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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교육정책

‘인구절벽’ 시대의 현실과 해법

기획취재

‘인구절벽’ 시대의 현실과 해법

“신산업 일자리 창출로 결혼·출산 여건 조성해야”

글 : 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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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1995~2015) 새 40~50대 취업자, 60세 이상 취업자 비중 증가… 30대, 29세 이하는 감소
⊙ 고령 인구(13.8%)가 유소년 인구(13.1%)보다 처음 많아진 작년… 인구성장률 0.39%, 2032년부터 인구 감소
⊙ “‘보육환경 조성’ ‘아동수당 지급’ 미혼 청년에게 체감도 없는 정책… 출산은 결혼과 함께 봐야”
‌⊙ “원론적·형식적 정책 마련과 영세한 지원 규모… ‘방치된 저출산’ 정부 방향, 국민 생각 따로 간다”
⊙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녀’ 비율 증가세… 노동환경 개선 등 ‘일·가정 양립’ 문화도 중요
2014년 2월 서울 시내의 한 산부인과 병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기사 본문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조선DB
  ‘일본 사회, 2027년 수혈용 혈액 부족, 2040년 지자체 절반 소멸, 2065년 외국인 국토 점거.’ - 《미래 연표》
  
  ‘일본 빈집, 820만 채(2013년)에서 1400만 채(2023년), 2150만 채(2033년)로 증가. 20년 후 주택 3채 중 1채 빈집 될 것.’ - 《오래된 집 무너지는 거리》
  
  ‘2060년 한국 인구, 4세 이하 유년 인구 146만명, 80세 이상 고령 인구 754만명 예상.’ - 《100세 쇼크》
  
  올해 발간된 세 권의 책은 직간접적으로 한일 양국의 인구 감소 문제를 다루고 있다. 2015년 일본의 총인구는 약 1억2709만명으로 집계됐다. 5년 전에 비해 약 96만명이 줄어든 숫자다. 한국의 경우 올해 1분기 출생아 수는 8만9600명, 사망자 수는 8만1800명이었다. 전년 동기 대비 출생아 수는 9100명 줄었고, 사망자는 8800명 늘었다. 두 나라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인구절벽’(15~64세 생산가능인구 비율이 급속도로 줄어드는 현상) 위기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인구절벽 추세는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취업자의 고령화 현상으로 가늠할 수 있다. 2013년 당시 유재국 국회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 입법조사관은 〈인구구조 변화와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서 UN 인구국 자료를 근거로 “우리나라는 생산가능인구 감소율이 세계 6위 수준을 기록할 것”이라며 “생산가능인구가 2010년 대비 2050년에는 27%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작년 5월 발표한 〈산업 일꾼들이 늙어간다〉 보고서에 따르면, 20년 새(1995~2015) 60세 이상 취업자 비중은 2.2%에서 6.5%, 50대는 9.9%에서 18.2%, 40대는 19.0%에서 27.5%로 늘었다. 같은 기간 29세 이하 취업자 비중은 36.4%에서 18%, 30대는 32.5%에서 29.8%로 줄었다.
  
  연보라 한국고용정보원 e현장행정지원팀 연구원은 지난 3월 발표한 〈연령별 인구구조 변화〉 보고서에서 “15~29세 청년층은 2018년 현재 920만1000명으로 지속적으로 감소 중”이라며 “30~54세는 2004년 전체 인구 절반이 넘는 51.1%(1922만2000명)였으나 2018년 현재 45.4%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반면 55세 이상 장년층은 “2004년 816만7000명(21.7%)이었다가 2018년 2월 기준 1486만4000명(33.7%)으로 증가했다”며 “제1차 베이비붐 세대가 55세 이상 장년층으로 이행하고,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출산율 감소가 배경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1.05명’ 작년 출산율 역대 최저치
  
2016년 기준 인구 추이 예상 그래프. 그래픽=조선DB
  인구문제는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 경제가 마비되고 국력도 쇠퇴한다. LG경제연구원은 작년 3월 발표한 〈생산가능인구 감소 시대의 경제성장과 노동시장〉 보고서에서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영향을 이렇게 설명한다. 〈핵심 생산계층이자 소비계층인 15~64세 인구 둔화는 생산 능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수요를 위축시키는 요인이 된다. 재정적자 및 국가부채 확대 역시 고령화가 가져오는 중요한 부작용으로 알려지고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생산가능인구 감소 이후 5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겪은 것으로 집계된다. 일본은 생산가능인구 감소 전후로 점차 성장세가 낮아지다가 3년 후 마이너스 성장에 들어선 바 있다.〉
  
  2015년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생산가능인구는 2025년 3576만명에서 2035년 3168만명, 2045년 2772만명으로 지속 감소한다. 2065년에는 2062만명으로 줄어 그 비중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가장 낮아진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생산가능인구 감소 속도는 선진국들보다 빠르다. 생산가능인구가 10%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일본은 17년, 독일은 26년인 데 비해 한국은 12년에 불과하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30년 내 78개 시·군과 1383개 읍·면·동이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령화도 따라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노인 인구 구성비는 2015년 12.8%에서 2026년 20%, 2037년 30%, 2058년 40%를 넘어선다. 85세 이상 초고령 인구도 2015년 51만명에서 2024년 100만명을 넘어선다.
  
  인구 감소의 원인은 ‘저출산·고령화’다. 아이를 안 낳거나 못 낳는 이유는 문화적·사회적·경제적으로 여러 가지다. 1인·비혼(非婚) 가구 문화, 실업·양극화 문제, 불편한 육아 환경 등이다. 우리나라 출생아 수는 2012년 48만4000여 명, 2013년 43만6000여 명, 2014년 43만5000여 명으로 꾸준히 줄다가 2015년 43만8000여 명으로 증가, 2016년 40만6000여 명, 2017년 35만8000여 명을 기록하며 다시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작년은 65세 이상 고령 인구(13.8%)가 0~14세 유소년 인구(13.1%)보다 처음 많아진 시기로, 출산율도 역대 최저치인 1.05명이었다. 통계청이 지난 3월 발표한 〈2017 한국의 사회지표〉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기준 인구성장률은 0.39%로 2032년부터 인구가 감소할 전망이다.
  
  
  12년간 저출산·고령화 예산만 ‘225조원’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2월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간담회에 앞서 김상희(문 대통령 왼쪽) 부위원장을 비롯한 민간 위원들과 차담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출산 장려 대책을 넘어 여성들의 삶의 문제까지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뉴시스
  저출산 해소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아동수당 지급, 어린이집 확충, 육아휴직급여 지원, 신혼부부 공공임대주택 우선 공급 등을 해결책으로 내세웠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 7월 5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저출산 대책을 발표했다. 위원회는 보도자료에서 “저출산 현상은 우리 사회 전반의 삶의 질이 악화된 결과”라며 “생애주기 전반에 걸친 종합적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5대 개혁방향을 밝혔다. 〈①출생부터 아동의 건강한 성장 지원 ②아이와 함께하는 일·생활 균형 ③모든 아동과 가족에 대한 차별 없는 지원 ④청년의 평등한 출발 지원 ⑤제대로 쓰는 재정 및 효율적 행정 지원체계 확립〉이다. 세부 대책으로는 ‘출산휴가급여 사각지대 해소’ ‘임산부 의료비 경감’ ‘남성 육아휴직 활성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Work and Life Balance) 중소기업 확산’ ‘한부모 자립을 위한 양육비 지원 강화’ 등이 있다.
  
  송석준 자유한국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은 지난 7월 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부의 저출산 대책에 대해 “기존 제도의 문제점과 낭비적 요소가 없는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보완이 없는, 땜질식 돈 퍼붓기 대책”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송 부의장은 “출산 연령에 있는 계층의 심리상태, 부모들의 여건, 직장의 여건, 여러 가지 사회구조적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실효적인 대책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정책이 저출산 해결에 유효할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일이다. 문제는 현 정부 못지않게 역대 정부들도 저출산 흐름에 경각심을 가졌지만 해결하진 못했다는 점이다.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역대 정부는 2006년부터 작년까지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총 225조원을 투입했다. 올해 저출산 예산은 중앙정부 26조원, 지방자치단체 4조원으로 처음 30조원이 됐다. 출생아 1명당 거의 1억원에 가까운 예산이 쓰이는데도 근본적 해결은 왜 어려운 걸까.
  
  
  “결혼도 안 하는데 출산 전제로 정책 설계”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인구학자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그동안 (산아제한으로) 출산율을 계속 떨어뜨리려고 노력했다가 2000년대 와서 방향을 바꿨다”며 “늦어도 1990년대 초반에는 (산아제한 방향을) 그만뒀어야 했는데 그걸 안 한 게 첫째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최근에는 (출산율을) 늘리려고 하는데, 실제로 늘지 않았다는 것은 누가 봐도 (그동안의) 인구정책이 실패한 게 맞다”고 말했다. 그의 분석이다.
  
  “2006년부터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에 의해서 예산을 쓰면서 정책을 폈는데, 거의 구조적인 부분에만 초점이 맞춰졌어요. ‘보육환경 개선’으로 (예산을) 다 투입한 거였습니다. 좋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출산의 효과가 있었느냐, 그건 아니었던 거예요. 우리나라처럼 혼인을 통해서 출산이 이뤄지는 구도하에서는 혼인부터 해야 하는 거죠. 혼인이 어려운 청년들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아이를 한 명 낳고 보육환경이 좋으면 둘째를 낳을 거야’는 식으로 생각한 거죠. 보육환경 개선이나 아동수당 지급은 (미혼의) 청년들에게는 아무 체감도가 없는 정책이었죠.”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 진전은 중진국 이상에서 공통적으로 흘러가는 트렌드”라며 “다만 우리는 (인구 감소의) 속도 조절이 안 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국가가 그동안 120조원 이상 (관련 예산을) 쓰고도 조절했어야 했는데 그것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차 교수의 말이다.
  
  “실패죠. 정책 실패죠. 사실 이 문제가 누구라도 답을 내기 쉽지 않을 정도로 복합적이고, 이미 다 진행이 된 상태입니다. 보통 아이를 좀 많이 낳게 하려고, 더 낳으면 돈을 주는 쪽으로 가잖아요. 개인적으로 저는 그게 맞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요. 25세 이상 35세 이하 가임기 여성들의 45% 정도가 비혼이에요. 일단 결혼 자체를 안 한 상태인데, 자꾸 아이를 낳으면 돈 주겠다는 방향의 정책은 (해답이) 아니죠. 더구나 우리나라는 미혼 상태에서 낳은 아이에 대해 백안시(白眼視)하잖아요. 아이 낳는 문제는 결혼 문제와 같이 봐야 해요. 한 달에 돈 10만원 더 주고 20만원 더 주면 애 낳을 것처럼 생각하는 건 착각이에요.”
  
  
  저출산에는 ‘경제적 어려움’도 한몫
  
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공공정책학 교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소속 이상림 연구위원과 유재언 부연구위원이 지난 7월 5~6일 열린 ‘2018년 제1차 인구포럼’에서 발표한 ‘저출산·고령화 시민인식조사’ 결과는 위 전문가들의 진단을 뒷받침한다.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한 해당 조사에 따르면,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 충분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중 76.1%가 ‘불충분했다’고 답했다. ‘현재까지 정부의 출산·양육 지원정책이 자녀양육 가구에 도움이 됐느냐’는 질문에는 ‘도움이 안 됐다’는 대답이 53.6%로, ‘도움이 됐다’는 대답(46.4%)보다 많았다.
  
  우리나라 혼인 건수는 2012년 32만7000여 건, 2013년 32만2000여 건, 2014년 30만5000여 건, 2015년 30만2000여 건, 2016년 28만1000여 건, 2017년 26만4000여 건으로 꾸준히 줄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가임여성인구수(15~49세 여성의 수)도 10년 새 1300만명대에서 1200만명대로 일관되게 줄고 있다. (2006년 1361만5000여 명→2015년 1279만6000여 명)
  
  결혼·출산을 피하는 이유로는 1인가구·부부가구 등을 선호하는 문화적 요인부터 취업문제·주택마련 등을 고민하는 경제적 요인까지 두루 존재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5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까지 결혼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미혼 남녀 응답자 중 가장 많은 22.2%가 ‘결혼할 생각이 없어서’라고 답했다. 총 1만2000가구에 거주 중인 기혼여성(15~49세)과 미혼 남녀(20~44세)를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미혼 남성은 경제적 형편을, 미혼 여성은 사회문화적 가치관을 ‘결혼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이 중 전문가들은 ‘경제적 요인’에 초점을 맞췄다. 고용 문제, 소득 격차 같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결혼해서 아이 낳을 형편’이 안 된다는 뜻이다. 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공공정책학 교수는 “옛날보다 조금 줄기는 했지만, 조사해 보면 ‘이상 자녀 수’가 2명에 가깝게 나온다”며 “그 말은 사람들이 현실적 제약이 없으면 아이 둘을 낳고 싶어 하는 게 평균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실제 상기한 보고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혼 남성의 평균 이상 자녀 수는 1.96명, 미혼 여성은 1.98명이었다. 최 교수는 “실업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결혼·출산 같은 개개인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해 준다는 차원에서 정부의 저출산 정책이 더 효과적으로 도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생태계 혁신 못해 출산 정책 실패”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규직·비정규직 임금 격차와 혼인율 격차가 거의 비슷하다”며 “임금불평등이 심할수록 혼인율은 낮아진다”고 진단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제조업 중심 경제 구조를 지닌 나라들일수록 인구 감소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기술 진보에 의한 ‘탈공업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단순 제조업 종사자들은 감소한다. 서비스업 등 새로운 업종이 발달하지 못한 사회에서 청년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 힘들어진다. 일자리 증가율이 줄고 임금 양극화가 진행된다. 각박한 취업 경쟁 속에서 젊은이들이 결혼·출산을 도모하기가 어려운 형편이 된다는 설명이다.
  
  “(인구 감소 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도 1992년부터 최근까지 정규직 일자리가 거의 안 늘었어요. 파트 타임 같은 질 낮은 일자리가 대부분 늘었던 거예요. 정규직 사무직 일자리,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자리가 거의 안 늘었다는 말이죠. 우리나라 출산 정책이 실패했던 이유도 산업생태계를 업그레이드 못 시켰기 때문이에요. 20년 가까이 100조원 이상 투입했는데도 효과를 못 본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거죠. 지금 반도체 (호황) 착시 때문에 그러는데, 2014년도부터 대기업들도 역성장하고 있어요. 새로운 사업을 못 만들어냈기 때문이에요. 기존 사업을 가지고는 청년들 일자리 못 만들어내요. 자동화하거나 기존 인력으로 다 운영되죠. 새로운 사업이 만들어져야 새로운 청년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미국 경제예측연구소 ‘HS덴트’의 해리 덴트 회장은 작년 1월 《이코노미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인구가 감소하며, 한국 경제는 장기 침체에 빠진 일본 경제와 비슷한 상황을 경험할 것”이라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생산적인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인프라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도 정부가 인구 정책을 설계할 때 “큰 틀에서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우리는 지금 단기적 접근에 몰입하고 있는데, 정책을 좀 더 크게 설계하고 중장기적으로 사회구조 문화를 바꾸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필요하다”며 “노동시장 구조 바꾼다는 게 쉽지는 않지 않나. 정권 바뀌어도 일관성 있게 (구조적 정책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지적이다.
  
  “모든 정부가 원론적으로는 중요하다고 외쳤지만, 실질적으로 안에 들어가 보면 저출산에 대한 투자는 상당히 인색한 것 같더라고요. 특히 청와대(비서진)나 장관들은 (임기가) 1~2년밖에 안 되잖아요. 자기 임기 안에 뭔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우리는 자꾸 청년들에게만 요구를 하는데, 청년층도 여러 가지 요인 때문에 쉽게 출산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해요. 열심히는 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약간 방치된 느낌이랄까. 이 정부와 정책이 답답한 상태로 흘러가고 있는 거죠. 정책의 방향과 국민의 생각이 따로 가고 있다고 봐요. 이것저것 다 건들다 보니까 예산도 방향도 안 되고, 지원 규모도 영세하고 형식적으로 흐르니까 국민들로선 체감이 안 되는 거죠. 좀 더 통 크게 (정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시적 대책은 ‘워라밸’ 조성이 관건
  
신지호 전 새누리당 의원.
  통계청이 작년 12월 발표한 〈2017 일·가정 양립 지표 주요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여성 육아휴직자 수는 2012년 6만2279명, 2013년 6만7323명, 2014년 7만3412명, 2015년 8만2467명으로 증가세를 보이다 2016년 8만2179명으로 줄었다. 작년 비취업 여성의 경력단절 사유 중 ‘결혼’이 34.5%로 가장 많았다. 이어 ‘육아(32.1%)’ ‘임신·출산(24.9%)’ ‘가족 돌봄(4.4%)’ 순이었다. 보고서는 “결혼 사유로 경력이 단절되는 비율은 계속 감소하는 반면,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비율은 증가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 부위원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가정 양립 문화, 즉 ‘워라밸’을 보장하는 정책이 정부의 이번 저출산 대책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정부 발표안에 따르면 앞으로 만 8세 이하의 자녀를 둔 육아기 부모는 임금 삭감 없이 최대 2년 동안 1시간 단축 근무를 할 수 있다. 남편의 유급출산휴가도 3일에서 10일로 늘어난다. 육아휴직의 부모 동반 사용도 가능해진다.
  
  전문가들도 ‘워라밸’ 문화 도입 같은 미시적 정책의 개선을 한목소리로 촉구했다. 국가론 《고개 숙인 대한민국》을 쓴 신지호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여성들이 ‘일과 가정의 병립’ ‘일과 육아의 병립’을 쉽게 할 수 있는 나라들이 출산율이 높다. 우리도 포커스를 여기에 맞췄어야 했다”며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도 일과 가정의 양립을 어떻게 더 수월하게 만들 것이냐에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하는 여성을 도와주면 출산율과 여성고용률도 함께 높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신 전 의원은 “육아휴직은 신고를 안 해도 자동으로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며 “육아휴직급여를 인상해 주는 것도 방법이다. 스웨덴도 그쪽을 많이 밀어준다”고 말했다.
  
신윤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신윤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유럽에서도 양성평등과 사회복지가 잘 돼 있는 국가가 출산율이 높았다”고 말했다. 신 위원은 “한 외국 연구에서 ‘아시아는 (출산율 제고가) 더 어려울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노동시장이 압박적이고, 노동 강도도 세고, 장시간 근로하기 때문이었다”며 “여기에 고용 문제, 교육에 대한 높은 투자와 지출 같은 게 맞물려서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게 된 것이다. 우리는 보육환경도 나아졌고 아동수당도 도입했지만,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려면 사회 체계적으로 노동환경 개선과 양성평등 정착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슬기 교수는 “한국은 (미시적 정책의) 제도화는 잘 돼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 꺼풀 더 들어가 보면 문제가 많다”며 “사각지대 차원 정도가 아니라 (정책에) 적용될 수 있는 사람의 범위가 좁게 형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40만명 정도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남성 육아휴직자가 1만명 조금 넘었을 것”이라며 “주변에 봐도 그게(남성 육아휴직) 예외적인 케이스가 될 만큼, 정책들이 제대로 작동을 못하고 있다. 백화점식으로 고민 없이 정책을 설계하면 돈은 돈대로 쓰고 실질적인 효과는 별로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경제·기업 살려야 인구절벽 버틴다
  
일본의 빈집 수. 김대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작년 12월 18일 자 《조선일보》 칼럼에서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지지부진한 인구 대책부터 거시경제, 복지, 노동, 산업 등 모든 면에서 틀을 바꿔야 한다”며 “무엇보다 기업이 건강하게 버텨줘야 한다”고 적었다. 그래픽=조선DB
  인구절벽에 대한 ‘낙관론’도 있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미래 사회에서는 적은 인구로도 세계가 존속·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다. 최슬기 교수는 “사실 인구 감소는 어느 정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면서 “감소돼도 상관없다고 본다. 옛날에는 남북한 합쳐 2000만명이 살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미래 시스템이 어떻게든 (무인화로) 바뀔 것이기 때문에, 2000만명이 살든 1억명이 살든 상관은 없겠죠. 문제는 한두 세대 만에 인구 변화가 빠르게 이뤄지기 때문에 적응하기가 너무 고통스럽다는 겁니다. 인구 축소 사회로 가는 과정에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천천히 나아갈 수 있도록 정책이 마련돼야 합니다.”
  
  LG경제연구원은 앞서 인용한 보고서에서 독일의 사례를 근거로 인구절벽 시대의 경제성장 전략을 이렇게 설명했다. 〈독일은 1998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섰지만 성장률 변화는 크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이후부터는 ‘노동생산성’이 빠르게 높아지면서 노동력 부족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공지능·사물인터넷 등이 경제 제반 부문에 잘 흡수돼 생산성을 상승시키고, 잠재성장력을 높일 수 있도록 ‘유연한 경제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김대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작년 12월 18일 자 《조선일보》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이제 우리 차례가 오고 있다. 우리는 일본처럼 버틸 수 있을까?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지지부진한 인구 대책부터 거시경제, 복지, 노동, 산업 등 모든 면에서 틀을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이 건강하게 버텨줘야 한다. 기업인은 혼내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지금이 역사의 변곡점이다. 해야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자꾸 뒤만 돌아보고 있으면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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