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운명 걸린 중대 문제가 충동적 정치인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공포감
비용 따지는 美 못 미덥고 非核化 없는 北 따를 수 없어… '냉철한 현실 인식' 절실해
비용 따지는 美 못 미덥고 非核化 없는 北 따를 수 없어… '냉철한 현실 인식' 절실해
밥 우드워드의 신간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 표지. <출처 = 아마존닷컴>
밥 우드워드 기자의 신간 '공포:백악관의 트럼프'는 미국 정치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우리 민족의 명운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들이 어떻게 다뤄지는지 읽고 나면 책 제목대로 공포감 때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일례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의 한국 내 배치 문제를 보자. 랜드(RAND) 보고서는 '사드가 한국의 주요 지역을 보호하는 동시에 한국 내 미군과 미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핵심 군사시설'이라고 지적했다. 전쟁 발발 시 주로 부산항을 통해 수만 명의 미군이 전개될 터이므로 북한이 이 지역을 공격 목표로 할 테고, 따라서 북한의 미사일을 막기 위한 설비가 필수적이라는 분석이다. 게다가 북한에서 미사일이 발사될 경우, 한국의 사드 기지에서는 7초 만에 포착하지만, 알래스카 기지에서 포착하려면 15분이 걸린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미국 본토에 대한 핵미사일 공격을 막는 대비책으로도 사드가 핵심 시설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사실에는 눈 감은 채 부동산 개발업자나 할 법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드 배치 비용을 누가 댔느냐는 다그침에 맥매스터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은 돈은 미국이 냈지만 한국이 부지를 99년 동안 무료로 제공하는 조건이어서 "아주 좋은 거래"라고 답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같이 화를 내며 한국 지도를 가져와서 들여다보는데, 사드 부지는 이전에 골프장이었다. 대통령은 품격 없는 욕설과 함께 이렇게 지시한다. "이건 똥 같은 땅(a piece of shit land)이야. 10년 동안 100억달러나 드는데 이게 미국 땅에 있지 않다니, 도로 빼서 포틀랜드(오리건 주)에 설치해!"
급기야 매티스 국방장관이 이런 일들은 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한 것이지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니라고 말하는 대목도 나온다. 대통령의 이해력이 초등학교 5~6학년 학생 수준인 것 같다는 매티스 장관의 말이 과히 틀려 보이지도 않는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발발할 것인가? 그동안 우리는 미국의 힘에 기대어 전쟁을 막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여기에서 정치학자 마이클 도일이 개진한 '민주주의 국가 간에는 결코 전쟁을 치르지 않는다'는 주장을 참고할 만하다. 교육수준이 높고 생활수준이 만족스러운 나라에서는 전쟁을 선포하려는 정당이 권력을 잡기 힘들며, 따라서 민주국가 간에는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내용이다. 반대로 비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도당이 지배하는 국가는 전쟁에 의지하려는 성향이 훨씬 강하다. 역사적으로 봐도 정치 지도자가 독재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들이 전쟁 도발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주장에 완전히 동의하기 쉽지 않을 듯하다. 프랑스의 석학 엠마뉘엘 토드는 미국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과두제로 향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국제 정세가 위험에 빠져든다고 했다. 국민 다수가 무심한 사이에 백악관이 무모한 선택을 감행할 우려도 있다. 더더구나 중국·북한 같은 공산국가는 민주정치와는 거리가 멀고 시진핑과 김정은 같은 폭압적인 권력자 '개인의 의지'가 결정적이다. 3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까지 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카스트로는 자기 나라 국민이 전멸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미국에 핵미사일 발사를 밀어붙였었다. 핵무기를 손에 쥔 '대담한 독재자'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미국과 소련 국민 각각 1억 명이 희생될 뻔했던 핵전쟁을 마지막 순간에 가까스로 피한 데에는, 백악관 내에서 다양한 견해를 듣고 막후에서 현명하게 외교 협상을 지휘한 케네디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 트럼프 행정부에도 이런 안전장치가 존재할까?
우리 민족의 운명이 미국·중국·북한 등의 충동적인 성향 정치 지도자 사이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이 공포감을 자아낸다. 지지율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정치적 돌파구를 찾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났을 때 과연 합당한 판단을 할까?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경우 김정은 위원장은 30대의 혈기를 누르고 민족의 안위를 앞세워 합리적 결정을 할 것인가?
미국과의 동맹이 우리의 안전 확보에 필수적인 옵션이지만, 국방비 문제를 놓고 '한국이 우리의 친구냐'고 묻는 트럼프 행정부를 예전처럼 무조건 신뢰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그렇다고 비핵화 조치엔 꿈쩍도 않는 북한을 동족이라고 따르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어찌하랴, 이 힘겨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역량을 총동원하되 그 이전에 무엇보다 냉철한 현실 인식이 절실하다.
밥 우드워드 기자의 신간 '공포:백악관의 트럼프'는 미국 정치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우리 민족의 명운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들이 어떻게 다뤄지는지 읽고 나면 책 제목대로 공포감 때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일례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의 한국 내 배치 문제를 보자. 랜드(RAND) 보고서는 '사드가 한국의 주요 지역을 보호하는 동시에 한국 내 미군과 미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핵심 군사시설'이라고 지적했다. 전쟁 발발 시 주로 부산항을 통해 수만 명의 미군이 전개될 터이므로 북한이 이 지역을 공격 목표로 할 테고, 따라서 북한의 미사일을 막기 위한 설비가 필수적이라는 분석이다. 게다가 북한에서 미사일이 발사될 경우, 한국의 사드 기지에서는 7초 만에 포착하지만, 알래스카 기지에서 포착하려면 15분이 걸린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미국 본토에 대한 핵미사일 공격을 막는 대비책으로도 사드가 핵심 시설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사실에는 눈 감은 채 부동산 개발업자나 할 법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드 배치 비용을 누가 댔느냐는 다그침에 맥매스터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은 돈은 미국이 냈지만 한국이 부지를 99년 동안 무료로 제공하는 조건이어서 "아주 좋은 거래"라고 답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같이 화를 내며 한국 지도를 가져와서 들여다보는데, 사드 부지는 이전에 골프장이었다. 대통령은 품격 없는 욕설과 함께 이렇게 지시한다. "이건 똥 같은 땅(a piece of shit land)이야. 10년 동안 100억달러나 드는데 이게 미국 땅에 있지 않다니, 도로 빼서 포틀랜드(오리건 주)에 설치해!"
급기야 매티스 국방장관이 이런 일들은 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한 것이지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니라고 말하는 대목도 나온다. 대통령의 이해력이 초등학교 5~6학년 학생 수준인 것 같다는 매티스 장관의 말이 과히 틀려 보이지도 않는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발발할 것인가? 그동안 우리는 미국의 힘에 기대어 전쟁을 막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여기에서 정치학자 마이클 도일이 개진한 '민주주의 국가 간에는 결코 전쟁을 치르지 않는다'는 주장을 참고할 만하다. 교육수준이 높고 생활수준이 만족스러운 나라에서는 전쟁을 선포하려는 정당이 권력을 잡기 힘들며, 따라서 민주국가 간에는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내용이다. 반대로 비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도당이 지배하는 국가는 전쟁에 의지하려는 성향이 훨씬 강하다. 역사적으로 봐도 정치 지도자가 독재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들이 전쟁 도발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주장에 완전히 동의하기 쉽지 않을 듯하다. 프랑스의 석학 엠마뉘엘 토드는 미국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과두제로 향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국제 정세가 위험에 빠져든다고 했다. 국민 다수가 무심한 사이에 백악관이 무모한 선택을 감행할 우려도 있다. 더더구나 중국·북한 같은 공산국가는 민주정치와는 거리가 멀고 시진핑과 김정은 같은 폭압적인 권력자 '개인의 의지'가 결정적이다. 3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까지 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카스트로는 자기 나라 국민이 전멸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미국에 핵미사일 발사를 밀어붙였었다. 핵무기를 손에 쥔 '대담한 독재자'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미국과 소련 국민 각각 1억 명이 희생될 뻔했던 핵전쟁을 마지막 순간에 가까스로 피한 데에는, 백악관 내에서 다양한 견해를 듣고 막후에서 현명하게 외교 협상을 지휘한 케네디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 트럼프 행정부에도 이런 안전장치가 존재할까?
우리 민족의 운명이 미국·중국·북한 등의 충동적인 성향 정치 지도자 사이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이 공포감을 자아낸다. 지지율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정치적 돌파구를 찾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났을 때 과연 합당한 판단을 할까?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경우 김정은 위원장은 30대의 혈기를 누르고 민족의 안위를 앞세워 합리적 결정을 할 것인가?
미국과의 동맹이 우리의 안전 확보에 필수적인 옵션이지만, 국방비 문제를 놓고 '한국이 우리의 친구냐'고 묻는 트럼프 행정부를 예전처럼 무조건 신뢰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그렇다고 비핵화 조치엔 꿈쩍도 않는 북한을 동족이라고 따르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어찌하랴, 이 힘겨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역량을 총동원하되 그 이전에 무엇보다 냉철한 현실 인식이 절실하다.
-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朝鮮칼럼 The Column] 조선일보 2018.09.17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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