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20.12.23 00:32
현 정부는 촛불혁명에 의한 정권임을 자임한다.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이 얻은 득표율은 경쟁 후보들을 압도했던 41.08%였다. 그런데 선거에서의 득표율은 투표에 참여한 선거인 수를 분모로 한 득표수의 비율이라는 점에서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은 분모에서 배제돼 있다. 이를 포함하면 어떻게 될까. 즉 선거에 참여한 이들이 아닌 선거권을 가진 전체 유권자 중에서의 득표율로, 가칭 ‘유권자 득표율’로 부르자. 이런 방식으로 중앙선관위의 개표 결과를 계산하면 문 대통령이 얻은 유권자 득표율은 31.60%다. 전체 선거권자 10명 중 6명 이상은 문 대통령에게 표를 주지 않았다.
압도적 대선 승리했어도
전체 유권자 30% 득표 그쳐
국정은 전체 국민을 상대
이를 모르면 민주주의 도전
전체 유권자로 따져 본 득표율이 30%대라는 건 문재인 정부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1987년 직선제 쟁취 이후 실시된 7차례의 대선에서 역대 대통령들의 유권자 득표율은 예외 없이 30%대다. 후보 단일화의 롤러코스터(노무현)를 탔건, 야권 분열의 어부지리(노태우)를 누렸건, DJP연합에 보수 분열(이인제 신당)까지 벌어지며 신승했건(김대중), 보수와 진보 1대1 대결(박근혜)에서 승리해 과반 득표율을 얻었건 유권자 득표율은 모두 30%대다. 〈그래픽 참조〉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민주주의 선거에선 당연한 수치라고 지적한다. 예컨대 선거에서 50%를 득표했다고 해도 투표율이 70%일 경우 70%의 절반을 얻은 만큼 유권자 득표율은 35%로 떨어진다. 즉 민주주의 사회에서 유권자 전체의 60%, 70%를 득표했다는 결과는 사실상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투표율 90%, 득표율 90%인 전체주의 사회에서 투표한다면 모를까 민주주의 선거에서 유권자 전체에서 압도적 다수 득표를 얻는다는 건 불가능한 얘기”라고 설명했다. 또 민주주의 선거의 근간은 다수결의 원칙이다. 유권자 전체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 선거를 실시하고 이 선거에 참여한 이들 중에서 다수를 얻은 결과로 공동체의 의사를 결정하고 나라의 리더를 선출한다. 따라서 유권자 득표율이 30%대건 뭐건 선거 결과의 합법성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관건은 선거 이후의 국정 운영에서다. 국정은 투표에 참여해 현 정권을 선택한 30여%만 아니라 의도적이건 결과적이건 선택하지 않은 60여%의 유권자까지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거쳐 집권했다. 대선을 치르기도 전에 이미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예상이 압도적이었고, 결과 역시 예상대로였다. 하지만 이게 향후 국정 운영에서의 독주까지 보장하는 건 결코 아니었다.
무엇보다 유권자 득표율 30%대라는 기존의 대선 결과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국정을 운영하려면 어쩔 수 없이 정권을 지지했던 이들만 아니라 반대파, 무관심파까지 상수로 놓고 상대해야 한다는 점이다. 직선제 이후 대한민국의 모든 집권세력은 정권에 표를 찍어준 최대 4명 대 찍기 싫었건 찍을 수 없었건 선거에 무관심했건 표를 주지 않은 최소 6명의 비율로 출발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 설득과 협상은 먼 나라 얘기다. 제대로 된 리더십을 만나면 한 몸이 돼 나라를 살려내는 엄청난 DNA가 핏속에 흐르는 이 멋진 국민을 상대로 모든 에너지를 적폐 청산에 쏟아부어 나라는 찢어질 대로 찢어졌다. 탄핵으로 집권했건 야권연대로 집권했건 집권한 후엔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여주는 미래 비전으로 승부를 내야 했는데 이 정부는 집권 내내 뒤를 향해 눈을 부릅뜬 채 적폐 청산이라는 과거 비전을 벗어나지 못한다. 지지율이 흔들릴 때마다 과거 비전을 꺼내 들어 지지층을 결집하려 했다.
30%대의 유권자 득표율이 주는 함의는 민심에 대한 두려움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했던 정치적 격언이 ‘국민보다 반보 앞서 가라’였다. 민심을 무시하고 선지자를 자처하면 실패한다는 상식이었다. 선거 때 압도적 지지로 승리했다 한들 반대파, 무관심파까지 설득하고 달래고, 그래도 안 되면 양보해서 함께 끌고 가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바꿀 수는 없다. 이걸 무시하고 지지층만으로 국정을 운영하려 하면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수십년간 대남 업무를 맡았던 북한의 김영철(현 노동당 부위원장)이 2008년 12월 개성공단을 찾아 한 말이 있다. 입주기업인들을 모아 놓고 한국 드라마 이산에 나왔던 대사인 “민심이 흔들리면 배가 뒤집힌다”를 언급했다. 민심이 무섭다는 건 민심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북한 당국자도 하는 말이다.
채병건 정치외교안보에디터
[출처: 중앙일보] [서소문 포럼] 대선 지지율 30%의 법칙
'경영관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外信이 본 三星의 놀라운 事實 13가지 (0) | 2021.01.06 |
---|---|
"文 대통령, 갈수록 송시열에 가까워진다" (0) | 2020.12.26 |
특별기고 한국과 아세안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0) | 2020.12.20 |
최고 권력에서 최고 참모로 전락한 수재 (0) | 2020.12.19 |
"왜구는 교활한 짐승"이라던 이순신을 日이 존경한 이유 (0) | 2020.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