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코리아 21.06.19 05:24
백신과 계시록의 666
취임 후 처음으로 해외순방에 나선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어제(6/10) 파이자 코비나 백신 5억 회 분량을 가난한 나라들에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뉴스입니다. 중남미 온두라스에 계시는 친척 노부부가 저희 집에 한 달간 오셔서 파이자 백신을 맞으려는 계획을 지난 일주일 간 추진하다가 여러 사정상 취소했습니다. 곤경에 처한 형제를 외면한 것 같아 계속 마음의 큰 짐이 되었는데 조금은 들었습니다.
코비나 백신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그러는 분들 나름의 사정이나 믿음을 탓하려는 뜻은 전혀 없습니다. 제게 과학적 전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백신을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첫째는 신규 개발 방식이라 나중에 부작용과 폐해가 엄청날 것이라고 합니다.
둘째는 또 그런 배경에 사탄이 역사하여 종말로 이끌어가려는 음모라는 것입니다.
한두 번 이 문제를 다뤘지만 조금 더 보충 변증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정치적 필요 때문에 충분한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극히 위험한 요소가 있는데도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생체 실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신약의 개발은 미국 FDA가 요구하는 검증절차를 다 거쳐야 하는데 이번에도 그 필수과정을 거쳤고 단지 시간만 단축시켰을 뿐입니다. 법정 표본 숫자대로 정해진 절차에 따라 실험했고 최소 기대효과를 달성하지 못한 것도 아닙니다. 반면에 영국서 개발한 아스트라제네카가 지극히 낮은 확률인데도 조금 심각한 부작용을 나타내자 사용중지 조치를 내렸습니다. 미국정부가 취한 선의의 조치들은 사실 그대로 평가해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질병을 일으킨 병균을 다시 신체에 투입하여 치료하는 백신은 최초로 제너에 의해서 천연두 치료법으로 개발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너무나 위험하고 말도 안 되는 치료법이라는 반대가 많았을 것입니다. 지금은 전 인류가 천연두뿐 아니라 백신치료원리 자체를 개발한 그의 공헌에 크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 치료법을 개발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의해서였습니다. 그는 1773년에 고향 마을에서 개업의로 일하게 되었는데 우유 짜는 부인들이 소의 천연두인 우두에 감염되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병을 가볍게 앓고서 낫게 되면 인간 천연두에도 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9세 때 우두를 앓았던 노인이 실험대상으로 자청하여서 우두 균을 접종했더니 접종 부위에 약간의 발진만 있고 5일 후에 회복되었습니다. 그 후 약 25년간 실험과 연구를 계속하여서 우두 접종법을 발표했고 알다시피 그 이후로 감염병 예방과 치료에 획기적인 발전과 성과를 이뤘습니다.
하나님이 인간 신체를 만드신 그 오묘한 신비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병균이 몸에 들어올수록 면역력은 더 강해지게 해놓았습니다. 인간의 탐욕과 죄악으로 이 땅이 오염되고 온갖 병균이 발생할 것을 다 예상하시고 그에 대해 신체가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그 구체적인 치료방안을 인간이 깨달을 수 있도록, 제너가 그랬던 것처럼, 마치 우연처럼 인도해주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그런 절대적 섭리에 따른 은혜에 힘입어서 인간 공동체에 유익이 되는 선한 발견과 발명을 이뤄내는 것입니다. 요컨대 모든 선한 것은 하나님께로만 옵니다.
코비나로 인해 해외여행이 일 년이 넘도록 거의 중지되다 시피 되었습니다. 모든 이들이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일이 과학의 발달에 의한 너무나 당연한 혜택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인간의 죄악에 따른 엄청난 희생과 그런 악마저도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신묘한 섭리와 은혜가 역사 했다는 사실은 거의 모릅니다.
그 엄청난 크기와 무게의 동체가 그렇게 빈번하게 뜨고 내리는데도 고무바퀴가 부착된 랜딩기어가 부러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 부분은 특수재질의 금속이 사용되는데 일이차 세계대전 동안에 전투기의 수많은 이착륙을 통해 실험한 최종적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초기에는 초보단계의 소형 비행기임에도 랜딩기어가 자주 부러졌으며 계속 개선 발전시킴으로써 지금처럼 엄청난 크기의 여객기가 마음 놓고 세계를 누비게 된 것입니다.
일이차 세계대전으로 간접적으로는 수많은 전사자를 내었고 직접적으로는 비행기 조종사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같은 쾌적한 해외여행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인간의 탐욕과 죄악으로 전쟁이 일어났지만 하나님은 그마저도 인류가 선하게 발전되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분의 우리를 향한 뜻은 언제나 재앙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미국이 지금 팬데믹을 이겨내고 있는 근거는 누가 뭐래도 백신입니다. 물론 이전과 다른 신규개발방식이라 부작용과 폐해는 반드시 발생할 것입니다. 그러나 백신을 실험하는데, 허락받기 전의 법정 절차가 아니라 실제로 접종받는 방식으로 단기간에 이만큼 어마어마한 사람이 참가한 적은 역사상 없습니다. 그 결과 부작용은 아예 무시해도 될 정도로 정말로 미미했던 반면에 치료효과가 이만큼 엄청났던 적도 역사상 없습니다.
한 번 차분히 생각해보십시다. 코비나 균에 직접 걸린 사람도 감염된 사실도 모르고 무증상으로 지내다가 자신의 면역력으로 이겨내는 경우도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신체에 정말로 신비한 능력을 미리 심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균의 세기와 비교도 안 되도록 미약한 백신의 부작용 정도를 신체가, 중증의 기저질환자나 이상체질을 제외하고는 이겨내지 못할 리는 없습니다. 신자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건강에 조심하면 병원에서 포기한 치명적인 병도 단번에 낫는 기적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백신접종도 정상체질과 건강이라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수행하면 그 부작용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신자는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지켜주시므로 백신을 맞지 않아도 된다는 식은 곤란합니다. 무엇보다 자신과 접촉하는 다른 사람의 감염 예방을 위해서 맞아야 합니다. 누가 무증상 보균자인지 모르니까 더더욱 그래야 하며 또 그럼으로써 조속히 집단면역을 달성해 내야 합니다. 이 사태로 인해 경제적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빨리 정상으로 돌아가는 일에 신자라면 반드시 일조해야 합니다. 정상이 되면 백신에 대한 이 같은 과학적 종교적인 시시비비를 할 일도 없어질 것입니다.
장기적인 폐해와 부작용에 대해서 염려하지만 그러려면 지금까지 개발된 모든 약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자연재료를 사용하는 동양의학과 달리 서양의학의 약의 주재료는 합성 케미컬이며 때로는 몸에 해로운 독소가 내포되기도 합니다. 모든 약들이 장기적으로 온갖 부작용을 낳지만 그런 염려까지 제거하려면 모든 약을 끊고 아예 유기농 자연에만 의존하는 원시생활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기는 이미 세상은 너무 많은 바이러스의 천국이 되었습니다. 질병과 의약의 상호 투쟁(?)은 아담의 타락 이후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만약 이번 백신 같이 의료기술의 개발을 중지하면 그로 인한 피해가 더 클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끊임없이 부작용이 생기지만 또 그것을 없애가면서 결국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번 일로 인해 의료과학계는 모든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고 부작용도 없는 슈퍼 백신을 개발하려고 시도하고 있고 이번의 새 방식도 그 연구에 많은 참조가 될 것입니다.
지금 수백만 명이 주위에서 죽어 가고 있기에 신자라면 그대로 두고 보아선 안 됩니다. 중세에 페스트로 인한 참극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원망 불신을 불러왔습니다. 그와 동시에 사제와 신자들이 적극적으로 끝까지 치료하는 모습으로 인해 오히려 회심자가 늘어났습니다. 모든 이들이 눈앞에 닥친 죽음에 대한 궁극적인 공포를 해소하려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번 코비나 사태에도 하나님의 뜻은 동일합니다. 유전자 공학적인 염려 때문에 배척해야 한다고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 반대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장기적으로 그런 폐해가 있고 그것을 만에 하나 적그리스도가 악용 한다 쳐도 오히려 신자들은 믿음으로 기도하여 접종하고 또 그 후로도 계속 기도하며 건강을 지켜서 이겨내는 모습을 세상 앞에 보여야 할 것입니다. 신자는 세계 대전 중에 비행기 랜딩기어 고장으로 희생당한 조종사 같은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조금 지나친 표현이지만, 유전자 조작에 대한 부작용의 폐해를 빨리 드러내면서 순교하는 것도 신자가 행할 바가 아닐까요?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계13:16-18)
마지막 적그리스도가 자기를 추종하는 사람에게 표식을 주고 그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죽인다는 상기 예언을 신자라면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표인 666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이번 코비나 백신도 그 표이거나 그런 표로 가는 흐름이라고 믿는 자들이 꽤 있습니다.
그럼 성경이 말하는 666이 과연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규명해 봐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서가 그러하듯이 요한계시록도 당시의 교회와 신자들이 처한 상항을 바탕으로 저작된 역사적 서신입니다. 저자인 요한만 열두 사도 중에 유일하게 순교 당하지 않고 밧모 섬에 유배되었는데 그의 인생말년 도미티안 치세말기인 AD 95-96 년경에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독교인에 대한 로마 제국의 팝박이 극심해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상기 본문도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고 하면서 그 수를 세어보니 육백육십육(666)이라고 말합니다. 지혜롭고 총명한 자가 그 숫자를 잘 따져보면 이름을 추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마치 암호풀기 퍼즐처럼 진술해놓았는데 당시의 문화적 배경 두 가지가 해석의 열쇠가 됩니다.
첫째는 당시에 헬라어 알파벳에 일련번호를 매기고 이름의 각 철자에 그 숫자를 대입하여 합산한 수로 그 이름을 상징 내지 암시하는 방식이 유행했습니다. 요한이 그렇게 따지면 이름을 알 수 있다고 했는데 그에 해당되는 이름이 바로 로마의 네로 황제입니다.
문제는 요한이 이 서신을 AD95 년경에 저작했으나 네로는 AD68 년경에 이미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 당대에 네로가 죽지 않았고 잠적해 있으며 곧 동방의 파르티아 군대를 이끌고 왕권을 회복하러 올 것이라는 “네로 회생설”이 크게 번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해석의 둘째 열쇠입니다. 요한이 핍박자의 이름을 어쨌든 네로라고 암시했으니 네로의 생사여부와는 무관하게 그 소문을 의식한 것은 분명합니다.
물론 그가 핍박자가 회생할 네로가 될 것이라고, 아니면 단순히 로마 황제들을 네로라는 이름으로 대변하려 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64년 네로가 자기가 일으킨 로마 대화재의 책임을 모면하려고 그리스도인에게 누명을 덮어씌움으로써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을 필두로 로마의 큰 박해가 열 명의 황제에 의해서 열 번이나 자행되었습니다. 마지막 열 번 째는 303-311년의 갈레리우스 황제 치하에서 있었는데 이때가 최고로 극악한 박해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문으로 띠지면 그가 마지막 적그리스도인 셈입니다.
요컨대 요한이 의도한 본문의 666의 뜻은 사람에게 부착되는 모종의 표시가 아니라 사람의 이름을 암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그것은 역사적 맥락에서 네로 같은 로마황제를 상징했고 열 명의 황제들이 열 번의 핍박을 행함으로써 그 예언은 일차적으로 실현되었습니다.
본문에도 성경예언의 특성상 마지막 종말을 대상으로 하는 이중적인 의미도 당연히 있습니다. 네로 이름의 숫자의 합이 마침 육백육십육인데 아라비아 숫자로는 악마의 수 6이 세 번 겹치는 모양이 되었습니다. 요한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한 결과인데 사탄의 숫자로 계시되었으니까 마지막 적그리스도에게까지 확대 해석 적용하게 된 것입니다.
우선 마지막 적그리스도는 자기를 추종하는 자의 오른 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 표를 본문과 연결해 그 일차적 의미와는 무관하게 통칭 666이라고 부릅니다. 그 표가 없으면 매매할 수 없다고 했기에 한 때는 신용카드, 바코드 등과 그것을 관리하는 체계인 컴퓨터라고 여기고 경원시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세계의 기축통화인 미국달러나 최근의 비트코인도 666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극단적인 보수진영에선 젊은이들이 하는 피어싱, 문신, 이상한 장신구들까지도 사탄의 농간에 넘어간 666 표시라고 억지로 연결해서 비난하곤 합니다.
그 666이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또 이번 백신이 666 혹은 그것으로 가는 흐름일지 따져볼 차례입니다. 감사하게도 요한은 너무나 간단하고도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이미 제시해놓았습니다.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계14:9) 그 표는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해야 받는다고 합니다. 마지막 적그리스도가 완전히 나타나 세상을 휘어잡고 있을 때에 어떤 방식이 될지 모르지만 그에게 경배하는 자에게만 표식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 표는 적그리스도가 자기편이라고 구분하는 용도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그 표를 받은 자는 하나님과 어린 양에 의해서 심판을 받습니다.(계14:9-12) 그 근본적인 이유는 당신을 거역하고 그 대적을 경배했기 때문이지 그 표가 직접적 원인은 아닙니다. 나아가 적그리스도가 신자를 죽이는 것도 당신에게 경배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 표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계13:15)
다시 강조하지만 666은 마지막 적그리스도가 자기 정체를 완전히 드러내고 경배하라고 강요한 후에 적그리스도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지금 백신을 맞는 것은 그와는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 아직 적그리스도는 전혀 본색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신자가 백신을 접종하는 이유도 본인은 물론 이웃의 감염을 줄이려는 순전히 질병 예방 차원입니다.
백신 맞는 것이 세상과학이라는 우상에 절하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신자가 맹장수술 하거나 독감예방주사 맞는 것과 똑같을 뿐입니다. 과학은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질서 안에 숨겨진 규칙을 발견해내어 인간의 삶에 유용하게 적용하는 학문입니다. 순전하게 진리로 확증된 과학은 하나님의 뜻에 절대 위배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럴 리도 없겠지만 지금 현재 적그리스도는 숨어 있고 백신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세한 칩이나 이상한 물질을 집어넣어서 나중에 그것으로 사람을 제 멋대로 조종 한다 칩시다. 예수님이 믿음과 전혀 상관없이 적그리스도인 줄 전혀 모르고 행한 일을 갖고 신자를 심판할 리는 절대로 없습니다. 예수님의 구원과 심판의 기준은 오직 하나 당신의 십자가 복음 안에 들어왔느냐 여부 하나뿐입니다. 이에 대해선 이전에 쓴 간단한 글을 인용해보겠습니다.
“현재 온갖 음모론이 성행하고 있는데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중요한 요소가 하나 있습니다. 어쨌든 지금 현재로선 세계의 모든 비밀스런 정보를 언제든 가장 많이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미국 대통령입니다. 트럼프와 바이든 둘 다 백신을 맞았습니다. 그럼 일반국민은 안심해도 됩니다. 만약 미국 대통령마저 꼭두각시로 만들어 통솔 조종할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 지구적인 그림자정부가 이미 암약하고 있다면 이미 이 세상은 살아갈 의미와 가치가 전혀 없어진 것입니다. 신자라면 모든 생업을 접고 기도원에 들어가 종말에 대비해 기도와 말씀에만 전무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눈에 안 보이는 정부가 있다고 여기지도 않을 뿐 아니라 만에 하나 있다고 해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함께 해주시는 신자는 순교까지 감당하며 그런 음모에 당당히 맞설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무엇보다 요한이 계시록을 작성한 것은 다가올 교회와 신자들에 대한 세상의 핍박과 마지막 때의 적그리스도의 대환난에 대해서 신자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려는 뜻입니다. 두려움을 주어서 극도로 조심하게 만들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핍박과 환난이 닥쳐도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어린 양이 항상 함께 하시므로 절대로 실망하지 말고 끝까지 견디라는 것이 주제입니다. 그러니까 일곱 교회 서신도 끝까지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을 겪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14:12)
종말에 전개될 상황과 적그리스도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 어떤 표식을 하게 될지 아무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그 때 가서 막상 당해봐야만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초림에 대한 예언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제자들은 예수님과 삼년 간 동고동락하며 가르침을 받고 사역에 동참하고 기적을 목격했습니다. 그런데도 십자가에 죽으실 때까지도 스승을 구약의 초림예언과 정확하게 연결시키지 못했고 그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도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사흘 만에 부활하신 후에 그전에 약속하신 대로 지혜의 영인 성령이 강림하자 비로소 구약의 메시아 예언들을 예수님과 연결시킬 수 있었습니다.
초림 때는 많은 이들이 메시아가 오시길 대망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직접 오셔서 권세 있는 가르침을 베풀었고 하나님만이 행할 수 있는 기적을 수없이 일으켰습니다. 말하자면 바로 눈앞에 주님을 두고도 영적으로 전혀 무지했습니다. 언젠가 주님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불시에 큰 영광중에 강림하실 것입니다. 그럼 주님의 재림과 종말에 대한 예언도 우리로선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제가 계시록을 구체적사건과 시대와 연결시키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런데도 신자들은 자꾸만 666이 무엇인지 미리 알아서 그것만 피하면 된다는 아주 이상한 신앙을 갖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가 우리를 다스리는 방식을 방지하면 우리가 적그리스도를 이길 수 있으리라 착각하고 있습니다. 사탄이나 적그리스도는 신자가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일과 일, 능력과 능력, 방법과 방법으로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절대 아닙니다.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살후2:3,4)
적그리스도는 먼저 많은 신자들로 배교하게 만든 후에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내세운다고 합니다.
적그리스도를 이기는 길은, 심지어 분별하는 방안이 따로 필요 없습니다.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혹은 대신한다고 자칭하면 적그리스도라고 인식하면 되고 또 십자가 복음만 붙들고 끝까지 인내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럼 또 666 표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이 외에 종말을 대처하는 방안은 없습니다. 핍박 중의 큰 고통도 성령이 역사하여서 경감시켜 줄 것입니다. 혹시 순교를 당해도 스데반이 하늘의 영광을 보면서 찬양하며 천국 올라갔던 그런 역사가 반드시 임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 자체는 예수님만이 상대하고 멸할 수 있습니다.(살후2:8)
다시 강조하지만 정말로 모든 것이 마지막 때라고 여겨질 때에 그리스도와 방불한 자가 나타나 자기에게 경배하라고 강요하면 적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믿음을 강요하지 않았고 또 그 표시를 준 적이 없습니다. 나아가 불신자들 중에 단 한 명이라도 그런 자에게 경배하여 표를 받았다고 하면 너무나 쉽게 적그리스도인 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거짓의 아비 사탄은 오직 십자가의 진리로만 이깁니다.
불신 세상이 사탄의 농간에 놀아나 영적으로 사악한 흐름을 드러내며 서서히 종말로 향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신자로선 항상 깨어서 이 세대의 영적인 흐름을 정확히 분별해야 하지만 굳이 666을 포함한 마지막 때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추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매일을 마지막 날로 생각하고 하루하루 주님이 주신 소명에 헌신 충성하면 됩니다.
박진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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