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케임브리지大 55명 합격… 48명 보낸 명문 이튼 제쳐
학생 98%가 소수인종, 6시 등교·3주마다 시험보며 기적 일궈
조선일보 2021.03.19 03:01
어둠이 가시지 않은 16일(현지 시각) 오전 6시. 영국 런던 동부의 공립고 ‘브램턴 매너 아카데미' 정문 앞에 2층 버스가 서자 검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우르르 내렸다. 에티오피아 출신으로 1년 넘게 매일 첫차로 등교한다는 13학년(한국 고3) 새뮤얼(18)군은 “과외 받을 수 있는 형편이 안 돼 수업 시작 2시간 전 학교에 와서 공부한다”고 했다. 이 학교 전교생 580명 중 100여 명이 오전 6시에 등교해 이런 자율 학습을 한다.
남보다 일찍 하루를 여는 이 학교가 올해 입시에서 영국 최고 명문 사립인 이튼 칼리지보다 ‘옥스브리지(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 잠정 합격생을 더 많이 배출해 화제가 되고 있다. 학교는 최근 보도 자료를 내고 “개교 이래 최대인 55명이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 입학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다. 연간 학비만 약 6500만원에 달하는 이튼 칼리지(48명)보다 7명이 많다. 공립은 학비가 무료다. 영국에선 고3 초에 일종의 예비고사 성적으로 대학에 잠정 합격한 뒤, 학년 말에 치는 본고사 성적으로 최종 합격이 결정된다. 상위권 학생은 대부분 잠정 합격 대학에 그대로 최종 합격한다.
이 학교 학생들의 출신 배경은 이런 성과를 더 돋보이게 한다. 런던에서 둘째로 빈곤율이 높은 자치구 뉴엄에 있는 이 학교에선 학생 다섯 중 한 명꼴로 무료 급식을 받고 있다. 전교생의 98%가 흑인·아시아인 등 소수 인종이며 3분의 2 이상이 영어를 모국어가 아닌 제2언어로 사용한다.
파트타임 간병인으로 일하는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고 집에 공부할 공간이 없다는 하룬 셰코니(18)군도 1년째 아침 6시에 등교한다. 수업은 오후 2시 30분쯤 끝나지만 방과 후 저녁 6시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한 뒤 집에 간다. 옥스퍼드 입학 제안을 받은 그는 “공부에 집중할 환경이 주어지고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꿈을) 이뤄낼 수 있다는 걸 나와 친구들이 증명했다”고 했다.
가난한 동네 공립학교의 성공 이야기는 13년 전 다요 올루코시 교장 부임과 함께 시작됐다. 나이지리아 연방정부대학 출신인 그는 2012년 중학교 과정만 있던 학교에 고등학교 과정을 만들었다. 이후 2년 만인 2014년 첫 케임브리지 합격생을 배출했고, 2018년엔 ’옥스브리지'에 25명, 올해엔 55명을 입학시키게 됐다. 그는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대영제국 최고 훈장(OBE)’을 받았다.
그는 공정한 기회와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강조한다. 그는 2019년 일간 텔레그래프 인터뷰에서 “우리 학교가 런던의 가장 가난한 지역에 있지만 가정 환경, 출신 배경 등이 학생의 학업 및 사회적 성취에 장애물이 될 순 없다”며 “양질의 교육, 큰 꿈, 노력만 뒷받침된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학교의 모토도 ‘노력과 투지를 통한 성공(Success through effort and determination)’이다. 케임브리지에 잠정 합격한 소냐 로카이양은 “이 학교 입학 때부터 선생님에게 끈질기게 들은 건 ‘배경은 중요하지 않다’ ‘열심히 공부하면 뭐든 성취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며 “내가 우리 집안에서 처음 대학에 진학한 사람이 됐다”고 했다.
기자가 학생들에게 “이 학교가 다른 학교와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성취 지향적인 면학 분위기와 엄격한 규율을 꼽았다. 실제 학교 건물에 들어서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가로·세로 2m짜리 ‘옥스브리지 게시판‘이 보인다. 게시판엔 옥스브리지에 입학한 졸업생 이름과 전공이 빼곡히 적혀 있다. 로카이양은 “학교에 올 때마다 그 이름들을 보며 나도 꼭 이름을 올리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3주에 한 번씩 치르는 시험도 학생들 성취 욕구를 자극했다고 했다. 나이지리아 이민자 출신으로 올해 케임브리지 법대에 잠정 합격한 대니얼 해리(18)군은 “잦은 시험은 나를 계속 공부에 매진하도록 만들었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엄격한 학교 규율도 공부에만 집중할 환경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 학교에서 영국 10대의 인사 방법인 ‘주먹 인사'는 절대 금지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호칭할 때도 이름을 부르면 안 되고, 항상 서(Sir)나 미스터(Mr)·미즈(Ms)를 붙여야 한다. 복장도 교복에 검은 구두만 허용된다. 방글라데시 출신 타스니아 타신(17)양은 “아침에 옷 고를 시간을 아껴 주기 때문에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해리군도 “다소 빡빡한 규율이 우리 의무와 본분이 학생임을 잊지 않게 해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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