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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료/잡학사전

[백영옥의 말과 글] [171] 경로 의존성

오피니언  백영옥 소설가

                                          조선일보 2020.10.17 03:00

 

 

 

백영옥 소설가

 

  처음 길이 만들어지면 사람들이 그 길로 가려는 경향을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이라고 한다.

잘 생각해보면 인터넷의 댓글도 처음으로 달린 글에 많은 사람이 동조하는 경향이 역력하다.

 

‘경제 법칙 101’에서 흥미로운 경로 의존성 사례를 읽었다. 2007년에 미국에서 발사한 우주선 인데버호의 추진 로켓 폭은 143.51cm였다. 과학자들은 더 큰 추진 로켓을 원했지만 로켓을 옮기는 기차 철로의 폭에 맞춰야만 했다. 19세기 영국에서 처음 탄생한 철도는 말이 끄는 광산용 수레의 폭을 기준으로 삼았는데, 영국 마차의 선로 폭은 2000년 전 로마 도로에서 마차를 끌던 말 두 마리의 엉덩이 폭을 기준으로 정해졌다. 결과적으로 2000년 전 로마의 마차가 2000년 후, 우주선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한번 기준과 규칙이 정해지면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것이 나타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사례다.

 

  컴퓨터 자판 배열도 그렇다. 영어 자판의 배열은 ‘QWERTY’ 순서인데, 이 쿼티 자판은 1868년 발명한 수동 타자기에서 출발했다. 자판이 이렇게 구성된 건 수동 타자기의 자판 봉이 튀어나와 종이에 인쇄하는 아날로그 형식이라, 너무 빠르게 치면 봉이 엉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빨리 칠 수 없도록 일부러 자판 배열을 고안한 것이다. 1982년 미국표준협회에서는 새 자판 체계를 발표했지만 사람들은 결국 익숙한 불편을 택했다. 최첨단 폴더블 스마트폰을 쓰면서도 우리가 아직 19세기 자판의 관성에 갇혀있는 이유다.

 

  사람들은 새로운 변화보다 익숙한 불행과 불편을 선호할 때가 많다. 이직이나 이사, 이별을 고민하는 것도 그런 탓이다. 그것이 불행이라고 해도, 새로운 변화보다 익숙한 불행에 길들여지는 것 역시 경로 의존성이다. 하지만 니체도 말하지 않았던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선의, 새로운 것에 대한 호의를 가지라고. 여러 사람이 지나간 길이 관행이 되면, 여간해선 새로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경로 의존성(經路依存性, Path dependency)은 사회심리학서 등장하는 개념이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 폴 데이비드 교수와 브라이언 아서 교수가 주창한 개념으로,

한 번 일정한 경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그 경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성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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