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에서의 성령의 사역(교제의 영이시다)
아담의 생명은 역사 속에서 성장하고 발전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영원한 생명으로 완성될 생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담에게 주어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에서 주어진 지식이었으며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온전한 지식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오셔서 주어질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자기 백성을 자신의 몸에 심으셔서 하나님께서 백성 안에 그의 백성이 하나님 안에 거하는 아들로 세우셔서 하나님과의 온전하고 하나된 백성으로 세우실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한 몸을 이루는 가장 친밀하고 하나된 관계에서 하나님의 아들(자녀)이 될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에덴에서의 하나님과의 교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셨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 세계를 구분하셔서 공간을 만드시고 그곳에 만물들로 채우셨으며 만물들을 주관하는 존재들을 세우셨습니다. 이처럼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던 세계를 구분하셔서 7일 주기의 질서가 있고 조화로운 세계로 완성하셨습니다. 이처럼 완성된 창조세계를 자신을 대리하여 경영할 아담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논하는 가운데 아담을 지으시고(창1:26) 그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살아있는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창2:7) 하나님께서 의논함으로 아담을 지으셨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운데 역사를 경영해야 하는 대리자라는 의미입니다.
아담은 선악과 언약에 충실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서서 창조세계를 다스리고 관리해야 하였습니다.(창1:28)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아담의 존재의의이었습니다. 이처럼 아담은 옛 역사와 인류의 출발점에 세워진 기원자(시작자)이었습니다. 아담에게 주어진 영은 에덴의 질서에서 하나님의 구원경륜에 봉사하도록 주어진 영이었으며(창2:7-9) 에덴의 질서, 곧 옛 세계의 출발점에서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대리하도록 주어진 영이었습니다.(창2:15-17) 그러므로 아담은 에덴에서 생명과를 먹는 교제 가운데서 하나님과 역사를 동행하여야 하였습니다. 그것이 아담이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신적 위엄을 누릴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만이 하나님을 대리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영광의 무대에 아담을 세우시고 역사를 경영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옛 세계에서의 하나님과의 교제
아담의 범죄로 들어온 죄는 온 세상에 관영하게 되었습니다.(창6:1-5) 사람들은 땅 위에서 번성하였으며 그들은 육체가 되어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사람의 땅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신들의 좋아하는 자로 아내를 삼았습니다. 당시에 네피림이 있었으며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용사를 낳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떠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분임을 보시고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창6:6-7)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습니다.(창6:8-9) 그는 의인이며 당대에 완전한 자로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창6:8-9)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식구들과 생물들을 보존하시기로 언약을 체결하셨으며(창6:18-22) 믿음으로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바를 준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창이 열리고 큰 깊음의 샘들이 터쳐서 40주야에 걸쳐서 비가 쏟아졌습니다.(창7:10-12) 온 세상에 가득찬 물은 150일 동안 온 세상에 창일하였습니다.(창7:24) 창조 때에 천하의 물을 한 곳으로 모으셔서 아담의 거처를 마련하셨던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으로 천하에 창일한 물이 물러가게 하시고 드러난 새로운 세상을 노아에게 주셨습니다.(창8:1-19)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를 드렸습니다.(창8:20-21)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시겠다고 말씀하셨으며(창8:21) 노아의 가족은 새롭게 된 세상에서 70명으로 번성하여 온 땅에 퍼졌습니다. 그러므로 노아홍수 사건은 옛 세계를 완성하는 일이었습니다.
율법의 통치가 시행되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구원경륜은 아브라함을 부르심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을 새로운 에덴으로 구별하시고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응답하여 가나안으로 이사하였으며 죽은 자와 같은 그의 몸에서 약속에 따른 새로운 인류를 출현시켰습니다. 이삭은 인간의 힘이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출생되었습니다. 그의 출생은 옛 경륜 가운데서 이루어진 새 인류의 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완성된 새 인류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성령으로 속사람이 거듭나서 하나님 안에 세워진 백성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육체(겉)만을 짐승의 피와 물로 씻어서 휘장 밖에 세우신 새 인류이었습니다.
구원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은 모세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나라가 실제로 설립된 것은 모세를 통해서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모세시대는 과도기적인 시대이었습니다. 모세율법의 집행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임시적으로 죄 아래서 이루어진 과도기적인 시대이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는 율법시대를 괄호시대로 묶어서 설명하기를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이스라엘의 범법함을 인해서 더한 것이 모세 시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가나안 땅에서 살았습니다. 그들은 율법과 제도를 지켜 행함으로 율법을 통하여 약속하신 언약의 복을 누리며 거룩한 여호와의 백성으로 살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에서 율법과 제도를 따라 이스라엘을 통치하셨습니다.
율법의 통치 아래에서 하나님과의 교제.
모세율법의 통치 아래에서 이스라엘은 어떻게 하나님과 교제하였습니까?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집, 곧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겸상하여 먹고 마셨습니다. 이러한 먹고 마심은 휘장으로 가리우신 하나님과의 생명의 교제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의 먹고 마심은 성전 밖에 있는 백성들의 먹고 마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누린 생명은 모세제도를 따라 하나님께서 베푸셨던 역사적이며 실제적인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성막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으며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의 상에서 죽음과 불을 통과된 성화된 양식을 먹고 마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성전에서의 먹고 마심을 통하여 이스라엘과의 교제를 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율법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리게 하였던 교제의 규범이었습니다.
성경은 “율법을 행하면 그 안에서 살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율법을 행하면 천당에 간다는 말이거나 휘장 밖에 세워진 이스라엘을 휘장 안으로 들어오게 하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이를 행하면 살리라.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준 율법을 행하면 너희들은 가나안에서 나를 누리며 영원히 살게 될 뿐 아니라 나를 나타내는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나타내는 계시이었으며 성전에 게신 하나님과의 교제의 규범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따라 행하는 것은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언약 안에 거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행함으로 여호와와 함께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행함으로 그 안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율법의 통치 아래에 거하였던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구원이었고 생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의는 율법의 의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교제가 주어짐.
생명과를 먹음으로 생명을 누리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선악을 안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제물을 먹음으로 하나님과 성소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성례이었고 생명이었습니다. 그것이 구약시대를 살았던 이스라엘이 누렸던 생명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누렸던 생명은 우리가 누리는 생명과 같습니까? 이스라엘은 모세율법과 제도 안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생명을 누렸습니다. 그들은 모세제도를 따라 휘장으로 가리우신 하나님을 알고 누렸을 뿐 자신을 아버지로 증거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완성된 교제의 생명을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성전에 계셨던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당시의 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그를 거절하였지만 당시의 남은 자들이었던 제자들은 그의 부르심에 응답하였습니다. 그들은 부르심을 받아서 예수님에게 나아와서 사람이 되신 하나님을 실제로 보고 함께 거하였습니다. 태초부터 있었던 생명의 말씀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친히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동행함으로 새로운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거하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새로운 통치가 천국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치시고 기사와 이적을 통하여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통치의 시대를 여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새로운 교제의 시대를 여셨습니다.
삼위 하나님의 교제에 참여함.
인간의 생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알고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출발점인 에덴에서부터 아담과 교제하시며 그의 하나님으로 일하셨습니다. 에덴에서 선악을 안다는 것은 에덴에서의 생명의 질서 안에서 선악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악과를 먹는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선악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선악을 아는 것은 선악과를 먹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서서 역사를 동행하면 알게 될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하심은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증거 하는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서서 생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리는 가운데 역사를 동행해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생명은 무엇입니까? 제사장이 성전에 들어가서 죽음과 불을 통과한 새 양식을 먹고 마시는 것이 성전 밖에 있는 백성들의 교제의 생명이었습니다. 율법 아래에 있었던 이스라엘은 모세제도를 따라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과 교제하였습니다. 그러면 신약백성들의 생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 당시에는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과 함께 거하며 그를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의 새로운 통치 가운데 거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순절 이후에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광의 보좌에 계신 주님의 상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가리움이 없이 아들과 교제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완전한 관계, 곧 아들로 대하십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취임하신 아들 안, 곧 그리스도에게 속한 백성입니다.
우리는 삼위 하나님과 교제하는 하늘에 다다른 새 인류입니다. 새 인류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하시는 관계를 설명하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를 대하시는 교제의 질을 가리킵니다. 완성된 교제의 생명은 어떤 생명입니까? 영원 전부터 아들이 가장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 속에서 아버지를 알고 교제하였던 것처럼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교제하는 생명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에 따른 교제가 아니고 모세율법과 제도를 따라 이루어졌던 교제도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런 가리움이 없이 가장 가깝고 친밀하며 하나된 관계를 따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누리는 교제의 생명입니다. 이처럼 완성된 교제의 생명에 대하여 “이기는 자는 이것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계21:7)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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