확히 표현하는 게 어렵다 보니, 증상을 발견해내는 데도 한계가 있다. 강씨는 “4살 아이가 안압통이라는 말을 아는 것도 아니고, ‘눈이 이상해’ 이렇게 말할 뿐이지 본인이 어디가 아픈지를 정확히 말하는 것도 힘들어한다”며 “배가 아파도 ‘속이 안 좋아’, ‘배가 아파’ 이렇게 두 가지로 표현할 뿐, 세세하게 물어보지 않는 이상 아픈 걸 발견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이들은 경증으로 지나간다고 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부모들도 많은 것 같다”며 “말로 하지 않아서 모를 뿐이지 증상을 느끼는 아이들도 많을 것 같아서, 더 세세한 관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관련기사: 코로나 후유증 앓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숨차거나 흉통 땐 검사를)

지난달 코로나19에 걸린 백군(8)은 격리 마지막 날 새벽 발작을 일으키듯 두통을 호소했다. 격리 해제가 된 지 9일째인 이날까지 응급실을 4번 이상 가야 했다. 지난 화요일에는 며칠 만에 등교를 했지만, 금방내 다시 증상을 호소해 조퇴를 하고 또다시 응급실로 향했다. 아버지 백아무개(38)씨는 “아침에 괜찮다고 학교 보냈는데 아프다고 조퇴를 하고, 이렇게 증상이 간헐적으로 나오니까 너무 불안하다”고 말했다. 백씨는 “입원을 시키고 싶지만 격리 해제자이기 때문에 입원도 시켜주지 않고, 수액만 맞춰주고 끝난다”며 “수액발이 끝나면 또 아프다고 하니까 너무 답답한 상황인데, 할 수 있는 게 이렇게 커뮤니티에서 다른 부모님들 조언 얻는 것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소아 후유증 발견도 한계

외국에 비해 유행의 정점기가 늦게 온 우리나라는 아직 롱 코비드에 대한 연구가 더딘 편이다. 소아·청소년 후유증에 대해서는 더욱 정보를 찾기가 어렵다. 영국은 이미 15개 전문 소아과 허브를 설립하고, 미국이나 다른 국가도 소아·청소년과 관련된 후유증 연구가 진행 중이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최근 1000명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최대 3년간 추적해 장기 영향을 조사하는 연구를 시작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최근 전국에 8곳의 코로나19 후유증 클리닉이 생겼지만, 소아·청소년 이용자는 거의 없는 편이다. 지난 3월 한달간 하나이비인후과 코로나19 회복클리닉을 방문한 20살 미만은 총 8명(2.7%), 3월21~28일 명지병원 코로나19 후유증 클리닉을 방문한 10대는 3명(1.0%)이었다. 7살 아이를 둔 박아무개(39)씨는 “아이들의 후유증에 더 관심을 두고, 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클리닉이 생기면 좋을 것 같다”며 “이렇게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많은 만큼, 더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해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소아·청소년 후유증과 관련해서는 전반적인 연구와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백 교수는 “후유증과의 인과관계에 대해, 특히 아동에게 장기적이고 영구적인 손상을 미칠 가능성에 대해 근원적인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영준 연세대 교수(소아과)는 “현재 언급되는 여러 후유증들은 일반적으로 다양한 감염병 이후에 많이 나타나는 증상들 중 일부”라며 “다양한 연구 지원과 그에 맞는 의약, 처치들이 따라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현재는 단편적이고 분절적인 정보들만 많은 상황이기에, 아직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영역에 가깝다”며 “분명히 이런 증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은 있는 만큼 적절한 개입과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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