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이란 매우 중대한 역사적 사건이다.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데 대해서는 누구도 이견이 없는데, 대한민국이 언제 건국됐는지, 건국일을 언제로 볼 것인지에 대해선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일각에선 1919년 3월 1일을, 또는 1919년 4월 11일(4월 13일 주장도 있음)의 상해임시정부수립일이나 4월 23일 한성임시정부수립일을 건국일로 보는가 하면, 1945년 8월 15일의 해방을 건국일로 보거나,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일을 건국일로 보며, 심지어 10월 3일 개천절을 건국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견해 대립은 건국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건국(建國)이란, 말 그대로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따라서 건국의 의미는 나라가 무엇인지, 국가로서 인정될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떠나서 말할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나 국가임을 자칭하면 건국이 될 것이다. 국가를 구성하는 3요소로 인정되는 것이 영토·국민·주권이다. 이 중 하나라도 갖추지 못하면 국가로 인정될 수 없다. 독립된 영토 없이 다른 나라의 영토 위에 국가를 세울 수 없고,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나 사막을 국가로 볼 이유도 없다. 또한, 영토와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이 있다 하더라도 주권을 갖지 못하면 국가로 인정되지 못한다.
대한제국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잃었고, 1910년 주권을 상실해 일제의 식민지가 됐다. 그것은 대한제국이라는 나라가 소멸됐다는 것이고, 대한제국의 영토를 일제가 차지했다는 것이다. 대한제국의 소멸과 관련해 한일병합 조약이 합법적이었는지가 본질은 아니다. 대부분의 식민지가 무력을 앞세운 제국주의적 침략의 결과이며, 영토와 주권을 잃은 민족들은 나라 없는 설움을 겪었다.
1919년 건국절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대한제국의 존속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결국, 3·1운동이나 임시정부수립을 건국으로 본다는 것인데, 1910년과 1919년 사이에 영토·국민·주권에 무슨 변화가 있었나? 아니면 영토와 국민, 주권이 없는 국가가 가능하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국가와 국가를 참칭하는 단체를 어떻게 구별하자는 것인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인정하는 건 좋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이 임시정부수립을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으로 보는 근거는 될 수 없다. 임시정부가 국가의 구성 요소들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던 건 접어두더라도, 건국에 필요한 절차조차 거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임시정부 스스로가 해방 이후를 염두에 두고 1941년 건국강령을 마련했던 점에서도 확인된다.
건국이란 영토·국민·주권을 하나로 결합하는 과정이다. 영토에 대한 실효적 지배력을 가지고, 그 영토에 거주하는 국민을 설득해 하나의 독립된 국가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를 통해 주권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1945년의 해방이 아니라, 1948년의 정부수립을 건국으로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초의 민주적 선거에 의해 제헌국회가 구성됐고, 헌법이 제정됐다. 그 헌법에 따라 비로소 정부가 구성됐다. 한민족 역사상 최초로 헌법국가가 탄생한 것이며, 대한민국의 영토와 국민과 주권이 하나로 결합된 것이다. 5·10 남한만의 총선에 대한 반대가 있었던 점이나, 제헌 과정에서 정부 형태의 변경과 관련한 이승만의 독선 등에 대한 비판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을 달리 볼 이유는 되지 못하며, 건국의 역사적 의미를 과소평가할 이유는 더욱 아니다.
-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포럼> 문화일보 2018.08.14 오후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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