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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관리/CEO

645년의 안시성과 '21세기의 안시성'

리더십과 군비 태세, 軍民 합심이 안시성과 남한산성의 勝敗 갈라 
현재 중국의 거침없는 攻勢 속에 지금 우리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


  지난주 영화 '안시성'을 봤다. 5000 고구려 군사가 20만 당 대군을 물리치는 민족사적 전쟁 스토리에 흠뻑 빠졌다. 영화의 장면들이 작년에 개봉한 '남한산성'과 겹쳐졌다. '안시성은 왜 이겼고, 남한산성은 왜 졌을까?' 이 질문이 머리를 맴돌았다.

안시성 승리(645년)의 요인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백성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안시성주 양만춘의 리더십이다. 둘째, '나라를 지키자'는 목표로 똘똘 뭉쳐 90일을 버텨낸 군(軍)과 민(民)이다. 셋째, 평상시 구축해놓은 과학적 군비 태세다. 반면 병자호란(1636년) 당시 조선은 정반대였다. 리더 인조는 전쟁을 막을 외교력도, 치밀한 군사전략도 없이 남한산성으로 도망가기 바빴다. 조정은 9년 전 정묘호란을 겪고도 척화와 주화로 갈려 전쟁 대비에 소홀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20만 청군(淸軍)에게 포위당한 1만여 조선군은 한겨울 입을 옷이 없어 동상에 걸려 쓰러지고, 가마니를 덮고 자다 얼어 죽고, 먹을 것이 없어 군마까지 잡아먹었다. 조선은 45일 만에 스스로 무너져내렸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승리와 패배의 역사 모두 지금 우리와 연결돼 있다는 생각을 했다. 고구려 조상들이 당 대군 앞에서 느꼈을 긴장감, 겨울 남한산성의 조선 병사들이 품었을 두려움, 그리고 2018년 현재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을 멈추지 않는 중국을 보는 우리의 경계감이 결코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중국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산다. 그리고 '안시성'은 그 숙명을 떨쳐낸 '불씨' 같은 것이다. 불씨는 바람과 땔감만 있으면 언제든 다시 활활 타오른다.

그러고 보면 '안시성'은 1373년 전 과거에만 묻혀 있던 역사가 아니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여건에서 강력한 상대와 경쟁하여 이겨낸 '현대의 안시성'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K팝과 한류 드라마, 30~40년 전 빈손으로 시작해 세계 선두권에 올라선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기차 배터리, 올림픽에서 경쟁자를 떨게 하는 양궁, 쇼트트랙, 태권도, 야구 등 스포츠 스타들이 '21세기의 안시성 전사(戰士)들'이다. 어떤 면에서는 전쟁의 폐허 위에서 최단기간에 자유민주주의 첨단 정보산업국가를 만든 우리 모두가 '안시성의 주인'이다.

그러나 잘 버텨오던 현대의 안시성들이 하나둘 무너지고 있다. 스마트폰·가전(家電)·자동차·조선 등이 중국의 저가(低價) 공세에 비틀대고 있다. '중국 제조 2025'가 완료되는 7년 후, 우리의 마지막 보루인 반도체마저 무너질지 모른다. 중국은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를 잇는 '일대일로' 전략에 차이나머니를 쏟아붓고 항공모함 건조 등 군사력 증강에도 총력을 기울인다.

시진핑의 최종 목표는 미국 중심의 질서를 깨고 중국이 패권국가가 되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구축이다. 그런 시대가 오면, 중국은 사드 간섭을 넘어 주한 미군 자체를 문제 삼을 것이다. 또 입으로는 '자유무역과 공정경쟁'을 외치면서, 뒤로는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한국 기업을 더 괴롭힐지도 모른다.

한·중 간 갈등은 언제나 대륙 쪽에서 왔다. 대륙이 강성해졌을 때, 한·중의 군사력 격차가 커졌을 때 우리 민족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소리장도(笑裏藏刀)'란 말처럼, 웃는 얼굴 뒤에 칼을 숨기는 나라가 중국이다. 외부 위협에 대비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중국에 등을 돌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중국이 우리의 주권과 이익을 짓밟을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온 국민이 지혜와 뜻을 모으자는 것이다. 지금은 미·중이 패권 경쟁을 시작한 역사적 전환기다. 중국의 반칙과 횡포 앞에서 우리의 소중한 가치와 재산을 지키기 위해 깨어 있고 대비해야 한다. 그래야 '안시성의 불씨'를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있다.

- 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 [전문기자 칼럼] 조선일보 2018.09.26 오전 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