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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교육정책

학교 자율화 20년의 성찰과 미래 방향

   학교 자율화 추진 20년

 

   교육부와 시·도교육감협의회는 2017년 8월에 제1회 교육자치정책협의회를 개최하였다. ‘교육자치 및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이 중요한 심의 안건이었다. ‘자율적 학교 공동체’라는 목표가 신교육체제구상에서 등장한 이래 20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학교 자율화는 여전히 미완의 정책 이슈로 남아있는 셈이다. 그간 2008~2009년 사이에 관련 법령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를 포함하는 학교 자율화 1, 2, 3단계 방안이 발표되었다. 이어 2011년에는 ‘자율과 책임 중심의 학교 문화 조성’ 계획도 발표되었다. 교육자치정책협의회가 심의한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에는 학교 자율화 로드맵이 다시 담겼다. 여러 차례에 걸쳐 계속 추진되는 학교 자율화 정책은 일단 정책의 ‘지속성’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를 받을 만하다. 동시에 학교 자율화 정책의 지속적인 출현은 그간 추진된 ‘정책의 공허(futility)’를 드러낸 것은 아닌지 성찰을 요구한다.

 

 

   학교 자율화 정책의 등장 배경

 

   1990년대 중반 이후 학교 자율화 정책의 부상은 국가적 교육 과제의 전환을 의미한다. 사실 1949년에 구 「교육법」이 제정되어 새로운 교육체제를 마련한 이후 시급한 과제는 교육기회 확대였다. 1950년대 초등학교 의무교육 완성에 이어 중학교 의무교육은 1980년대에 시작하여 2004년에 비로소 완성되었다. 1980년에 고등학교 취학률이 60%를 넘어섰고 1990년에는 90%에 가까워졌다. 폭발적인 교육기회의 확대는 자연스럽게 열악한 교육여건의 문제를 야기하였다. 1984년에 수행된 연구에서 적정 학급 규모 목표치가 대도시 기준으로 초등학교 55명, 중학교 53명으로 제시될 정도로 현재 기준(30명 이하)보다 매우 높은 것을 보면, 학급당 학생 수로 대표되는 교육여건 개선이 얼마나 시급한 과제였는지 알 수 있다.

 

   1990년대는 일종의 과도기적 전환기라고 할 수 있다. 고등학교 단계까지 거의 완전 취학에 이르게 되면서 양적 차원의 교육기회 확대는 정책 과제로서 사명을 다하게 되었다. 근대 공교육체제는 공통적인 규범과 지식을 익히는 데 목표를 두었지만, 이제 학습자 ‘개인’의 성장을 강조하는 학습사회의 도래에 따라 교육의 개별화와 다양화가 중요한 가치로 부각되었다. 교육기회 확대를 뒷받침하기 위한 교육여건 개선 과제는 여전히 정책의 우선순위를 차지했지만, 물리적 여건 개선을 넘어서 교육의 새로운 방향과 맞물리는 형식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신교육체제구상은 학교의 자율적 운영을 위한 ‘학교공동체’ 구축을 과제로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자율과 책무성에 바탕을 둔 학교 운영: 규제와 통제중심 교육 운영으로부터 벗어나 개별학교의 자율과 책무성 중심의 교육 운영으로 전환하고, 학부모 및 학교 관련 인사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학교가 효율적으로 운영된다.

 

 

   학교 자율화 주요 정책

 

   신교육체제구상을 구현하기 위해 1997년에 제정된 「교육기본법」은 학교운영의 자율성은 존중되며, 교직원·학생·학부모 및 지역주민 등은 법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교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학교운영위원회 제도는 자율적 의사결정 주체로서 학교의 핵심이 되었다. 교육수요자 중심의 교육체제를 지향하면서 교원 위원은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 및 부위원장을 맡지 못하도록 제한함으로써 교원 중심의 기존 학교 자율화와는 다른 개방적 자율화가 시작되었다. 학교교육계획을 비롯한 학교 운영 전반에 걸친 심의사항을 다루는 학교운영위원회는 참여자의 특성이나 참여 양태에 따라 법령상 심의기구의 성격을 넘어 사실상 의결기구처럼 운영되기도 하였다. 학교운영위원회 제도와 맞물려 2001년부터는 학교를 예산편성의 주체로 설정하는 학교회계제도가 도입되면서 학교의 자율적인 교육과정 운영과 학교 예산이 연동될 수 있도록 하였다.

 

   학교운영위원회와 학교회계제도라는 기반 구축에 이어 학교의 자율적 운영을 저해하는 각종 지침을 폐지하고 법령을 정비하여 학교의 자율권을 확대하는 조치도 추진되었다. 학칙 규정 사항이 확대되었고 교육과정 편성 및 학기 종료일 설정 등 학교별로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는 사항도 증가하였다. 정부는 학교 자율화 정책에 따른 자연스러운 귀결로 나타날 학교의 다양한 운영을 기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다양한 자율학교 유형을 도입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교육부가 아니라 시·도교육청이 주도하여 혁신학교 등 자율적인 학교 운영을 자극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왜, 여전히 학교 자율화인가?

 

   그간 학교 자율화 정책은 정책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었고 실제로 학교의 모습을 많이 바꾸어 놓았다. 성과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왜 학교 자율화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가? 바로 학교 자율화를 복잡한 현상으로 만들고 있는 3가지 갈등 요소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학교 자율화는 교육기회 평등이라는 헌법상 가치와 관련하여 잠재적 갈등을 안고 있다.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과중한 사교육비가 사회적 문제가 되는 까닭은 교육 평등에 대한 강한 욕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학교가 ‘서로 다를 수 있는 자유’를 갖는 학교 자율화를 추진하면 할수록 교육기회 평등을 확보하는 게 어려워진다. 물론 학습자의 고유한 적성을 고려한 차별화를 기준으로 보면 다르겠지만, 사회적 신뢰 부족과 강한 평등 욕구가 맞물리면서 기계적이고 정량적인 평가에 대한 압력이 강한 분위기에서는 자율화와 평등이 자연스럽게 선순환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자율형 사립고 정책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바로 획일주의를 걷어내고 자율화에 따른 다양성이 확대되면서 교육기회 불평등이 초래될 수 있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자율화가 추진될 경우 의사결정 주체는 학교 조직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시장의 압력을 결정의 준거로 삼을 것이고 그 방향은 규범적으로 요구되는 미래 교육의 방향과 다를 수 있다. 자율화를 추진한다고 하면서도 모자 씌우기 정책(cap policy)을 통해 자율권을 제한하는 모순된 정책은 우리 사회의 가치 갈등에 대한 독특한 적응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율권 축소의 깔때기 모형

 

   둘째, 정부와 학교가 생각하는 학교 자율화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존재한다. 정부는 자율화를 상당히 추진했다고 하지만 학교는 별로 체감하지 못한다. 깔때기 모형을 통해서 보면 자율권 범위는 몇 가지 여과를 거치면서 깔때기 아래로 내려가고 그만큼 축소되어 주관적으로 인식된다. 일차적으로는 학교가 관할할 수 있는 사무 범위로 자율권의 범위는 걸러지는데 이 부분은 객관적인 조건에 해당한다. 이차적으로 이해관계가 있는 범위 안으로 자율의 범위는 축소되는데 이 부분은 주관적인 인식에 의해 결정된다. 예를 들어 정부는 자율권을 넓게 보장하더라도 학교 자율권은 학교 당사자의 이해관계 영역으로 축소되어 인식된다. 이해관계 영역을 벗어나는 무관심 영역(indifference zone)은 학교의 입장에서 자율의 영역이 아니라 때로 부담일 뿐이다.

 

   다음으로 객관적 조건으로서 학교가 이용할 수 있는 인적·물적 자원에 의해 자율권은 더 축소된다. 마지막으로 학교가 수용할 수 있다고 인식하는 위험 범위 내에 속하는 책임의 영역으로 더욱 줄어든다. 가치 기준에 대한 학부모 및 사회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쉽게 상충할 수 있는 영역에서 자율권은 위험한 부담이 될 수 있는 만큼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자율권의 범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학교 현장이 원하는 자율과 정부가 보장한다고 생각하는 자율은 학교가 느끼는 자율 범위에 영향을 주는 변인의 상황에 따라 괴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림 1] 자율권 범위의 깔때기 여과 모형


 

   자율화: 목적 가치인가 수단 가치인가?

 

   셋째, 학교 자율화를 목적 가치로 보는지 아니면 수단 가치로 간주하는지에 대한 관점 차이가 갈등을 낳는다. 학교 자율화 정책은 당초에 학습자 중심 교육, 다양한 교육, 수월성이 확보되는 교육, 창의·인성 교육이라는 목적 가치를 겨냥하는 도구로 출발하였다. 정부는 도구보다는 목적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학교 자율화라는 도구를 보장하면서도 그 도구가 목적 가치를 실현해낼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을 갖지는 않았다. 교육부는 특별교부금을 재원으로 삼아 사교육 절감, 교육과정 혁신, 학력 향상, 창의·인성 교육 등을 겨냥한 각종 국가 시책 사업을 추진하였고 학교 평가나 시·도교육청 평가를 통해 이행 상황을 확인하고 점검하였다. 한때 교육부는 시책 사업의 성과를 빨리 얻어내기 위해 시·도교육청을 건너뛰는, 이른바 교육청 패싱(passing)을 정당화하기 위해 학교 자율화를 명분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사실 학교 자율화는 민주주의 제도와 마찬가지로 단기적으로만 보면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도구는 아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다른 장치에 비해 경쟁력이 있고 비용 효과성도 뛰어나지만, 단기적으로 보면 목표 가치를 방해하는 장애물로 전락하거나 역기능을 낳기도 한다. 이런 점 때문에 학교 자율화는 외형일 뿐 시책 사업의 단기적 성과를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학교를 통제해 왔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단기적 성과에 초점을 맞춘 정책의 경우 목표 가치와 도구 가치의 갈등을 유발하고 정부와 학교 자율화의 주체 사이에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학교 자율화를 도구 가치가 아니라 목적 가치로 보는 관점에서는 ‘학교 자율화’보다는 ‘학교 자치’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학생, 학부모, 교원 등의 학교 구성 집합체를 법정 기구로 만드는 것을 요구한다. 지방교육자치제보다 학교 자치제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기도 한다. 학교 자율화를 목적 가치로 설정하면 학습자 중심 교육, 다양한 교육, 수월성 등의 달성 여부는 학교 자율화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학교 자율화 자체가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학교 자율화를 목적 가치로 설정할 것인지 아니면 수단 가치로 볼 것인지는 다양한 교육환경 변인과 사회적 가치 구조를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과제이다.

 


 

   학교 자율화의 미래 방향

 

   정부는 2018년부터 교육 현장에 부담이 되는 규제적 지침을 우선 정비하여 자율적 혁신 문화가 안착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학교에 대한 규제를 폐지하고 자율적 결정 권한을 확대한다고 해서 실질적인 학교 자율화가 달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학교폭력, 안전사고, 인성교육, 학교급식, 방과 후 교육과정 등 학교가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영역은 넘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학교는 고통을 호소한다. 학교로 권한을 이양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것이다. 학교의 업무에 대한 전면적인 분석을 통해 업무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폭력 사안 처리나 학교급식 등 상당한 업무는 학교의 업무가 아닌 교육청의 업무로 재편해야 할 수도 있다. 학교 회계 및 학교 재산 관리 등에 관한 현장 교사의 불평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학생, 교원, 학부모가 행복해하고 학습자가 의미 있는 교육 경험을 가지도록 한다는, 학교의 본질적인 사명을 추구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을 제거하고 필요한 지원을 하는 게 진정한 학교 자율화의 방향이다. 학교 자율화로 인해서 교사가 ‘최고로 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또 ‘잘할 것으로 기대되지도 않은 업무’를 떠안으면서 보람을 잃는 일이 벌어지면 곤란하다. 교사가 학교 자율화로 인해 학습자의 요구에 좀 더 집중하지 못하고 그 결과 죄의식을 느낀다면 학교 자율화는 미래 교육을 위한 장애물일 뿐이다. 국가시책 사업을 상향식 공모 운영으로 바꾸는 게 바로 학교 현장이 원하는 자율화라는 생각도 재검토해야 한다. 학교 자율화는 이해관계, 자원, 책임의 변인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원고는 집필자의 전문적 시각으로 작성된 것으로 

교육정책네트워크 및 한국교육개발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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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훈 교수는 서울대학교 공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교육행정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천대학교 교육대학원장을 맡고 있으며 주요관심 분야는 교원과 학생의 권리, 교사의 교직 행위와 감정, 교육판단의 휴리스틱과 편향 등이다. 저서로 <교육학의 유혹>, <학교와 교육행정-질문, 관점, 응용>, <학교와 교육법>이 있다. “천재의 작품에서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내버린 우리의 사상을 발견한다.”는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말을 좋아한다.

필자
조석훈
소속
가천대학교 교수
이메일
w9313@gach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