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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기타/낚시

“봉돌”이라는 용어에 대한 고찰

                                                                   출처 에코맨 http://cafe.daum.net/hwadofish/ZnMG/43

 

이 글은 낚시용어의 어원을 찾는 과정에서 용어의 순 우리말화에 대한 연구에 대한 글이다.

 

낚시용어에서 많은 말들이 일본식 표기로 되어 있거나, 자연스러운 한글의 형태를 조합한 용어가 낚시용어로 자리메김 되어 한글사전에도 명사로 올라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연구한 결과에는 조금 부정적이다.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

이는 먼저 낚시를 배우신 분이나 지도자급의 분들이 스스럼 없이 사용해 왔기 때문이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상당히 많은 용어들이 이제는 우리말로 불리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호사키""초릿대, 1번대"로 변경되어 사용된다.

"오모리(일본어 추)""오무리"로 잘 못 불리워 지다가 "봉돌"이라는 이상한 용어로 정착됐다.

사실 어릴 적에 "오무리"라는 말이 조개추를 오무려서 목줄에 사용한다는 뜻으로 알았다. 커서 잘못된 말임을 알았다.

"니봉""산봉": "외바늘채비""두바늘채비""세바늘채비"

"봉돌"은 백과사전에도 등록되어진 낚시의 특수용어로 되어 있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자연스럽게 불리워지고 전파된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초교시절과 중등시절까지는 들어보지 못한 용어로 당시에는 추를 오모()리라 배웠다.

나는 이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다른 곳에서 글을 쓴 적이 있다.

 

바닥 올림낚시의 발원지가 일본이라는 점과, 그 문화가 우리에 맞아 일제시대를 통해 고위관료들이 사용하게 되고, 해방이후 별다른 취미생활이 없던 시기에 상위계층을 지도자급의 분들이 낚시를 자연스런 사교의 수단으로 이용되다, 6.25이후 일반인들이 접근하게 되면서 서민의 문화로 신속하게 파고들었다. 특이한 올림낚시의 문화는 한국이나 대륙형 낚시가 아닌 일본에서 개발되어 전파되었다는 점이 용어도 자연스럽게 전이된 것으로 판단한다.

 

"봉돌"도 이에 근거해 연구해 본 것이고, 그 결과는 일본어와 한국어의 합성이라고 강하게 결론 내렸다.

아직도 우리 낚싯바늘 포장에는 "()"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이름도 일본식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 일본식 발음표현이고. "()"이라고 읽는 것은 우리식 발음이다.

은 두 개의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근본 이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가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해답을 얻었다.

 

전국을 돌면서 용어를 조사한 결과와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가 잘못된 부분을 기술하여 본다.

 

1.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낚시용 추의 용어

    "":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일반용어로 한문의 추()이다.

"볻돌": 전라도 낚시인들이 사용하는 말로 "받돌"의 잘못된 발음이다.

"받돌": 그물이나 어구의 밑에 다는 추를 말한다.추로는 납,,돌등이 사용된다.

"봇돌": 경상도낚시인이 사용하는 용어다. "받돌"을 잘못 발음한 것이고, 봇돌은 논두렁의 물고에 세워놓아 물 량을 조절하는 큰 돌이다.

"발돌": 여러가지 형태의 봉돌을 말한다라고 기술되어 있는 것으로 봉돌이라는 용어 이후에 나온말이라 추정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처음보는 용어이다.

"낚싯봉": 이 말도 없었던 말이 봉돌이 생기면서 나온 말이라 생각한다.

"봉돌": 낚시에서 추를 말하는 용어로 이 글의 주제가되는 용어이다. 한글사전에 나오는 용어이다.

 

나는 몇 가지의 이 용어의 출생비밀을 연구해 보았다.

 

그러기위해 세가지의 의문점을 얻게 되었다.

의문점 1: ? 추라는 용어가 있음에도 봉돌이라는 말을 만든 것일까?

의문점 2: 봉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의문점 3: 봉돌은 어떻게 만들어진 용어일까?

 

이 봉돌의 어원을 찾아보는 과제다.

 

1. 의문점 1: ? 추라는 용어가 있음에도 봉돌이라는 말을 만든 것일까?

   위에서도 올림낚시는 일본에서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과학적 원리로 뜨는 것과 가라 앉는 추가 일치되는 영점을 만들어 균형의 파괴를 통한 찌오름을 보고 챔질하는 시기를 설정하는 신비한 낚시이다. 근자에도 서양인들은 이 낚시의 신비를 배우면 동양인보다 더 신비로움에 빠진다. 우리는 그저 늘 그렇게 배워 찌가 올라 오는게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올림낚시는 반드시 찌와 추를 맞추는 기본이 이루어진 후 찌오름이 이루어지도록 미끼를 바늘에 달아 물고기가 먹고 뜰 때 균형의 파괴에 의해 찌가 올라오게 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낚시이다.

 

이런 낚시가 한국인에 맞는 낚시이다 보니 용어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우리 말의 표현으로 하는 이름을 갈구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오모리라는 일본식 이름의 자존심에서 만들어진 이름이 봉돌이라는 용어로 보인다.

 

선배님들의 고충을 이해 한다.

하지만 좀더 연구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2. 의문점 2: 봉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봉은 봉우리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막대기 봉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철봉, 쇠봉등의 봉은 더더군다나 아니다. 사전에서 봉의 유사한 용어가 냄비나 구멍이 난 곳을 때우기 위해 알루미늄 막대를 잘라 구멍을 메우는 것을 봉이라 한다. 이빨 치료후 구멍안 곳에 때우는 것도 봉이라 한다.

 

하지만 이런 용어로는 오모리를 대신하기엔 부족하다.

우리 올림낚시에서 봉은 정확하게 표현되는 봉이 있다.

바늘의 묶음에서 사용하던 용어이다.

"니봉" "산봉"이 그렇다. 일본의 숫자를 읽는 말로 "으찌""""""", 우리말로 하나, , , 넷이다. 우리는 70년대만 해도 대부분의 용어가 일본식표현 그대로 사용하는게 좋은 것이고 유식한거라 생각했다. 바늘의 묶음채비에도 "니봉" "산봉"이라 사용했다.

 

()은 근본이라는 뜻과 가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다. 우리는 근본()본만 알고 있지만 가지

() 이라는 용어가 있다는 걸 알려주신 분은 잉어낚시의 달인 강원도 예총회장이셨던 배동욱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찾아냈다.

우리는 바늘채비에서 니봉이라 부르고 산봉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일본식 발음 그대로 이다.

당시에는 삼봉이라 하여 산봉을 그렇게 한문식으로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니봉은 그대로 니봉이라 불렀다. 그 봉이 그 봉이다.

낚시바늘을 묶은 목줄을 중간에 매듭을 지어 두개의 가지를 만들어 사용한다 하여 니봉이고, 세개의 바늘을 달아 묶은 것은 산봉이라 한다.

목줄의 가지수를 말하는 숫자이다.

 

지금도 낚시용품에 2입 이라고 쓰여 있는 물건들도 많다.

가지만 알고 근본을 모르는 자존심의 문제다.

 

3. 의문점 3: "봉돌"은 어떻게 만들어진 용어일까?

    우스겟소리로 오모리가 오무리인줄 알았던 나는 당시에 "추를 오무려서 가지에 달기 때문에 오무리"라고 하는 줄만 알았다. 참 그럴듯했다.

만약 그랬다면 고리추가 대세인 요즘은 참 머슥한 일이 벌어질뻔 했다.

 

선배님들은 고민에 빠졌던 것이다.

오모리를 대체할 용어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로 주로 사용하던 것이 돌이다. 작은 돌을 묵어서 낚시를 한 적도 있다.나 어릴적에는 못을 달아 추로 대신하기도 했다. 대강의 맞춤이지만 수수깡으로 만든 찌가 올라 온다.

 

앞에서 다양한 돌이 들어가는 용어들을 보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맞는 우리 말은 받돌이다.

전라도지역에서는 볻돌이라 하고, 경상도지역에서는 봇돌이란 용어로 토속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확안되었다. 하지만 두 용어는 방언일뿐 받돌의 발음 전달 잘 못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서울양반들의 정보에는 이것이 없어 봉에 돌을 단다하여 봉돌이라는 용어가 탄생한 것으로 최종 결론을 냈다.

"낚시에서 사용되는 용어중 봉돌은 낚싯봉에 추를 단다하여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나는 결론냈다. 일본어와 한국어의 불편한 상생관계라 생각한다.

이미 사용하는 용어를 바꿀 수는 없지만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점진적으로 받돌이라는 용어를 쓰거나 한문의 추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굳이 고릿봉돌, 조갯봉돌 등으로 부르지 않고 조개추, 고리추라 하고, 전체적인 추를 받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게 좋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 계속 새 용어의 한글화에 매진할 것입니다.

 

                                                                                                 2017.7.10 에코맨 노영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