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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관리

특별기고 한국과 아세안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서정인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준비기획단장 특별기고

  2019년은 한국과 아세안이 대화 관계를 수립한 지 30년째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해 한국에서 한· 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개최된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외교 정책인 신남방 외교를 본격 이행하는 해 한국에서 열리는 첫 다자 정상회의다. 아세안 10개국 정상과 배우자 및 고위 인사 등 6000명이 넘는 아세안 친구들이 한국을 찾는다. 2009년 제 주와 2014년 부산에서 개최된 특별정상회의에 이어 세 번째인데, 아세안 대화 상대국 10개국 중 아세안 밖에서 세 번씩이나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이와 별도로 아세안 10개 국 중 대륙 동남아의 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베 트남·태국이 참가하는 메콩 5개국 정상과 만나는 제1차 한·메콩 정상회의도 올해 열린다.

 

한·아세안 1.0-개별 회원국 양자 관계 집중

 

1989년 아세안과 부분 대화 관계를 수립하기 전 까지 한국이 개별 회원국과 양자 관계 및 아세안 과의 대화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외교 교섭에 집 중하던 시기를 한·아세안 1.0이라고 할 수 있다. 아세안 역사 50년 중 초기 출범 20년간이다.

 

 한국은 1980년대 초반부터 이슈가 발생할 때 마다 아세안에 구애했지만 그때마다 거절을 당했 다. 기존 대화 상대국과의 관계 심화에 집중해야 하기에 여력이 없다는 이유였으나, 내심 아직 개 발도상국에 불과한 한국이 아세안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국가가 아니라는 판단과 자칫 남북 경쟁 에서 한쪽을 편들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직면 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아세안이 한국을 협상국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어느 정도 경제발전을 달성 한 1980년대 후반부터다. 아세안은 그때까지 없던 ‘부분 대화 상대국’ 제도를 신설해 한국에 최초 로 그 지위를 주었다. 우선 통상·투자·관광 등 3대 분야에서 협력해 보고 추후 ‘완전 대화 상대국’ 으로 격상하자는 것이었다. 불과 2년 만인 1991년 한국은 아세안의 완전 대화 상대국이 됐다.

 

한·아세안 2.0-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업그레이드

 

1990년 이후 문재인 정부 출범까지 약 30년간 지 속된 한·아세안 2.0 시기는 탈냉전 후 아세안 발 전기와 그 궤를 같이한다. 한국과 아세안은 2004 년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거쳐 2010년 아세안이 대화 상대국과 설정한 최고 단계인 ‘전략적 동반 자 관계’로 업그레이드됐다.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고 2009년과 2014년 특별정상회의도 열렸지만 아직 경제와 기능적 협력이 중심이었으며 정치·안보 분야에 선 북한 핵 문제로 남북이 경쟁하는 시기였다. 특 히 2000년부터 북한이 참석하면서 매년 개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ASEAN Regional Forum) 외교장관 회의 후 발표하는 의장 성명 문안의 북한 관련 수위를 둘러싸고 남북이 외교 소모전을 벌이자 아세안은 공공연히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아세안은 탈냉전 후 역내·외 환경 변화에 맞춰 수출 지향적 경제와 외국인 투자 유치를 적극 추 진하며 경제에 올인했다. 인센티브를 제공해 다 국적기업의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기 업 주도의 상향식 전략’과 아세안자유무역협정 (AFTA)·아세안경제공동체(AEC) 등 단일 시장 과 단일 생산기지 목표의 아세안 통합 조치인 ‘정 부 주도의 하향식 전략’을 병행 추진했다. 덕분 에 아세안은 198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 높 은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세계 6위의 경제대국으 로 등극했다. 아세안 성장은 한국에도 직접적이 고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와 2017년 기준 아세안 은 한국의 제2위 교역·투자·건설 파트너이자 제1 위 방문 지역으로 떠올랐다. 8000개 이상의 한국 기업이 아세안에 진출해 있고 30만 명 이상의 한 국 교민이 현지 사회의 중요한 공동체 일원으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한류 전파로 아세안 내 한 국 문화에 대한 인지도 역시 높아지고 있다.

 

 한·아세안 협력은 한국에만 유리한 것이 아니 라 아세안에도 도움이 되는 상생협력이다. 미·중· 일·유럽만큼 인구나 경제 규모는 크지 않으나 아 세안에 한국은 제5위 교역·투자국이자 중국에 이 어 제2위 방문국이다. 더욱이 아세안에 진출한 한 국 기업들의 고용 창출과 수출 기여도는 매우 높 다. 대표적으로 베트남 삼성전자의 수출은 베트남 전체 수출의 25%를 차지할 정도다. 이 시기에 한 국은 한·아세안뿐 아니라 아세안+3, 동아시아 정 상회의(EAS), ARF 등 연 100회 이상의 회의에 참 가했으며, 2000년대 후반부터는 한·아세안 FTA 를 통해 아세안과의 경제 관계를 심화시켰다. 아세 안과의 협력이 제도화됨에 따라 한국의 대아세안 외교 인프라도 대폭 확충됐다. 외교부 아세안 전 담국(2007년), 서울 한·아세안 센터(2009년), 자카 르타 아세안 대표부(2012년), 자카르타 한·아세안 협력사업 프로그램팀(2016년), 부산 아세안 문화 원(2018년)이 각각 신설됐고 한·아세안 협력기금, 한·메콩 협력기금 및 한아세안 FTA 협력기금 등 협력 재원도 꾸준히 신설되고 확대됐다. 한·아세안 3.0-미래를 위한 제안 한·아세안은 지난 30년의 노력으로 아세안이 비 회원국에 주는 최고 단계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까지 왔다. 더불어 문재인 정부가 아세안과의 협 Column 력을 4강 수준으로 격상하겠다고 천명한 최초 정 부인 만큼 한국은 올해를 시작으로 앞으로 30년 간 아세안 회원국에 준하는 가칭 ‘준아세안 관계’ 를 목표로 설정하고 큰 틀에서 대아세안 협력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각종 연구기관들은 아세안이 현재 추진 중인 아 세안 공동체 청사진을 충실히 이행하면 2030년 께에는 단일 생산기지 및 단일 소비시장이 돼 국 경 간 상품·서비스·자본·투자·숙련노동자의 자유 로운 이동이 가능한 국경 없는 하나의 경제체제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2050년에는 3대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하고 있다. 경제력 향상과 더 불어 글로벌 이슈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것 이고, 문화적으로도 아세안과 동남아 문화에 대 한 자부심과 중요성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아세안은 재난·기후변화·테러·사이버안보·환 경 등 초국경적 비전통 안보 이슈의 도전에 직면 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한국 등 선 진 역외국가들의 경험과 협력을 필요로 할 것이 다. 오늘날 한국 경제가 직면한 추격형 경제구조 의 딜레마도 겪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4차 산업혁 명 시대의 경제 발전을 고민하는 한편, 저출산·고 령화 문제도 핵심 이슈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아세안의 미래 변화에 비춰 향후 한·아 세안 협력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서 2018 년 11월 국립외교원의 아세안인도센터가 주최 한 신남방 세미나에서 태국 학자가 발표한 방안 을 공유하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 물론 현재 한국이 추진 중인 신남방 정책의 ‘상생과 번영의 한·아세안 미래공동체’ 로드맵에도 이 같은 취지 가 반영돼 있다. 태국 학자의 제안은 먼저 일관성 (consistency)이다. 한국은 정권 교체 시마다 세 계화·동아시아·동북아·신아시아·유라시아 등 협 력의 범위를 계속 확대 내지 축소해 왔고 아세안 은 늘 그 범위에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 종합성(comprehensive)이다. 북한 핵 문제, 경제 등 협력의 일부만이 아니라 정치, 안 보, 경제, 사회·문화 등에서 포괄적으로 접근했으 면 좋겠다는 것이다. 일부 대화 상대국들의 상인 주의적 접근을 반면교사로 삼기를 바라는 조언이 다. 마지막은 구체성(concrete)이다. 장기 비전이 나 막연한 사업보다는 꼭 필요한 분야에서 구체 적인 사업을 추진해 달라는 주문이다.

 

  한·아세안 3.0의 구체적 협력 분야는 신남방 외 교와 올해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성과사업 발 굴 과정에서 보다 구체화되겠지만 세 가지를 제 안해 보고자 한다. 첫째, 정치·안보 분야에서 한 반도 평화체제의 지속성 확보를 위해 아세안의 건설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생각할 수 있다. 현 재 북한은 아세안이 연중 개최하는 1400개 회의 중 ARF 회의만 참석하고 있는데 여타 아세안 주 도의 회의체에 많이 참석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도 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 연설에서 이 같은 취지의 언급을 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싱가포르 한·아세안 정 상회의에서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올해 말 한국에서 개최되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김 정은 위원장을 초청하자고 한 제안도 이러한 맥 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둘째, 경제 분야에서는 모바일 인터넷, 빅데이 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 4차 산업혁명 시대 에 필요한 디지털 서비스의 표준화를 위한 ‘한· 아세안 디지털 서비스 표준화 센터’ 신설 등도 대 안이 될 수 있다. 한국이 예산과 기술을, 아세안은 관련 인프라를 제공하며, 센터는 아세안 회원국 에 두어 운영하는 방식이다.

 

 셋째, 사회·문화 분야에서 한·아세안 청소년 미 래 세대들이 한·아세안 간 동남아와 동북아 구분 을 넘어 동아시아라는 큰 틀에서 준공동체 의식 을 함양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조치 들을 도입해야 한다. 한·아세안 센터, 부산 아세안 문화원 및 방콕 아세안문화센터, 자카르타 아세 안 재단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정인 단장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 지워싱턴대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 외교부에 들어가 인도네시아·호주·일본·태 국 대사관 근무를 거쳤고, 남아시아태평양국에서 동남아과장, 심의관 및 국장을 역임하며 외교부의 대표적인 아세안 전문가로 활동해 왔다. 2015년 주아세안 대사로 부임해 국내외 언론·학계·기관·기업 등 을 대상으로 아세안의 변화와 이를 고려한 대응전략 수립을 위해 제언했다. 외교부 기조실장을 거쳐 현재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준비기획단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