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悔改)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눅 15:10)
회개에 대한 시비가 분분합니다. 사실은 신앙생활은 회개로 시작이 됩니다. 다만 회개하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은 이후에 회개가 이루어집니다. 회개란 말은 ‘메타노에’인데 메타(후에) 노에(깨닫다)라는 뜻입니다. 행 11:18절의 생명 얻는 회개는 사도 베드로의 복음을 듣고 주 예수그리스도의 구원하심을 깨달음으로 얻는 회개입니다. 울고 불고가 아닙니다. 그래서 죄인의 관점에서 회개와 하나님의 자녀들의 관점에서의 회개가 서로 다릅니다. 죄인의 회개는 자신의 가슴을 치는 것이나 하나님의 아들들의 회개는 아버지를 찾는 것입니다. 따라서 회개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기쁨의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백 마리 중에 한 마리의 양, 열 드라크마 중의 한 드라크마, 집 나간 탕자...다 부족하기 때문에 기쁨이 될 수 없는 게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이다.
근데 자신이 죄인이라고 알고 있으면 이미 성경적인 죄인이 아닙니다. 잃어버린 양은 자신이 목자로부터 떨어진 사실을 모릅니다. 드라크마는 더 모릅니다. 회개는 의식하고 있는 죄 의식을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후회나 반성이 아닙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실을 뒤에 깨닫는 것이 바로 진정한 회개입니다. 영혼의 목자에게서 떨어진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시는 것은 그 분의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시는 것처럼 우리도 그분을 찾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악한 어린아이들처럼 구원받는 지식은 가득하지만 온갖 불안과 초조와 갈등을 안고 삽니다. 이건 하나님이 나를 찾으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죄인 곧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신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은 후에는 주님의 찾으심을 따라 우리가 그 분을 찾는 참 회개가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영혼의 갈증을 느끼는 사람은 회개와 세례의 실체를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진정한 필요를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집을 나간 탕자도 분깃과 양식 사이에 오랫동안 갈등하다가 결국 양식 때문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다만 이와 같은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쥐엄나무의 열매를 먹기까지 인간의 자존심의 마지막 발악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 굶주림에 항복하고 돌아오니 아버지의 기쁨이 되고 살찐 송아지를 준비해 둔 걸(눅 15:23)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이 회개를 아버지는 기뻐하고 아들은 아무 말 없이 깨닫는 걸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김요한선교사
'교육자료 > 교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성경해석에서 범하기 쉬운 오류들? (0) | 2018.06.18 |
---|---|
[스크랩] ▒ 금주의 설교 자료 - 10편 ▒ [281] (0) | 2018.06.16 |
[스크랩] [생명의 삶] 20180531 (시편 89:38~52) (0) | 2018.06.15 |
[스크랩] ◈요르단의 여리고계곡 역사와 문명◈2018.06.09. (0) | 2018.06.09 |
대환난시대의 교회 (0) | 2018.06.06 |