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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료/인성교육

스포츠계 잇단 인성 논란.. 이런 선수도 있습니다 [장터뷰]

장민석 기자   2021. 02. 27. 07:45 

 

올 시즌 롯데에서 KT로
유니폼 바꿔 입은 '선행왕' 신본기

 

KT 위즈 스프링캠프의 신본기. 그는 "더는 밀릴 곳이 없다"며 새로운 도약을 다짐했다. / KT 위즈

 

1주일 전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기부금 영수증’ 사진이 야구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사진엔 ‘선한 영향력’ ‘마리아꿈터’란 해시태그가 붙었다. 프로야구 KT 위즈의 내야수 신본기가 올린 글이었다.

 

신본기는 ‘패션브랜드 #zbnt와 함께한 선한영향력을 통해 발생한 수익금 모두를 마리아꿈터에 후원금으로 전달하였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함께 해주신 덕분에 많이 후원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매번 이런 뜻깊은 일을 할 때마다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더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늘 건강 주의하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야구장에서 뵈었으면 합니다’라고 썼다.

 

신본기가 최근 인스타그램에 올린 기부금 영수증.

 

성원과 격려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선행왕 신본기 선수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KT 가서도 부상 조심하시고 아프지 마세요’ ‘빛본기 응원합니다’ ‘KT에서 꼭 커리어하이 시즌 만드세요’ ‘어딜 가든 어디에 있든 응원하는 팬들이 있다는 것 잊지 마세요’

 

◇ 파면 팔수록 미담이 나오네

 

최근 전화로 만난 신본기는 “한 패션브랜드와 나눔 행사를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다”며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신본기는 ‘기부’ ‘선행’ ‘봉사’라는 단어가 자주 따라붙는 선수다. 2012년 롯데 입단 당시 계약금의 10%인 1200만원을 모교 동아대에 쾌척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500만원 상당의 제빙기도 기부했다.

 

2013년 올스타전에선 번트왕 상금 200만원 전액을 모교 감천초등학교에 내놓았고 같은 해 500만원을 동아대 발전기금으로 기부했다.

 

그해부터는 자신의 팬클럽 회원들과 함께 아동보육시설인 ‘마리아꿈터’에서 꾸준히 봉사 활동을 진행했다.

 

신본기가 2017년 한 식당에서 마리아꿈터 아이들에게 밥을 사준 영수증과 그의 체크카드. 누군가 이 사진과 함께 신본기의 조용한 선행을 알렸다. / 온라인 커뮤니티

 

2017년엔 부산의 한 식당에서 10만원가량을 결제한 영수증과 체크카드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연봉 5500만원을 받는 그가 매달 10만원씩 보육시설 아이들에게 밥을 사준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파파미(파도 파도 미담) 신본기’라 불렸다.

 

아내도 봉사활동을 같이하다 만난 사이다. 어느덧 세 살 난 아들과 두 살 된 딸의 아빠가 된 신본기는 기부 얘기에 쑥스러운듯 웃었다.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아빠가 되지 말자는 생각으로 살아요. 제가 부모님을 보면서 그렇게 자랐거든요.”

신본기는 초·중·고·대학교를 모두 부산에서 나온 ‘부산 사나이’다. 흔히 송도라 불리는 서구 암남동이 신본기가 나고 자란 곳이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열심히 일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아버지는 택시 운전에 라면 대리점, 주류 도매업 등 이것저것 많이 하셨어요. 어머니는 동네에서 슈퍼마켓을 하셨고요. 자식들을 위해 묵묵히 일하시는 부모님이 계시는데 어떻게 제가 어긋날 수 있었겠어요?”

 

부모님은 도움을 받았다면 당연히 베풀어야 한다고 신본기에게 강조했다. 그래서 모교인 동아대에 감사한 마음을 표시한 것이 기부의 시작이 됐다.

 

“봉사 활동 같은 경우엔 팬 분들의 영향이 컸어요. 팬들의 제안으로 시작했는데 하고 보니 제가 얻어가는 게 더 많더라고요. 새롭게 눈을 뜬 기분이었습니다.”

 

2018시즌 롯데 시절의 신본기. 그의 커리어 하이 시즌이었다. / 조선일보DB

 

◇ 큰 사랑 준 롯데 팬에겐 죄송할 뿐

 

‘기부 천사’로 야구계에 알려진 신본기는 2017년 사랑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그가 프로 무대에서 받은 유일한 상이다.

 

“팬들이 그렇게 좋아해 주셨는데 진짜 골든글러브를 받지 못해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신본기는 롯데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선수였다. 팬들은 부산 출신의 신본기가 프랜차이즈 스타로 커 주길 바랐다.

 

“롯데에서 과분한 사랑을 받았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했어요. 그래도 저에겐 나름 꿈을 이룬 시간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롯데 유니폼을 입고 사직구장에서 야구를 하는 꿈을 꾸곤 했는데 거의 10년을 사직에서 뛰었으니까요.”

 

신본기는 ‘롯린이’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 1999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7차전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호세가 대구 팬들의 오물 투척에 방망이를 관중석에 던지고, 故(고) 임수혁이 대타로 나와 임창용으로부터 극적인 동점 투런을 뽑아낸 바로 그 경기다.

 

“손에 땀을 쥐면서 야구를 본다는 느낌이 뭔지를 그때 처음 알았어요. 전쟁 같은 시리즈였죠.”

신본기는 롯데에서 8시즌을 뛰면서 통산 타율 0.251, 25홈런 207타점을 기록했다. 2018시즌(타율 0.294, 11홈런 71타점)을 제외하곤 눈에 띄는 성적을 남기지 못했다. ‘가을 야구’를 한 번 밖에 못해본 것도 큰 아쉬움이다.

 

특히 그에게 2020시즌은 야구를 시작하고 가장 힘든 시간이 됐다. 2루수 안치홍, 유격수 마차도가 주전을 확실히 굳힌 가운데 신본기가 뛸 자리는 없었다.

 

“보통 야구를 하면서 한 달 혹은 전반기, 또는 한 시즌 목표를 정하고 운동을 하는데 작년엔 그런 게 세워지지 않아 힘들었어요. 운동은 열심히 하는데 자신감이 떨어져 목표 설정이 어려웠습니다.”

 

신본기는 "타격은 하면 할수록 어렵지만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 KT 위즈

 

◇ 서른셋에 찾아온 새로운 기회

 

그런 신본기에게 새로운 기회가 왔다. 작년 12월 트레이드를 통해 KT로 오게 된 것이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땐 정든 고향을 떠난다는 마음에 눈물도 났다. 무엇보다 롯데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래도 정신을 차려보니 저에겐 좋은 기회더라고요. 솔직히 더는 밀려날 곳도 없잖아요. 멀리 안 보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요즘이 즐겁습니다. 매일 최고가 되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신나게 운동을 하고 있어요.”

 

지난해 KT는 박경수가 2루수, 심우준이 유격수로 주로 나섰다. 신본기의 강점은 다양한 내야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 어떤 이들은 이런 신본기를 ‘어중간한 선수’라고 하지만 그는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누구보다 다양한 포지션을 경험했잖아요.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도자가 됐을 때에도 큰 재산이 될 거라 믿고 있고요.”

 

신본기는 올 시즌 건강한 모습만 유지한다면 KT에서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주전이라고 해서 144경기를 모두 뛰기는 어려울 테니 제가 적재적소에 그 빈자리를 잘 메워준다면 KT는 더 좋은 팀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올해로 한국 나이 서른셋이 됐다. 하지만 마흔한 살 유한준과 서른여덟 박경수를 보며 희망을 본다.

“그 어떤 후배들보다 운동을 열심히 하세요. 팀을 이끄는 리더십도 배울 점이 많고요. 두 선배를 보며 저렇게 오랫동안 야구를 해보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20대 초반에 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가 된 강백호와 슈퍼루키 소형준의 존재는 신선한 충격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주눅이 들지도 않고 좀 잘한다고 해서 교만을 떨지도 않아요. 자기 몸 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KT는 확실히 젊은 팀”이라며 “나이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선후배끼리 자유롭게 소통하는 분위기가 그렇다. 와보니 왜 이 팀이 작년 좋은 성적을 거뒀는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 예전부터 수원에선 잘 쳤다

 

신본기는 2018시즌이 ‘커리어 하이’가 되어선 안 된다며 마음을 다잡고 있다.

 

“야구가 어렵긴 해요. 근데 또 ‘손맛’이란 게 있어서 잘됐을 때 감각을 살려보려는 노력이 재밌어요. 파고들면 들수록 매력이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을까. 신본기는 자신을 ‘해놓은 것에 비해 정말 많은 사랑을 받은 선수’라고 했다. “절 좋아해 주는 팬들에게 죄송하지 않게 야구를 정말 잘하고 싶어요. 프로야구 역사에 한 장면,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싶은 욕심도 있고요.”

 

좋은 선수와 더불어 좋은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다. 요즘처럼 학폭 등 각종 논란으로 스포츠계가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신본기의 바람이 귀에 쏙 박혔다.

 

“최근 안 좋은 일이 많은데 팬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스포츠 선수라면 누구보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죠. 누군가에겐 꿈이 되고 목표가 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신본기는 KT위즈파크에 설 날을 하루빨리 기다리고 있다. 통산 25개의 홈런을 때려낸 그가 홈 구장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홈런(3개)을 친 곳이 바로 수원이다.

 

또 하나, 프로에서 이루지 못한 우승 꿈도 꾼다. 그는 2006년 청룡기 고교야구 결승에서 끝내기 안타로 경남고에 우승을 안긴 경험이 있다.

 

상대인 광주진흥고 선발 정영일(현 SK)이 연장 16회까지 222개의 공을 던진 바로 그 경기다. 신본기는 연장 16회에 경기를 끝내는 안타를 쳤다. 그때 경남고에서 함께 뛴 친구들이 이번에 KT에서 한솥밥을 먹게 된 장성우와 하준호다.

 

“제가 나름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두 우승을 해본 사람입니다. 프로에서도 우승 한 번 정말 해보고 싶어요. 어떤 기분일지 진짜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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