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육자료/교회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교 설립자 최정원 목사 신앙 이력

2021. 4. 18 윤정호 총회장 설교시 배부한 자료

1. 장로교 청년의 복음으로

 

* 그 모친의 훌륭한 믿음

  꿈에 어느 천사가 두 죽순, 두 은 나팔, 두 책을 주면서 말하기를 장차 아들을 낳게 될 것과 그 아들이 죽순같이 살면서 두 책을 일생동안 나팔처럼 불다가 순교자처럼 죽을 것을 태몽으로 꾸심.

 

* 1912119(음력) 전남 고흥군 금산면 대흥리에서 부유한 가정의 유복자로 출생.

 

* 14세 때 집사직을 받고, 대구에서 생애 처음으로 중동교회를 설립.

 

* 193422세 때 대구 상동에서 밤낮없이 기도하던 중 가미노 카렌다(하나님의 카렌다)가 나타난 계시 받음.

  1945년에 일본은 망하고 우리나라가 8월에 해방될 것, 이후 전쟁으로 남북이 분단될 것. 그리고 금덩어리가 큰 용으로 바뀌는 것과 그 용이 지구를 감싸고 있는 것, 그리고 그 후 곧 지구가 폭파되는 계시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장차 이 세상은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 될 것이며 그 후 얼마 안 가서 세상이 사탄의 역사로 인해 폭파되고 멸망할 것을 알려주심.

 

2. 성결교단

 

* 서울 동양선교회 성서학원 간판을 보고 들어감.

   순수하게 성경만 연구한다는 뜻을 좋게 여겨 함께 모임을 가짐. 이 모임이 후에 성결교단이 됨.

 

* 1935(25)

- 서울 무교동 교회, 독립문교회 등 당시 국내 성결교단에서 가장 큰 교회로 가라는 성결교 총회 권고를 사양하고 대구시 비산동 나환자촌이던 빈민굴로 들어가심. 거기서 대구 비산동교회설립.

 

* 25세 때부터 신사 불 참배 선구자로서 전국에 유명해짐. 교회가 연합으로 모이면 언제나 사회를 맡고 국기 배례, 국민 서사, 동방 요배 없이 순수하게 예배를 인도함(일본 순사들의 감시가 심하므로 동방 요배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다른 사람들은 사회를 맡지 않으려고 하는 때이었음)

 

** 1943524(비산동교회 재임 시) 신사 불 참배로 투옥(32세 때 대구 달성동 312번지 사택에서 일본 순사에게 체포됨), 투옥 즉시 성결 단체는 문 닫기고 그 단체 교역자들 몇 명이 같이 투옥됨. 투옥 첫날, 홍시(紅柹)가 들어오는 날 풀려나실 것을 묵시로 알게 됨.

 

* 6개월 후(194312) 대구 감옥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으나 재판하던 일본 판사들이 최정원 목사의 신앙 정신에 감동하여 그들도 기독교 신자가 됨으로써 풀려나심. 그들이 원하므로 집에 가지고 있던 책을 그들에게 모두 나누어 줌.

 

* 22세 때 받은 묵시의 때가 가까웠으므로, 풀려난 즉시 그해(1943) 동포들이 살던 중국 연변지역으로 가심.

- 일본이 곧 망하고 북쪽은 공산진영이 될 것이므로 동포들이 속히 조국으로 들이가도록 권함.(도문, 왕청, 용정, 간도, 연길, 길림, 조양천, 명월구, 신경, 봉천) 그러나 아무도 듣지 않고, 오히려 용정에서 현지 조선인 목사들이 시기하여 일본 정부에 반역자로 고발함.

 

* 만주 봉천 북문교회에서 한국 보수신앙의 거두 박형룡 목사를 처음 만남. 또 이때 김창인 목사가 그 지역 정미소 서기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신학공부 할 것을 권고함. 후에 김창인 목사는 서울 중심가에 충현교회를 세움.

 

* 19447월경(32) 중국 연변지역 전도를 마치고 한국으로 나옴.

* 19458월 해방 - 대구 형무소장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던 쓰와겐쇼가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신사참배 하지 않은 가장 훌륭한 목사를 찾다가 자기가 지은 중문교회, 동문교회, 공평동 교회, 자기 집, 50마지기를 보내옴.

- 공평동 교회만 목회하고 다른 것은 모두 다른 사람에게 줌, 그 외에도 신자들이 보내온 땅이 많음.

- 이승만 박사가 함께 나라 재건에 동참하자고 수차 권했으나 신앙 운동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으므로 교회 운동하라고 대구 인근 대지 30만 평을 보냄. 그러나 받지 않음 - 현재 경북대학이 거기에 세워짐.

- 당시 내무부 장관이던 신현돈 박사가 땅을 희사함. 그곳에 현재 대구 칠성동 교회를 세움.

 

* 1945년 해방 후 성결 단체 대표지들의 부탁으로 인천 작약도에서 성결단체 9명을 모아 재건모임을 주도함. 한 달 후 서울 아현성결교회에서 다시 재건회의로 모여 참여한 모든 교역자들에게 신사 참배한 죄를 회개하도록 설교함으로 그들이 눈물로 회개함. 후에 종신 성결대학장으로 임명되심.

 

3. 임마누엘 예수교(한국총회)

 

* 1952412, 하나님의 지시로 대구 봉산동 교회, 성결교총회 마지막 날 홀로 독립을 선포.

  교계가 여전히 너무 속화되어 함께 갈 수 없으므로 엘리야처럼 홀로 걸어가야 할 감동을 받음.

직접 세운 교회들을 놔두고 홀로 독립하였으나, 직접 세운 영호남 10여 교회들을 나중에 성결 단체에서 최정원 목사에게 다시 돌려줌. 이 교회들이 임마누엘예수교명칭으로 현재까지 우리 단체 교회가 됨.

 

* 1952813, 목포역 앞에 임마누엘예수교 목포제일교회를 세우고(현재 목로뎀나무교회의 전신) “정재선 목사를 담임목사로 위촉함.

 

4.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미주 총회)

 

* 196779일 밤 성 삼위께서 직접 나타나사 지시하심.

앞으로는 교회가 되지 않는 시대이니 네가 세운 단체를 후배들에게 맡기고 너 홀로 일하라.

네 모든 재산(현 시가로 적어도 1조원 넘음)을 후배들에게 맡기라 내가 네 경제 문제를 책임지겠다.”

87(1999)너를 부르겠다”(이 지시가 '세상에서 데려가신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그때 '다시 새로운 사명을 위해 부르신다'는 의미인지 알 수 없었으나, 이후 생명을 연장해 주시기를 계속 기도함.)

- 이 세 가지 지시를 받은 다음 날 직접 설립한 임마누엘 예수단체를 제자 재식 목사에게 맡기고 떠나 방 한 칸 셋집을 얻어 가족만 데리고 홀로 나옴.

- 그 즉시 전국에서 부흥회 초청이 쇄도하므로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약 2년간 전국 부흥회만 계속함.

 

* 1969. 서울 장교여관에서 <성탄을 통해 본 하나님>을 집필 중 12월경 과거 춘천 부흥회에서 은혜받은 진용상 변호사가정의 초청으로 그 댁에서 거함.

 

* 1974, 미국 교회 관계자들이 교회를 설립해 달라고 초청함으로 미국으로 도미 후 다시 귀국

 

* 1976,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심 유정광 집사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에 교회 설립 1978년 동부로 갈 예정이던 중 샌프란시스코에 큰 지진이 일어날 묵시를 받음. 교회와 신자들이 두려워하므로 그냥 남겨둘 수 없어 워싱턴으로 갈 계획을 취소하고 샌프란시스코에 함께 머물며 기도.

 

* 1979. 지진이 잠잠해지므로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 동부 워싱턴으로 이동.

- 시카고에 교회 설립 (이용삼 목사, 헤브론교회, 가나안교회)

- 미국 동부 매릴랜드 대학 안에 유니버시티 한인교회설립(임마누엘 교단)

- 동부 콜롬비아 지역에 3백여 명 모이는 베델교회설립(지금은 수천 명 모임) 그후 새로운 우리 단체 이름으로 교회를 세워야겠다는 계획으로 그 교회에서 나옴.

 

* 198016. 땅끝까지 바른 복음운동을 해야겠다는 정신으로 미국 워싱턴 D.C에서 새로운 신앙운동을 시작하고 그 단체 이름을 하나님의 감동에 따라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교로 명칭을 정하고 막내 아들 최창호 목사와 함께 미국 우리 단체 최초 교회인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교 레남교회를 설립.

- 제자들의 신앙 운동은 앞으로 이 이름으로 할 것을 지시하고 국내외에서 교회를 인도함.

1983년경 볼티모어에 디모니움 교회등 미국에 약 10개 교회를 세우며 인물 양성에 힘쓰고 교역자로 세움.

 

5. 마지막 복음 은총

 

* 1983년 한국으로 귀국 연세대 총장 백낙준 박사호의로 서울 시청 앞 프레지던트 호텔 특실에 상당 기간 머무심.

 

* 1983124, 한국에서 교역자를 양성하기 위하여 서울 장충동 대학문화원강당을 빌려 초 교파 성경 연구원 연경회를 시작. 매주 일요일 오후 초 교파로 성경을 강의하시기 시작.

 

* 1985217. 교회 설립하기를 거절하고 성경 강의만 하기를 원하였으나 연경원 모임에 참석하던 신자들의 계속되는 강권으로 그 장소에서 생애 마지막 교회인 임마누엘 예수그리스도교 반석교회를 설립.

 

* 199518일 서울시 강동구 성내동에 교회를 건축하고 반석교회를 이전함.

 

* 2010326(향년 99) 서울아산병원에서 오전 3시경 노환으로 소천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