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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료/교회

시편 127편

김중은 (장신대 교수/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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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를 위한 접근
   필자는 얼마전 어느 교회에서 주일오후예배에 설교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 

이 교회는 3년전에 선교사를 파송했고, 이제 3년 계약이 끝나 파송한 선교사가 돌아와서 선교보고도 하고, 선교사파송 3주년 감사예배를 드리는 상황이었다. 

  몇주전에 부탁을 받았기 때문에 맡은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기도하며 어떤 본문을 택할런지 생각하던 중, 위의 시편 127편이 마음에 떠올랐다. 이 시편은 필자가 평소에 암송하던 시편 중의 하나였다. 이 시편이 마음에 떠올라 설교본문으로 자리잡아 가는 중, 신약본문에서도 이 본문의 내용과 상응되는 구절이 있을 것 같아서 찾아보던 중, 야고보서 4:13-17절을 함께 본문으로 읽을 생각이 났다. 필자는 요즈음 구약본문을 설교본문으로 택할 경우, 가능하면 관련있는 신약본문도 찾아서(먼저 관주등을 통해서) 함께 본문으로 읽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노력하고 있다.


시편 127편

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야고보서 4장

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설교를 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드렇겠지만, 본 필자도 설교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언제나 설교를 하고 나서는 잘하지 못했다는 마음이 앞선다. 요즈음은 그러나 설교를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의 바른 뜻을 깨달은 마음으로 전해야겠다는데 더 관심이 있다. 감동적이고 성공적인 설교도 좋겠지마는, 그보다는 성경본문의 말씀을 공부하고 바로 깨달은대로 한구절, 한말씀이라도 그대로 전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 설교에 임하는 본 필자의 소원이다.

2. 본문공부와 설교준비

    먼저 시편 127편의 본문의 뜻을 충분히 파악하기 위해 여러 번역본들을 통해 본문을 읽으면서(한글개역, 표준새번역, 공동번역은 반드시 읽는다), 마지막에는 맛소라 본문을 소리내어 읽어 보았다. 

또한 연구용성서들에 나와있는 본문에 대한 해설과, 학문적 주석을 참고해 보았다. 여건이 허락하는데 따라 달라질 수도 있으나, 적어도 3-5개의 번역본들과 3-7개의 연구용성서나 주석들을 참고하는 것을 습관으로 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시편 127편을 설교하기 위해 공부하며 준비하는 중에, 다음과 같은 점들이 특히 주목되었고, 그점들에 관해 노트하면서 좀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시편 127편은 이미 오래전에도 설교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설교했던 생각도 되살아나면서 새롭게 본문의 의미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번 설교 후에도, 이 글을 쓰기위해 계속 본문과 설교한 내용을 생각해보았고, 주석과 참고서적도 들추어 보았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다음과 같은 점들을 정리해 보았다.

1) 시편 127편은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성전에 올라가면서 사용하던 시편 120-134편 까지의 

    순례자의 기도요 찬송 중의 한편이다. 시편에는 그 저자와 관련해서 다윗의 시편이 73편인데 비해, 

 솔로몬의 시편은 72편과 함께 127편의 단 두편 밖에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성서비평학자들은 시편 127편의 솔로몬의 친저성에 의심을 표시하지만, 본 필자가 볼때 그것을 의심해야할 확실하고 충분한 증거가 없으며, 오히려 솔로몬때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된 것이 역사적 사실이고 본격적으로 성전순례와 예배의식이 시작되었다면, 솔로몬의 시편이 두편밖에 전승되지 못한 것이 이상스럽고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왕상 4:32 참조).


2) 솔로몬의 시편이라는 제목에 따라 본문에 들어가서 읽어보니, 

    1-2절에서 세번 반복되는 "헛되며 ... 허사로다 ... 헛되도다."라는 구절이 특히 눈에 띄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인간의 모든 활동의 허무성에 대한 강조는 솔로몬을 통한 지혜문학 전통에서 나타나는 특징들 중의 하나이며, 특히 전도서에서 이러한 인간중심의 헛됨의 신학을 찾아볼 수 있다. "헛되다"는 표현을 전도서에서는 해밸(??????)로 사용한 반면, 시편 127편에서는 세번 모두 샤브(??????)로 사용하는 차이를 볼 수 있다.(그러나 다른 시편들에서 "해밸"을 사용하는 구절들을 발견할 수 있다.: 시 39:6-7, 39:12, 62:10, 78:33, 94:11, 144:4 참조). 전도서에서는 "샤브"라는 단어가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으나 지혜문학에서는 발견되는 단어이다(욥 7:3, 11:11, 15:31, 31:5, 35:13, 잠 30:8 참조). 이 두 단어들은 동의어로 볼 수 있는데, "해밸"이 숨(결)과 그와같이 허무함의 의미를 가진다면, "샤브"는 무가치성과 속이는 것과 같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시편에서 "샤브"의 용례는 다음과 같다.: 시 12:3, 24:4, 26:4, 31:7, 60:13, 89:48, 108:13, 119:37, 139:20, 144:8 참조).

시편 127편의 세번 "헛되다"(무가치하다, 속는일이다)라는 표현과 연관된 세가지 인간의 활동, 

즉 ① 집을 세우는 일(구체적으로 집을 건축하거나 가정을 이룬다는 의미)

    ② 그 집의 안전을 위해 성을 지키는 일

    ③ 그 집을 유지하기 위한 일상의 직업적 활동은 솔로몬과 그 시대의 역사적 배경과 잘 어울리는 사례들이다. 솔로몬은 그 누구보다도 건축활동을 활발히 한 인물이며, 방어성들을 건축하고 최초로 말을 사용한 전차들을 배치하였으며, 이웃나라들과 국제적 교역에 종사하며 부를 축적하는 등 바쁜 일상에 몰두하였다(왕상 4장 이하 참조). 이러한 일상의 인간적 활동상황은 야고보서 4:13 이하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인간중심적 사업과 그 활동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경험하고 성공도 했지마는, 여호와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는 일들은 결국 무가치하고 헛되다는 시인의 경험적 고백은 그만큼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3) 시편 127편에서 2절 하반절은 번역하기 어려운 구절이다.

   개역에서는,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공동번역은 "야훼께서는 사랑하시는 자에게 잘때에도 배불리신다."라고 하였고, 표준새번역에서는 "주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자는 동안에도 복을 내리신다."라고 하고, 난하에 "주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 잠을 주신다"라고 주를 달았다.

BHS의 맛소라 본문의 이 구절은 네단어로 구성되어 있는데(?????? ???????????? ?????? ????), 여기서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자라는 단어 "야디드"가 일찍이 솔로몬의 어린시절 별명인 "여디디야"(삼하 12:25 참조)와 상응될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어쨋든, 분명히 해야할 점은 보편적으로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자는 그를 경외하는 사람으로 보아야 하며(시 60:7<개역 60:4-5>, 108:7 참조), 하나님은 그를 경외하는 사람에게 잠을 주어 잠만자고 있도록 하시는 것이 아니고, 

  일할 때 열심히 일하고 잠잘 때에 잠을 자게 하신다는 뜻이며, 

  그가 자는 시간에도 하나님은 그의 필요한 것을 아시고 준비하여 주시는 분이시라는 신뢰의 표현이 틀림 없다는 것이다(시 104:27, 145:15-16 참조). 


  인간적인 계산과 욕심때문에 잘 시간에도 자지 않고, 

  조금도 쉬지않고 일하겠다는 사람은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이며 

  스스로 속고 있는 불쌍한 사람인 것이다. 

여기서 "잠"으로 표상되는 인간의 휴식과 쉼의 신학적 의미는 안식일의 쉼의 의미와 연대하여 창조주요,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인간의 올바른 삶의 지혜인 것이다.

4) 이 시편의 전반부인 1-2절과 후반부 3-5절은 일견 그 내용과 주제가 서로 다르며 그 자연스런 연결에 무리가 있기때문에 비평학자들은 두가지 서로 독립된 지혜전승 내용이 후대에 결합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본 필자의 생각으로는 전반부와 후반부의 내용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절묘한 연속성을 가진다고 생각되었다.

집(가정)을 세우고 그것을 애써지키며 생계와 부의 축척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고를 해도 대를 이을 자식이 하나도 없다면, 그 모든 것이 헛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후반부에서, 자식(맛소라 본문은 "아들들")은 여호와께서 주신 "유산"(????????)이며, 값진 노력에 대한 "값" 또는 "대가"(??????)라고 했다. 

요컨대,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의 일을 계승할 것이라는 지혜로운 신앙고백이다. 

옛날에는 자식을 많이 두는일, 특히 아들이 많은 것을 복이요 자랑으로 여겼으나, 

오늘과 같은 인구폭발시대에 이러한 자녀다산사상은 적용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여기서 많은 자녀(아들들)의 의미는 영적인 자녀들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되었다. 


  많은 자녀를 둔 사람은 구약문화권에서 재판의 자리가 열렸던 성문에서 원수들(비난자들, 고소하는 자들)과 시시비비를 가릴때, 그 자녀들이 나서서 함께 편들어 줄 것이기 때문에 원수들에 의해 일방적인 위협과 수치를 당치않을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비유는 원수 마귀와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하는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3. 적용

    이상의 본문에 대한 공부와 생각들을 가지고 필자가 설교부탁을 받은 교회의 선교활동 상황과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동참한 성도들과 선교지에서 귀국하여 선교보고를 하는 선교사의 입장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을 두가지 관점에서 압축해서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첫째는, 여호와께서 하시지 않는 선교는 헛되며, 허사이며,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이다. 

         선교는 인간의 활동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이다. 

지금까지는 우리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고, 우리가 선교비를 헌금하고, 우리 선교사가 현장에 가서 불철주야로 선교활동을 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제부터는 한단계 높은 성숙한 신앙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선교를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 선교에 동참할 것이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교를 하시지 않으신다면 우리의 선교노력도 헛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인식을 강조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둘째는, 선교는 우리 당대에 끝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선교는 사도 바울이 고백한대로 "해산의 수고"(고전 4:15 참조)를 하는 일이며, 

영적인 자녀들을 낳는 일이라는 인식이다. 선교를 통해 많은 영적인 자녀를 둔 교회나 성도들은 오늘의 원수마귀와의 싸움에서 결코 패배하거나 수치를 당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영적인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값진 선물이며 유산이다.

4. 메시지

    서구계몽주의 이후 현대 동서양의 사상사적 특징은 인본주의를 바탕으로한 무신론 내지는반신론(反神論)적인 것이다. 이러한 강력한 소용돌이와 같은 사조가 오늘의 신학과 교회내외의 활동에도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 하나님을 말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지만, 교회안에서도 실제로는 인간의 자기주장과 자기의(自己義)와 자기의 이기심이 득세하기 쉽다.

오늘 시편 127편 본문을 통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하나님의 의(義)를 앞세우지 않는 인간의 모든 자랑과 활동은 무가치한 것이요 헛된 것이며, 결국 수치스러운 결말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교회의 선교활동도 여기서 결코 예외가 아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셨다(요 15:5).

5. 찬송

    필자는 시편 127편을 설교하기위해 공부하면서부터 이 글을 쓰는 이 시간까지 하나의 찬송이 마음에 울려퍼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주의 일 하다가 ··· "로 시작하는 찬송가 376장 이다. 필자의 조부 김명집 목사가 생전에 가족예배로 모였을때 마다 거의 언제나 빠짐없이 지정해서 함께 부르던 찬송이었다. 어릴때는, 다른 많은 찬송들도 있는데 왜 하필 이 찬송만 되풀이해서 부르는지, 불평 비숫한 생각도 가졌던 기억이 되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