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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료/성경공부

[스크랩] 행위와 믿음에 대하여

행위와 믿음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역사에서 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살아가는 첫 창조질서 곧 역사에 들어오셔서 함께 사십니다. 첫 창조질서는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동거 방식과 일하심도 여러 부분과 모양으로 나타났습니다. 옛적에는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로 말씀하셨습니다. 옛 언약시대에서는 휘장으로 가리우시고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지상생애 동안에는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제자들과 함께 하셨으며 오순절 이후에는 부활의 영으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동행하고 계십니다.

 

구원은 역사적이다.

 

이방철학의 본체론에 의하면 “본래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각자 자기 행위로 하나님의 법정에서의 의를 얻도록 하셨다. 그러나 유한한 인간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을 여셨다. 그것은 아들을 믿는 사람의 대표로 세우셔서 그의 죽으심으로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하게 하셨다.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여 얻은 영생의 공로는 믿는 자의 것이 되게 하셨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고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 그러므로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다할 육체가 없으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는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인간에 대하여 역사가 배제된 이원론 구조를 따라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역사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역사에서 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에서 사시지 않는다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실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역사 곧 시간과 공간의 질서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역사에 사시면서 언약의 하나님으로 일하신 구원역사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나 믿음, 세례도 역사적입니다. 각 시대의 중보자들을 통하여 집행되었던 역사적인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중보자를 통하여 집행하셨던 구원의 일들을 당대의 백성들과 그 이후의 세대들로 하여금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을 통하여 나타난 구원이나 믿음, 세례 등은 역사적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되었던 나라가 완성됨.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를 첫 창조에서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신 복은(창1:28) 죽은 자와 같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따라 이삭을 주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창 18:18-19) 아브라함은 자신의 장막을 방문하신 여호와를 믿었으며 여호와께서는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창15:6) 이처럼 믿음은 하나님과 동거하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일을 완성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언약을 체결하시고 나라로 설립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킬 것을 맹세하여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하였습니다.(출19:7-8) 이스라엘은 모세율법을 행할 의무를 가진 거룩한 백성이었으며 모세율법이 없는 이방인은 하나님 앞에 불의하였습니다.

 

언약의 법이었던 모세율법은 이스라엘의 의로운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었습니다. 율법으로 통치되는 나라를 다윗에게 의탁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율법으로 다윗왕조와 그 나라 백성을 판단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범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방의 나라에 파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다윗 왕을 주셔서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나라를 세우실 것을 언약하셨습니다. 이 언약이 이스라엘이 소망하였던 종말의 복음이었습니다.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자기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를 십자가에 죽게 하셔서 휘장 밖에 세워졌던 율법의 나라를 끝내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구원경륜에 순종한 아들을 하늘 보좌에 앉히심으로 하늘에 속한 나라로 완성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민을 부르십니다. 이 일은 새로운 창조의 일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처럼 오직 믿음으로만 들어갑니다.

 

모세율법의 나라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임시적으로 경영되었던 나라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나라가 하늘에 속한 나라로 완성되었기 때문에 모세율법의 통치의 시대는 끝났고 믿음이 왔습니다. 율법의 통치에서는 나타내지 않았던 하나님의 의, 곧 아들로 말미암은 권세 있는 하나님의 통치가 나타났습니다.(롬3:21)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의, 곧 새로운 하나님의 통치에서는 하나님도 의롭고 그를 믿는 자도 의로워서 율법의 요구, 곧 하나님의 통치가 사랑의 법으로 온전히 구현됩니다.(롬3:23-26) 이처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는 새로운 의의 나라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의인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믿음의 나라, 하나님의 새로운 통치 가운데서 삽니다.(롬1:17)

 

행위와 믿음은 구원역사적인 대비이다.

 

구원이란 다른 신과 권세를 섬기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그의 나라로 구원하신 역사적인 구원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하나님 나라 언약문서이기 때문에 역사의 발전을 따라 나타난 언약의 양상이 각 시대의 하나님 나라의 양상이며 그것은 곧 그 시대의 언약백성의 양상, 곧 구원의 양상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성장은 도덕적인 개선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은혜의 풍성함에 거하는 것이며 믿음의 강하고 약함은 은혜와 언약의 풍성함에 대한 이해의 분량입니다. 점차적이고 단계적인 도덕적 개선은 믿음의 성장이 아니라 두 마음을 품은 탐욕이며 믿음 가운데 바로 서지 못한 두 마음과 두 행동은 범죄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존재와 속성은 이방철학에 의거한 본성적인 의미가 아니라 언약적이며 역사적일 뿐 아니라 사역적입니다. 인간의 존재와 본성은 각 시대에서의 언약을 따라 이루어진 하나님의 사역을 통하여 증거됩니다. 옛 언약은 옛 시대에서의 하나님의 사역과 인간의 어떠함을 설명하며 새 언약은 새 시대에서의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어떠함을 나타냅니다. 첫 사람 아담은 옛 사람과 옛 세계를 설명하며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새 백성과 새로운 세계를 설명합니다. 옛 시대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옛 언약인 율법이 행위언약이며 새 언약의 주이신 아들을 통하여 교회와 체결하신 새 언약이 은혜언약입니다.

 

성경은 구원의 공로로서 믿음과 행위를 대비하지 않습니다. 행위와 믿음의 대비는 구원에 대한 선택의 두 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언약의 대비이며 구원역사적인 대비입니다. 믿음은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에서 동일합니다. 믿음이 없는 행위는 하나님과 무관하며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믿고 모세율법을 행함으로 언약 안에 거해야 하며 신약백성들은 새 언약을 따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새 언약의 법을 행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은혜언약이 복음인 것은 인간의 행위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졌다는 의미 때문이 아니라 율법으로 통치하셨던 옛 시대와 나라를 끝내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에 속한 나라와 시대를 여셨기 때문입니다.

 

옛 언약백성인 이스라엘의 행위.

 

하나님 나라에서 믿음과 행함은 같이 갑니다. 믿음이 없는 행함은 언약 밖의 행함이며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거짓 믿음입니다. 성경이 행위와 믿음을 대비할 때에는 인간이 선택할 구원의 두 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언약발전에서의 시대적인 대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에게 하나님 나라를 언약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그의 언약을 믿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창15:6)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나라 언약을 체결하시고 오직 그들만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출24:1-8)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기로 맹세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니 너희는 나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율법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규범이며 지혜이고 상급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됨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출생하여 모세율법이 규정한 할례를 받았으며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하여 모세율법을 지킬 의무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나서 할례를 행함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서는 할례를 행하고 모세율법을 가진 이스라엘만 의로웠으며 무할례자인 이방인들은 언약 밖에 있는 불의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의롭다함을 얻는 길은 할례를 행하여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하여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행위는 할례의 행위이며 모세율법의 행위이었습니다.

 

행위와 믿음에 대하여.

 

믿음과 행위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인간이 선택할 두 길이 아닙니다. 행위와 믿음, 곧 율법과 복음은 자기 행위로 하나님 앞에 설 것인지 아니면 자기 공로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을 것인지를 선택하도록 제시된 두 길이 아닙니다. 행함은 모든 인간에게 요구하는 도덕법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행위는 옛 언약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에게만 요구된 할례의 행위와 모세율법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의 행위를 가리킵니다. 십계명과 모세율법은 언약 당사자인 이스라엘에게만 요구되었던 언약의 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셔서 나라로 삼으시고 의롭다고 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할례를 행함과 모세율법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온갖 율법을 행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들의 의와 행위는 저주하는 율법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통하여 새로운 구원과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이 구원은 율법의 저주 아래에 있었던 다윗왕조의 완성이며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언약의 온전한 성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율법의 통치 시대를 끝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살리셔서 하늘보좌에 앉히심으로 하늘에 속한 새로운 나라를 여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만민을 아들의 나라에로 부르셔서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모세율법의 행위를 자랑하던 옛 언약시대, 율법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민을 그의 나라로 부르시는 새로운 구원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구원의 시대는 하나님의 새 창조의 일이기 때문에 어떤 율법의 행위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종말의 천국은 아들의 나라이기 때문에 아들의 율법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의 통치는 종의 율법이었던 모세율법의 통치를 끝내고 자유케 하는 하늘의 생명과 의를 주는 통치입니다. 그러므로 행위와 믿음은 인간이 선택할 두 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언약의 두 과정입니다. 율법의 행위를 따라 세워진 이스라엘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임시적으로 통치되었던 하나님 나라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믿음과 행위는 같이 갑니다. 믿음이 없는 행위는 언약 밖의 행위이며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거짓 믿음입니다. 행위와 믿음은 인간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언약의 진행 속에서 이루어진 구원 역사적인 대비입니다.

 

/하늘에 속한 교회

출처 : 예수 코리아
글쓴이 : 예수코리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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